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

화목하지 않습니다

by 하란

아침 일찍부터 서둘러 고속터미널 꽃시장엘 다녀왔다.

내일 큰 아이의 고등학교 졸업식 꽃다발을 만들기 위해.


굳이 손익분기표를 따져보자면, 싸고 싱싱한 꽃값은 왕복 차비와 4시간 가까이 소요된 시간, 그리고 그 시간 동안 미뤄둔 일의_거의 한가한 편이구만 하필 요즘만 바쁘다_기회비용까지 더하면 설령 이익이 있다해도 미미할 것이고 거의 손해에 가깝다.

꽃다발을 받을 아이의 기쁨이란 최고의 플러스 요인은 졸업식이 끝나자마자 여자친구와 놀거라 굳이 안 와도 된다는 이야기에 이미 저만치 날아간 지 오래이고, 어차피 여자친구의 품에 안길 꽃다발은 집 근처 꽃집에서 주문해 가는 것이 더 예쁠 것이다.


그럼 왜 굳이…

곱디고운 튤립을 한 아름 안아 들고 오는 지하철 안에서 가만히 생각해 본다.

아마도 뭐라도 좀 더 해주고 싶은 마음이었던 듯하다. 뭐라도 좀 더…


큰아이가 고등학교 졸업을 하고 작은 아이가 중학교 졸업을 하는 시점을 엄마의 가족으로부터의 독립일로 선포한 지 꽤 되었다.

작은 아이는 잠시 ‘왜 오빠는 고등학교 졸업까지인데 나는 왜 중학교 졸업까지야?’라고 상당히 합리적인 질문을 던졌으나 ‘넌 야무지잖아’란 나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끄덕해주었고 나머지 가족들도 나란 사람을, 나란 엄마를 이해할 순 없어도 너무도 잘 알기에 지지라기 보단 받아들임에 가까운 인정을 해주었다.


내일 큰 아이의 졸업과 성인으로서 부모로부터의 독립과 함께 나는 언제고 독립할 수 있는 암묵적 합의권을 얻었으나 오늘의 마음은 그 무엇도 아닌 그저 아쉬움뿐이다.

좀 더 잘해줄 걸, 좀 더 사랑해 줄 걸, 좀 더, 뭐라도 좀 더.


큰 아이는 뱃속에서부터 고집스레 거꾸로 있어, 결국은 제왕절개로 태어났고, 돌 때까진 밤낮이 바뀐 것은 물론 처음이라 서투른 엄마의 손길이 불편해서였는지 끊임없이 울고 또 울어 명창의 목이 틔이듯 일찍부터 목이 틔인 아이다.

_이후 중3 때 본인의 성량과 절대음감을 발견, 가수가 될 것을 선언하였으나 보컬레슨 2주 만에 깔끔하게 접고 요즘은 늦은 밤 감성이 풀로 채워지면 닫힌 문 사이로 성량 좋은(성량만) 목소리가 흘러나오곤 한다._

돌 무렵 서고 걷기 시작하고는, 아이의 첫걸음에 느낀 감격스러운 기쁨은 금세 사라지게 만들곤 잠시 잠깐 눈을 뗄라치면 얼굴, 무릎, 손바닥 어디 한 군데는 깨지고 말아 몸에 반창고 가실 날이 없는 걱정과 잔소리의 나날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리가 부러진 것 같다는 선생님의 전화를 받고 급하게 조퇴를 하고 학교로 달려갔더니 조회대에서 뛰어내렸단다.

세상에!

아이를 업고 병원을 가는 내내 도대체! 왜 그런 거냐! 고, 꽉꽉 눌렀지만 어쩔 수 없이 화가 풀풀 새어 나오는 나의 질문에 파워레인저 놀이를 했다고 작은 소리로 말하곤, 화난 엄마의 눈치를 보느라 진찰을 하고 엑스레이를 찍고 깁스를 하는 동안 한 마디도 없이 얌전히 있더니, 수납을 기다리며 앉아있는 내 치맛자락을 가만히 잡아끌고는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말했다.

엄마 이쪽 다리가 아닌데…

화난 엄마가 무서워 아픈 다리가 아닌 멀쩡한 다리에 깁스를 하는데도 말을 못 했나 보다.

다시 깁스를 하는 동안 병원 사람들과 심지어는 나까지 실소가 섞인 웃음을 짓게 만들고 한 동안 우리 부부의 술자리 에피소드로 회자되기도 했다.

첫아이 인 데다 엄마에겐 외계생물같이 느껴지는 아들이고 게다가 유난히 유난 스러 키우는 강도가 꽤나 상위레벨이 아니었나 싶다

_객관성을 조금 더하자면 초등학교에서 한 성격유형 검사 결과 상담을 갔을 때, 상담 선생님은 검사 결과지와 날 잠시 바라보고 침묵하더니 키우기가 까다로운 성격의 아이예요.라고 하셨고, 이후 나의 길고 긴 하소연이 이었졌었다_

사춘기를 겪으며, 유난함은 반항으로 그 색을 바꾸어 고등학교 1학년 사춘기가 얼추 마무리될 때까지 말 그대로 정말 지겹게, 지겹게 싸웠다.

출근 전 아이와 한바탕 하고 사무실에 들어가기 전 남은 눈물을 짜내고 부은 눈에 파운데이션을 톡톡 두드리고 가는 게 일과였으니.

내 속으로 낳은 게 맞나 싶게 알 수 없던 아들은 내 속으로 낳아 엄마를 어떻게 하면 아픈지 정확하게 잘 아는 내 아들이었다.

오랜 전투 끝, 나의 백기 투항을 못 이긴 척 받아들인 아들과는 그렇게 휴전인 상태로 성인이 된 아들의 독립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징글맞던 고난이도의 육아에 어서 독립의 그날이 오길 고대했건만 내일로 다가온 졸업에 시원할 것만 같던 마음은 어딜가고 아쉬움만 질척거린다.

좀 더, 뭐라도 좀 더 잘해줬다면 좋았겠지만, 그렇다고 다시 아이를 내 품으로 끌어 들일 수는 없는 일.

아이의 반항에 속이 상할 때, 다음의 어느 생쯤에선 너의 지랄 맞은 첫째 아들로 태어나 주겠다던 마음이 다음 어느 생에 다시 한번 나의 아이로, 그땐 그저 숨만 쉬어도 이쁠 막내로 다시 찾아와 주길 바라고 있다.

그 보다 가까울 미래엔 아이를 닮은 아이의 첫 아이를 봐줄까 하는 생각도 슬쩍 들지만, 일단은 지우개로 슥슥 지워버린다.

다이소에 들러 꽃다발을 포장할 포장지를 사고, 아이가 좋아하는 불고기거리를 사서 집으로 돌아가야지 하고 생각하는 지금, 아무래도 '야무진' 둘째를 놓을 수는 없을 것 같지만 그래도 반쯤은 나도 육아에서 졸업이구나 하는 생각이 살며시 든다.

내일 아이의 졸업 축하 꽃다발을 만들고 남은 자투리 꽃으로 나의 1단계 육아 졸업을 축하하는 꽃다발도 하나 만들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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