기록
시어머니가 될 사람을 처음 만난 자리에서 내 입에서 처음 나온 건 거짓말이었다.
인사말과 이런저런 말들이 오갔겠지만 기억나는 건,
잊히지 않게 곤란했던 질문과 거짓 대답.
'어머니 생년월일이 어떻게 되시니?'
조상에 대한 제사를 지내는 종교를 가진 나의 시어머니가 될 사람의 그 질문은
나를 가족으로 받아들이겠다는,
그러니 네 돌아가신 어머니 제사를 그녀가 믿는 제단에 올려주겠단 얘기였다.
잠시의 망설임 끝에 아무것도 아닐 숫자들의 조합이 내 입에서 나왔다.
내 엄마는 대여섯 가지 기억의 편린만을 남기고 내 생에서 퇴장해 버렸다.
어느 한 명 삶이 편치 않았다는 닮은 점이 우리가 가족이라는 유일한 증거 같던 시간 속에, 나에게 죽은 엄마에 대해 얘기해 주는, 줄 여유를 가진 이는 없었다.
그저 아버지가 45에 날 낳았다는 것 아마 그 당시 보통이라면 엄마의 나이는 40을 전후했지 않을까 짐작한다.
그리고 모두가 나가고 난 뒤 둘만이 남은 그 아침, 일어나지 않는 엄마를 흔들어 깨워보다 작은 언니의 학교로 갔던 때는 언제였나.
마당에 쳐진 흰 천막, 솥에서 끓던 육개장의 냄새, 오고 가던 사람들, 떠나가던 꽃상여.
그 뒤 모두가 나가면 혼자여야 했던 나를 이르게 유치원에 보내,
다음 한 해 더 유치원을 다닌 기억에서 여섯 살쯤이 아닐까 생각한다.
가끔 술이 취하고 자기 연민에 만취할 땐 어김없이 다섯 살에 엄마를 잃은 가여운 아이가 되기도 하지만, 어쩌면 거짓은 아닐 수도 있다.
생일 전이라면 말이다!
몇 년 전 큰오빠에게 한 장의 사진을 받았다.
신산하던 시간 속에 흩어져 버린 가족처럼 다 사라지고 몇 장 남지 않은 엄마의 사진.
사진 속 엄마 품에 안긴 아이가 나이려니.
나의 추리가 맞다면,
엄마의 마지막은 지금의 내 나이이거나 조금 젊을 것이다.
집에 놀러 온 친구가 차를 마시다
부엌에 둔 엄마와 나의 사진을 본다.
그리곤
나와 아주 많이 닮았다고 한다.
친구가 간 뒤 나도 가만히 들여다보니 과연.
엄마와 내가 비슷한 나이가 되니,
우리는 더, 무척이나 닮아졌나 보다.
문득, 잘 알지도 못하는 엄마가 친구 같이 느껴진다.
뭐가 그리 힘들었는지 어린 기억에도 자주 취한 모습이던 엄마.
그리고 이제 그 엄마를 무척 닮고, 술에 자주 취하는 막내딸이 있다.
막내딸은 또박또박 나이를 먹어갈 것이고,
나의 엄마는 이제 늘 나보다 젊게 남을 것이다.
내 나이 즈음에 6살짜리 막내를 두고 간 엄마,
언젠가 만난다면 괜찮다고, 괜찮았다고.
좀 더 어른이 된 내가 가만히 안아줘야 할,
나의 어린, 영원히 어려진 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