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장미

계절성 우울 증후군 7

by 하란

내 나이 다섯인가 여섯 살 즈음 우리 아버지는 내게 말씀하셨다.

- 막내는 똑똑하니 되었다


나만 아는 지인들은 잘 믿기지 않겠지만, 우리 오빠, 언니들은 외모가 꽤나 준수하다.

오빠들은 그 나이대(큰오빠는 61년생, 작은 오빠는 66년생이다)에 178 정도의 큰 키를 가지고 있고 특히 작은 오빠는 개그맨 김한국과 비슷한 외모로 어릴 적 기억에 여자 친구가 끊이지 않았다.

- 그중 유치원 선생님도 몇 명 있어 어릴 적 직접 만든 인형 같은 장난감이 끊이지 않았다.

큰언니는 워낙 어릴 때부터 프랑스 도자기 인형 같은 외모로 어딜 가나 이쁘단 소리를 지겹게 들었고 작은 언니는 세 딸들 중 키가 가장 크더니, 고등학생이 되자 외모가 꽃이 피기 시작해, 학교 가는 길 버스에서 쪽지를 받아오기가 일쑤였고 고2 때는 급기야 이휘재를 닮은 꽃미남 오빠와 연애를 하기에 이르렀다.

그렇다고 내가 엄청나니 못생겼냐 하면 ‘그건 아니라고!’ 이 연사! 소리 높여! 외치고 싶다.

상대적으로 예쁘지 않았을 뿐! 보통은 간다, 보통은!

어쨌든 다소 평범하게 생긴 외모는 가족 안에서 상대적인 열등감의 대상이었고,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읽기 시작한 책은 초등학교 4학년부터는 자는 시간 이외엔 끼고 살았는데 누워서 한쪽 턱을 괴고 읽는 자세를 유지하다 보니, 안면비대칭이 생겨버렸고, 나의 외모 열등감의 증폭제가 되었다.

그리고 왠지 나와 막역하다 할 정도로 친한 친구들은 모두 상급의 외모를 가진 친구들이었고 그러다 보니 나의 외모 열등감은 가실 날이 없었다.

갓 스물을 넘기고 첫사랑을 하며, 사랑의 힘으로 살까지 쪽 빠지니 그땐 뷰티플까지는 몰라도 프리티 정도는 되지 않았었나 싶다.

-사실 스무 살엔 누구나 다 이쁘다


프리티

26살 나이에 좀 이른 결혼을 하고 직장생활과 육아를 병행하며 살다 보니 사실 나를 꾸민다는 건 사치였고 그렇게 이삼십 대를 아줌마로 보내고 40대에 퇴직을 하고 나서야, 여자인 내가 보였다.

여자인 나는 예쁘고, 아니 예뻐 보이고 싶었다.


다이어트를 하고(퇴직 후 첫 목표인 49.9킬로그램 찍기를 여즉 달성 못하곤 있지만, 문턱인 50.9까지 갔다가도 아쉽게 실패를 반복 중이다) 생전 해본 적이 없던 네일 관리를 하고 마사지를 받고, 그 동안은 입지 않던 샤랄라 한 원피스를 입고,

-성형과 화장은 왠지 진짜 내가 아닌 것 같아 최후의 보루로 삼고 있다.

그렇게 여자인 나를 위해 노력을 하다 보니, 그래도 조금은 열등감이 사라지지 않았나 싶은데(내 대학 동기들은 지금의 내가 가장 예쁘다고 한다, 욕인지 칭찬인지 원) 이렇게 우울이 찾아오면 가장 먼저 자존감이 바닥을 치고 그중 외모 열등감의 공은 거의 임진왜란 때 충무공의 활약상만큼이나 크다.


이틀 전 집에만 있으면 우울이 더 깊어질 듯하여 오랜만에 대학 산악 동아리 모임을 갔다. 자주 나오지 않으셔서 낯선 선배가 두 분이 계셨는데, 서로들 반가워 인사를 하는 와중이라 인사를 못 드리고 어찌어찌 산행을 시작하게 되었다.

1기 선배님과 함께 오신 사모님이 유일한 여성 멤버라 그 분과 이야기를 하며 보조를 맞춰 산행을 하다 보니 산행 중에도 어찌 인사를 드릴 기회가 마땅치가 않았는데, 아차산 정상에 다다르자 아이스크림을 팔고 있는 분이 보였고 메로나를 사서 앞서 가던 선배님들을 쫓아가 드렸는데, 날 모르시는 선배님께서 손사래를 치면 말씀하셨다

-아유 사모님이 드세요~

-음, 뭔가가 크게 잘못됐구나

하지만 뭔가 해명을 하기도 애매하게 분위기가 다시 흘러가 버렸고, 용마산 정상 즈음에서 간식을 나누어 먹고 있을 때, 얼굴이 낯설던 또 한 분의 선배님께서 말씀하셨다.

-형수님은 너무 젊어 보여서 할머니라고 생각 안 하겠어요

-오 마이 갓! 여기서 떨어져 죽어버려야 하나

세상에나 날 다른 1기 선배님 와이프로 생각하셨던 것이었다. 날 동문 와이프로 생각하시는

듯 한건 알고 있었지만, 같이 간 12기 선배 와이프 정도로 생각하는 줄 알았지.

-1기 선배님 와이프라뇨!!!! 할머니라뇨!!!! 저 17긴데! 나 나름 동안인 데에에!

곧 날 알고 계신 선배님들의 박장대소와 함께 해명과, 사과, 질타(신고를 제대로 안했냐는)가 이어지고 한바탕 웃었지만, 안 그래도 우울과 함께 찾아온 외모 자존감 하락은 드디어 바닥을 쳤다.

1기 선배님 와이프와 함께 계속 얘기하며 가길래 선배와 친한 1기 선배 와이프인 줄 아셨다고 너무 젊어서 이상했다고 해명은 하셨지만, 찝찝한 기분은 영 가시지가 않고 하산하는 망우리 길가의 늘어서 있는 무덤들처럼 기분은 스산해졌다.

하산 후 사주신 맛있는 염소고기와 막걸리에 기분이 풀리긴 했지만.

어쨌든 거나한 술에 꼬박꼬박 졸면서도 집은 잘 찾아왔고 지하철역에 도착해 집을 향하려는데 역 광장 흡연 박스 옆에 핀 장미꽃이 눈길과 발길을 잡는다.

가을에 핀 장미.

예쁘긴 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초라하고 쓸쓸해 보인다.

순간, 내가 저 장미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봄이 다 지나 겨울을 앞둔 시기에 잘못 핀 장미.

중년의 나이에 여자로서 예쁘고자 하는 나는 그저 주책맞은 장미가 아닐까 하고.


사람들은 얘기한다. 외면의 아름다움보다는 내면의 아름다움이 먼저라고.

타인의 평가는 중요하지 않고, 나 자신의 자신감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현실은, 최소한 소심하고 멘털 약한 현실의 나는 그게 잘되지 않는다.

그리고 우울이 찾아온 지금 저 바닥에 있는 외모 자존감은 누군가의 예쁘다는 칭찬이, 그 밧줄이 필요하다.

그러고 보면 평생을 예쁘단 소리를 듬뿍 들어보지 못한, 그런데 사십 중반의 나이가 들어가는 내가, 이젠 여자로서는 예쁠 수가 없겠구나 하는 안타까움과 조바심이 이 가을 우울의 하나의 원인일 수도 있겠다.


어찌하랴.

똑똑해서 다행인 막내로 태어난 걸.

어찌하랴.

이미 먹어버린 나이를

다만, 언젠가의 어느 술자리에서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가’ 그렇다

라고 나태주 시인의 ‘풀꽃’을 인용해 누군가 내게 얘기한 농담 같은 말을 되새기며 이 밑바닥을 벗어나려 발버둥 쳐 봐야 할지도.

아니면, 신경정신과가 아닌 성형외과가 내 우울을 치유할 방법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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