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모든 일이 재미있어지는 마법

어느 하루의 기록

by 하란

세상 모든 일이 재미있어지는 마법이 있다.

아, 모든 건 아니고 딱 하나만 빼고.

새해 들어 책 읽기에 좀 재미가 붙나 싶게 거의 이틀에 한 권꼴로 읽어 나가다가 딱 한 책에서 브레이크가 걸렸다. 재미가 없는 책도 아닌데 그때의 나의 상황이나 마음의 산란함이 원인이 되는지 어쩌는지 몰라도 가끔 이런 경우가 왕왕 있다. 그리하여 갑작스레 벽에 막힌 독서는 435페이지의 책을 보름이 넘도록 붙잡고 있으면서도 100페이지도 채 읽지 못했는데 지난 이틀 동안 3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을 다 읽어 버렸다.

그것도 아주 재미나게.

그것뿐인가 지난주엔 미루고 미루던 창고방 정리도 끝냈고 벼르고 벼르던 사과잼을 한 솥 만들기도 했다. 그 외에도 지난주에 한 대청소며 이불, 커튼 빨래 등등으로 집안은 반짝반짝 윤이 돌았다. 심지어 지난가을부터 내내 나를 괴롭히던 불면증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아침에 십분 이십 분의 잠이 너무도 너무도 간절히 아쉽기까지 했다.

나름의 갓생의 비결은 단순했다.

사소한 하기 싫음을 한 방에 이길 만큼의 강력한 ‘하기 싫은 일’이 나타난 것이다.

나름 이런저런 일로, 요런조런 놀거리로 늘 바쁜 나이건만, 남들에게 비춰지는 대표 이미지가 ‘백수’이다 보니 퇴직 후 여기저기 뭘 부탁하거나 시키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사실 거절해도 될 일이지만 선천적 거절 능력 부족증인 나는 늘 일을 떠맡고는 스트레스를 받기가 일쑤이다.

사실 이번 일은 하루 이틀 맘먹고 딱! 하면 그만일 정도의 일인데, 그 맘이 딱 먹어지지가 않는다는 게 문제였다.

왜냐.

하기가 싫으니까!!

나는 세상 평범한 어리석은 사람의 하나이므로 해치우고 말면 될 일을 스트레스는 잔뜩 받은 채 하루 이틀 미루기를 반복하다 해주기로 한 기한이 내일로 다가와서야 맘을 겨우 먹고 책상에 앉았다. 어떻게든 오늘은 이 일과 이 일로 인한 스트레스를 끝내겠다는 결연한 의지로 아침 9시에 책상에 앉아 쓰기 시작해 12시에 점심을 먹고 왠지 그래야만 할 것 같은 강한 느낌적인 느낌으로 종이컵에 믹스커피를 한 잔 타서 마시고는_관성이란 것이 무섭다_잠시의 달콤한 휴식을 충분히 아까워한 후 다시 책상에 다시 앉았다.

화장실을 들락날락, 눈에 띈 책상에 얼룩을 휴지로 박박 지우기도 하고 시간을 확인하려 휴대폰을 들었다가 인별그램을 살짝 확인한다는 게 삼십 분이 훌쩍_SNS에는 블랙홀이 존재하는 게 분명하다_한 시간을 넘게 그렇게 소비해 버리고는 이러다 저녁 시간까지 뺏겨 버리면 안 된다는 자각에 웬만해선 마시지 않는, 강력한 카페인의 G7 커피를 한 잔 마시고 나를 다시 자리에 앉힌다.

나름 집중해 일을 마무리하고 메일을 보내고 나니 5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다. 그래도 6시를 넘기지 않았다니 매우 성공적이란 생각에 기분이 좋아진다.

하기 싫은 일을 한 나에게 상을 아니 줄 수는 없는 일! 아마도 거의 100% 집에 있을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 지금 양장피 시켜 놓고 갈 테니까, 칭다오랑 연태고량 좀 사놔.’

양장피와 연태고량이 기다릴 나의 천국으로 향하며 가끔 삶이 느슨할 땐 하기 싫은 일 하나가 내 등을 떠미는 원동력이 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슬몃 들었다.

내 삶에 보탬이 되는, 혹은 꼭 해야 하는 ‘싫은 일’이라면 그 싫은 일이 하기 싫어 그냥 보통의 것에서 재미의 영역으로 올라오는 수많은 것들을 즐길 수 있지 않겠나 하는.

세상 모든 것이 재미있어지는 소소한 마법이 되지 않겠나 하는.

하지만 양장피에 고맥을 한 잔 하고 나니, 나는 굳이 그 마법이 필요 없소!하는 심정이다.

오랜만에 쫓는 이도 없는데 시간에 쫓기고 점심 후의 믹스커피 한 잔의 즐거움도 맛봤지만, 그래도 여전히 하기 싫은 일은 하기 싫은 것.

그런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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