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것들 사이로 가만히 나를 가져다 두는 것
계절성 우울 증후군 6
우울이 찾아오고 뚝 떨어진 벼랑으로 늘어뜨려진 동아줄 마냥 글쓰기에 매달렸다.
호기롭게 브런치를 시작하고 글을 쓰기 시작했지만, 브런치라는 세상 속엔 너무도 많은 작가들이, 좋은 글이, 잘 쓰는 사람들이 넘쳐났고, 무슨 일에든 그렇듯 잘한다는 칭찬을 받지 못할 것 같은 예감이 들자 나의 흥미는 빠르게 식었다.
그러다 우울이 찾아오고 매일 글을 쓰고 있다.
내가 글을 쓰는 것을 꽤나 좋아한다는 사실을 이 가을 찾아온 우울이 내게 가르쳐 주었다.
글을 쓰고 나면 딱 하루치만큼의 ‘괜찮음’이 생겼고, 그날 중 가장 편안한 마음 상태가 되곤 한다.
글을 쓰는 것과 책을 읽는 것, 산책을 하는 것 등등
힘이 들 때면 내가 좋아하는 것들 사이로 가만히 나를 가져다 둔다.
어제는 다정한 사람에게 따스함을 찰박찰박 넘치게 받았건만, 왜인지 오늘 아침 눈을 뜨자, 그저 '오늘은 뭘 할까' 하는 것처럼 심상하게 ‘죽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도 건조하게 생각하는 내가 위험함을 감지하고 나를 억지로 끌어 일으켰다.
청소를 하고 아이의 아침밥을 짓고, 아침 운동을 다녀왔지만 상태는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고, 그대로 침대에 누워 드문 드문 찾아오는 이상한 꿈들을 꾸며 몇 시간을 보내곤, 일어나 앉는다.
-안 되겠구나
욕조에 물을 받고 따뜻함에 잠겨 몸과 마음을 한참 녹인다.
요즘 가장 좋아하는 옷을 차려입고(급격히 늘어버린 체중에 옷매무새가 맘에 들진 않지만) 가장 좋아하는 색깔의 립스틱을 바르고 '좋은 인연을 가져다 준다는' 나비펜던트 목걸이를 하고 집을 나섰다.
갈 곳은 마땅찮았지만 아침에 연어 샌드위치가 먹고 싶다던 아이의 말이 생각나 섬에 하나뿐인 대형마트로 향한다. 원래도 쇼핑에 큰 흥미가 있진 않았지만, 오늘은 더 의욕이 나지 않아 샌드위치 재료만 사서 마트를 나왔다. 챙겨간 네트백에(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선물해준 내가 좋아하는 장바구니)에 차곡차곡 담자 기분이 좋아진다.
다소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집으로 향하던 중 좋아하는 동네 카페가 보였다.
‘작은 것들의 힘’
잠시 머뭇대다 카페 안으로 들어가 가장 위험할 때 하는 극약처방인 비정제 설탕이 서걱서걱 씹히는 달콤한 '작은힘라테'를 주문한다.
카페 안 작은 서가에 꽂힌 책들을 가만가만 살핀다. 모두 이곳과 어울리는 책들이다.
그중 한 권을 골라 창가에 앉아 읽고 있으니 정갈하게 담긴 작은 힘 라테를 가만히 놓아주신다.
좋은 곳에 좋아하는 것에 좋은 것 더하기.
카페에서 나오자 꽤나 기분이 좋아졌다.
역시나 큰 힘이 되어주는 ‘작은 것들의 힘’.
집으로 돌아와 연어 샌드위치를 만들어 놓고 노트북을 챙겨 스타벅스로 출근한다.
오늘의 우울은 꽤나 강적이다.
매일 쓰고 있는 우울증에 대한 글을 쓸 마음이 나지 않아 쓰던 단편소설을 조금 끄적이다 창밖을 바라본다.
비어있던 옆자리에 앉은 이는 앉자마자 블라인드를 내려버린다. 아마도 이미 어둠이 내려앉은 시간이라 나의 시선 속에 창 밖의 사람들이 있듯이 그들의 시선에도 내가 노출되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가만히 창밖을 바라본다.
휴대폰을 하며 지나가는 아이.
누군가와 꽤나 고성으로 싸우는 것이 분명해 보이는 전화를 하는 사람.
다정히 어깨에 팔을 두른 연인들.
첫 술자리를 마친 후인 듯, 한 잔 더 하자고 하는 것이 분명하게 팔을 끄는 이와 손사래를 치는 이
무슨 이유에서인지 길가에 잠시 서있는 젊은 부부와 그 옆에 작은 아이.
(아이에게 웃어주며 손을 흔들었지만, 아이는 이상한 사람이라는 듯 고개를 돌려버리고 나는 꽤나 무안해진다.)
내 시선이 닿은 창밖의 사람들도 가끔은 나에게 시선을 멈추지만 이내 거두고 길을 간다.
저 수많은 사람 중에 그저 한 명일 뿐이라는 것이 묘하게 안심이 된다.
내가 좋아하는 글쓰기를 한다.
오늘의 나는 괜찮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