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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혹은 추억
동대구역에서
by
하란
Nov 23. 2022
서대구역이 생겼다
!
그게 뭐?
라고들 하겠지. 그 사실을 이미 알고 있던 사람도. 혹은 생기든 말든 상관없는 사람도.
대구에서 초등학교와 중학교 1년, 그리고 고등학교 1년을 보냈다. 태어난 곳에 국한하지 않는 고향을 성인이 되기 전까지의 시간을 보낸 곳이라고 한다면 내가 살았던 영월, 제천, 대구 중 나의 고향은 대구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기차여행에 관한 글을 쓰려고 했을 때, KTX가 정차하는 역은 빼자라고 생각했었다.
약간의 겉멋으로. 훗.
주말 옥천에 가기로 했던 약속이 깨지고, 혼자 어디를 갈까 하고 지도와 코레일 앱을 뒤지다가 서대구역이 있다는 걸 알았다.
찾아보니 1991년 화물 터미널 역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역이었으나 개발이 지지부진하여 유령 역으로 남아있다가 올해 KTX 정차역으로 개역을 한 것이라 한다.
- 그래, 새로 생긴 역이니 예외를 두자.
표를 끊어두고 어디를 갈까 하다, 역이 유년시절 살던 곳과 가까워 한 바퀴 돌아보자고 맘먹는다. 내 기억 속 그리 행복한 유년시절은 아니었으나, 왜인지 ‘유년시절’은 그리움을 가진 단어이다.
젠장, 언제나 그렇듯 늦는 건 여유가 있을 때이다. 일찍 일어나 여유를 부리다 기차를 놓쳐버렸다.
동대구역에 정차하는 KTX는 70대가 훌쩍 넘지만, 서대구역에 정차하는 KTX 13대.
다음 기차까지 텀이 너무 길어 잠시 고민하다 동대구역행 표를 끊는다.
예외의 예외. 차선의 차선.
역 앞에서 156번 버스를 타고 초등학교로 향한다.
보통은 택시를 타지만, 오늘 기차의 빠름을 조금은 상쇄해야 멀미가 나지 않을 듯했다.
정류장에 내리니 1년을 다녔던 중학교 맞은편, 초등학교로 가는 길로 발길이 자연스레 움직인다.
1학년때까진 소부국민학교인 줄 알았다
학교는 그 자리에 그대로 하지만 변한 모습으로 예전 모습을 알 듯 모를 듯 지키고 있는데, 맞은편 두 문방‘구’는 예전 모습 그대로 단지 그때보단 많이 낡고 쇄락한 모습으로 하지만 여전히 다정하게 자리 잡고 있다.
다음이 있다면 그땐 이 정도의 남음도 없을 듯하여 사진을 몇 장 남기고 문방구로 가본다.
낯이 익은 듯 아닌
듯한
할머님이 하나뿐인 꼬마 손님과 아이의 엄마를 딸인 듯 손주인 듯 바라보고 계신다.
나름의 심사숙고 끝에 추억을 몇 개 집어 들고 계산하려니, 쿨하게 400원을 깎아주신다.
지금은 작은 자판의 물건을 정도는 몽땅 살 수가 있게 되었지만, 어릴 때처럼 가지고 싶은 욕망과 가질 수 없는 아쉬움의 합이었던 정도의 큰 기쁨은 없다.
기억을 더듬어(더듬을 필요도 없이 발이 익숙하다) 그때의 하굣길을 걸어본다.
외숙모가 좌판을 펴고 깨소금을
파셨던(지금은 방앗간을 하신다)
서부시장
.
정비가 많이 되어 지금은 오미거리란 이름으로 불리고 있지만, 구석구석 미로같이 복잡한 시장길은 여전하다.
- 아직도 가끔은 길을 잃고 헤매는 꿈을 꿀 때의 주요한 배경장소 중 하나이다
서부시장
시장을 나와 좀 걸으니 작은 언니와 지나가는 택시의 개수를 세며 방직공장에 간 큰언니를 태운 봉고버스가 오기를 기다리던 약국, 할아버지가 한약방을 하셔서 동네 제일 부자였던 친구의 집도 보인다.
단칸 월세방에 살던 나에게 3층 건물인 친구의 집은 재벌집의 그것이었는데, 그 집의 거실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던 책은 그 집 손주들보단 내가 더 많이 읽었다.
여기는 뭐가 있었었는데, 여기는 뭐가 있었는데 하며 올라가다 보니 미영이네 방앗간이 보인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열심히 일하시던 미영이네 부모님, 놀러 가면 뽑고 있던 가래떡의 꽁지를 뚝 떼어주시곤 했다. 지금도 여전히 가게가 있어 들려 인사를 하고 미영이 소식을 물을까 싶었지만, 이미 30년이 훌쩍 지나버린 시간이 내 발길을 돌리게 한다.
그리고는 내가 살던 집의 골목길.
여름이면 재래식 화장실을 탈출한 구더기가 기어 다녀 까치발을 들고 피해 다니곤 하던,
비가 오는 날이면 개구리가 가득하던,
아이들과 숨바꼭질하고 고무줄놀이를 하던,
어느 어스름한 저녁엔가 오빠인
줄 알고 어느 낯선 이 에게 달려갔다
잡혀
도망
쳤던
,
술 취한 아버지의 노래소리가 들리면 발길을 돌리던 그 골목길.
-생각해 보니 술 취한 아버지의 18번은 '발길을 돌리려고~'로 시작하는 노래였다 훗
훅 하고 밀려오는 기억과 함께 어린 시절의 막연한 안온함과 두려움이 새어 나온다.
그곳에 서자 바로 며칠 전 꿈속에서 이 골목 어딘가를 헤매고 있었다는 게 떠오른다.
마음이 불안할 때면 꿈속에서 이 골목 어딘가를 하염없이 헤매곤 하는데, 며칠 전의 불안함은 이젠 기억나지 않고 꿈속 장면만이 기억 속에 남아있다.
오랜 기억 속 공간은 꿈에서 기억되고, 그곳에 마주 서자 비로소 기억되는 그 공간의 꿈
예전 집 앞, 혹은 집 앞이라 추정되는 곳에 섰다. 빌라 한 채가 서있다.
집이라고 하기도 무색했던 단칸방들이 즐비하던 골목은 이제 빌라촌이 되었다.
다음이 있다면 다음엔 내 기억의 잔재는 이젠 남아있지 않겠구나 하는 직감이 들어 한동안 발걸음을 떼지
못한다.
골목을 뒤로하고 자주 다니곤 했던 익숙하지만 이젠 낯선 길들을
가을의 정취를 느끼며 걸어 예약해 놓은 숙소로 향한다.
숙소에 짐을 풀고 잠시 누웠다가 밥을 먹으러, 아니 술을 마시러 나선다.
나는 대체로 예전의 장소들은 그곳에서의 음식과 함께 기억하곤 하는데, 어린 시절 대구는 떡볶이와 납작 만두, 칼국수, 매운오뎅 등 분식으로 기억된다.
여전히 좋아하는 음식이지만 이젠 술을 즐기는 나이가 된 나는 막창과, 아나고, 무침회 등
으른의 음식을 찾는다.
그나마 무침회는 가장이었던 큰 오빠의 월급날 메뉴였던 통닭, 만두와
함께 주요 단골이었던 음식이라 오늘의 메뉴에 넣기로 한다.
근처를 검색해 허름한 막창집으로 들어간다.
요즘 유명한 막창집들은 보통 생막창을 잘라 넓게 펼쳐 구워주곤 하는데, 내게 막창은 땡글 땡글 하게 잘려 연탄 불판 위로 우루르 쏟아 바싹 구워 먹는 음식이기에 유명집 보단 동네 가게를 선호한다.
이곳은 1인분에 8천 원이라 당연히 냉동 막창일 줄 알았는데 생막창이 내어져 온다. 다행히 잘리지 않고 나와 땡글 땡글 하게 구워 옛 느낌으로 최상의 맛을 즐길 수 있었다.
배추전이 떡하니 사이드로 나오고 싱싱한 야채와 깔끔한 찬들, 막창을 찍어 먹는 장이 너무 맛있어 된장을 안 시킬 수가 없었고, 된장과 함께 나온 맛깔난 김치에 밥을 아니 먹을 수가 없다.
배는 잔뜩 불렀지만 1킬로미터가 넘는 거리이기에 걷다 보면 배가 꺼지겠지 생각하고 반고개 무침회 거리로 향한다.
이제는 가로수로 볼 수 없는 플라타너스 잎들이 가을의 정취를 더해준다.
무침회 거리의 맛과 양은 거의 평균화되어 있어 식당 선정에 딱히 노력을 요하지 않는다. 어릴 때의 별명이었던 똘똘이 식당으로 향해 무침회와 납작 만두를 시켰다.
배가 불러서 이기도 하지만 좀 달고 세련된 맛이 어릴 때의 맛이 아니다. 소주 한 병과 좀 먹다가 포장을 해서 숙소로 돌아왔다.
- 포장해온 무침회는 자다 깨서 무려 새벽 4시에 맥주와 함께 해치웠다!
반고개 무침회, 회라고 하지만 삶은 오징어와 우렁이살이다
다음날, 갈 때라도 들려볼까 하는 마음에 서대구역으로 갈까 하다, 이왕의 추억 여행인데 싶어 복국으로 해장을 하고 달성공원으로 향한다.
학교 옆이라 소풍의 주요 장소였고 방과 후 50원쯤 하던 냉차를 한 잔씩 얻어먹는 재미에 백수였던 아버지의 소일거리에 동참하곤 했다.
그땐 경상도에서 꽤 큰 규모의 동물원과 입구에서 표를 받던 거인 아저씨로도 유명해 남녀노소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었다.
지금은 주변에 늘어선 아파트들 사이에서 왠지 한 풀 기가 죽은 모습이고, 동물들도 이젠 나이가 많아서인지 힘없이 누워 다만 지나가는 관람객을 가끔 쳐다볼 뿐이다.
그래도 주말인지라 꽤 많은 사람들이 있었는데, 예전의 아버지처럼 이젠 할 일이 없어 공원에 나온 노인들과 그래도 남아있는 동물원이라 아이를 데리고 온 젊은 부부들 뿐이다.
아이와 노인만이 찾는 곳.
묘한 이질감이 드는 풍경이다.
이제는 거의 백 년을 바라 볼 커다란 나무 아래서 음악을 들으며 아이들과 노인을 바라보다 자리를 털고 일어나 역으로 향한다.
내 안의 아이와 작별인사를 하고
나의 아이들이 기다리는 곳으로 가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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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발적 백수. 하고 싶은 건 그냥 하자. 잘 못해도, 하다 망해도 괜찮다. 그냥 하는 것들에 대한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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