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은 세상 예민한데 행동은 그렇지가 못해 일상적인 것들을 챙기지 못하고 미루거나 덤벙댈 때가 있다.
-이게 말이 되는지는 몰라도 하여튼 그렇다.
휴대폰에 며칠 전부터 느낌표가 있는 알림 표시가 계속 뜨는 건 본 듯하지만, 무심히 넘겨 버리기를 며칠, 일요일 낮 귀차니즘에 보쌈을 배달시켜 먹으며 습관적으로 별그램용 음식 사진을 찍으려는데 저장 공간이 없단다.
며칠간 떠있던 느낌표가 요런 사태를 조심하란 것이었던 것.
휴대폰이 시키는 대로 저장 공간을 확인하니, 거의 사진과 동영상이 80프로 정도를 차지하고 있었다. 앨범을 열어보니 어느새 저장된 사진이 만장이 넘어 있었다. 최신폰을 장만해 사용하다(다들 그렇게 생각하듯) 만취 상태에서 깨뜨려 먹은 반년 정도의 시간을 빼도 삼 년 반의 시간 동안 내가 남긴 흔적인 것이다. 일단 컴퓨터로 옮겨 놓자 싶어 연결했지만, 만 장이란 건 꽤나 많은 건지, 버벅대다 오류가 나길 반복해 얼마 되지 않는 나의 인내심을 바닥내 버린다.
기계와의 옥신각신에 지쳐 침대에 벌러덩 누워 사진을 날짜순으로 정렬하고는 오래된 순서대로 들여다본다.
직장에서의 마지막 퇴근 후, 퇴직 기념으로 나 스스로에게 사 준 최신핸드폰이었다.
-물론 한 달도 되지 않아 바로 다음 기종이 나와 바로 구형이 되어버렸지만-
기억이 선명하진 않지만, 새로운 생활의 흔적을 잘 남기고 픈 마음과 설렘이 아니었을까 싶다.
어쨌든 첫 사진은 태어나 처음 해 본 탈색의 흔적.
검은 머리에서 주황으로 노랑으로 빼기를 거듭하가다가 회색을 더해 만든 느타리버섯색 머리를 하곤 폼을 재며 찍은 사진은 날 금세 생애 첫 일탈을 해보고 신이 난 그때로 데려다준다.
잠깐의 책방 시절, 종주와 횡단의 시간...
그렇게 잠시 추억여행에 빠졌다가 정리라는 나의 목적을 상기하고 지울 사진을 훑어본다.
사진은 네 종류 정도로 나뉘었다.
가족(주로 아이들인)과 풍경, 음식 그리고 맘에 드는 책 구절.
셀카는 누가 열어서 봐도 괜찮을 만한 사진만 남기고 싶지만 그럼 살아남을 사진이 없을 듯하여 변화의 기록 차원에서 시기별로 그나마 가장 예뻐 보이는 사진만 남긴다.
아이들의 사진은 손가락만 담겼다 하더라도 모두 남긴다. 그나마 중고등학교 이후는 사진에 담기가 별 따기보다 어려워 슬쩍슬쩍 찍은 몰카들만 있을 뿐이다.
음식 사진은 재빨리 휴지통행.
그때그때 여행의, 여행에서의 음주의 추억이 담뿍 담겨 있지만 회상은 나의 식욕만을 불러올 뿐.
책구절은 다시 한번 읽어 보는 것으로 책에 대한 예의를 다하고 안녕을 고한다.
가장 고민되는 것은 풍경이 담긴 사진들이었다.
남겨져 있는 풍경은 모두 일정 부분의 감상 혹은 감동을 가진 것들일 텐데, 시간이 지난 후 바라보니 가장 색이 많이 바래지는 사진이다. 그때의 분위기, 그때의 감정 등이 어우러졌기에 카메라의 셔터를 누르게 했을 테니.
풍경 사진을 들여다보면 그때의 기억들이 슬쩍 몰려오긴 하지만, 이걸 남겨야 하냐의 관점에선 사진 자체의 심미적 가치가 기준이 될 수밖에 없고 기억이 바래진 풍경은 그저 어느 산, 어느 들판, 어느 물가일 뿐이다.
앞으론 풍경 사진은 그때의 나의 마음과 함께 별그램에만 남기자라고 마음먹고 과감히 휴지통행을 결정한다.
- 음, 혹시 나의 창작욕구가 폭발할지도 모를 그 어느 때를 대비해 그리고 싶어질지도 모를 몇몇의 풍경은 남겨 두었다.
그렇게 반나절을 추억과 사진을 정리하다 보니 슬쩍 허기가 진다. 살아남은 추억은 컴퓨터로 이주시켜 주고 버려버린 추억들이 담기 휴지통은 미련을 떨치고 비워버린다.
이제 남은 사진은 오천장 정도.
나의 지난 절반의 시간에 나의 반나절을 소비하고 이제 다가 올 나의 시간을 채울 공간을 할당받은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