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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란 Oct 29. 2023

나 VS 나

인정의 대상인 나와 극복의 대상인 나

여느 날과 같이 아침운동을 하다 문득 나와 내가 서로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나의 아침 운동 코스는 3가지인데 1코스는 내가 사는 공항신도시를 빙 둘러 있는 3킬로쯤 되는 오래된 벚꽃나무가 멋들어진 산책로를 걷고 한적한 주택가와 지하철역을 지나 돌아오는 편안한 길로 5킬로미터가 조금 안되어 내겐 운동이라보단 산책길에 가까운 코스이다.

그리고 2코스는 1코스의 산책로를 걷고 산책로 끝머리에 있는 100미터가 조금 안 되는 야트막한 산인 백련산을 포함하는 코스로 7킬로미터가 조금 안 되는 코스.

그리고 마지막 3코스는 2코스에서 260미터쯤 되는 등산이 필요한 백운산까지 포함하는 코스로 11킬로에 2시간을 조금 넘는 강도 높은 운동코스이다.

2코스와 3코스

늘 다이어트에 시달리는 나는 3코스를 지향하지만, 매일 그 정도의 운동을 할 정도의 의지 강한 인간은 아니고 전날 폭식이 있었던 날은 조금이라도 지난날을 만회하고자 3코스를 선택하곤 한다.

-요즘은 1주일에 1코스 1회 포함 3회 이상 아침운동을 하는 걸 목표로 하고 있다.

그날은 전날 피자, 떡볶이에 소맥으로 해피한 파티를 즐기고 난 뒤라 당연히 3코스를 목표로 집을 나섰다. 2코스의 시작인 백련산까지는 무리 없이 나아갔다. 백련산을 내려오면 바로 2코스와 3코스의 선택의 지점인데 그 때문인지 백련산 정상을 찍고 하산하는 길부터 내 내면의 격렬한 논쟁이 시작된 것이다.

안정을 추구하는 내가 투덜대기 시작한다.

‘꼭 그렇게까지 무리를 하고 살아야 해? 하고 싶은 것이든 아니든 자연스럽게 해야지 그렇게 경쟁하듯 하는 건 난 싫어.’

그러자 ‘극복’하고자 하는 내가 열변을 토한다.

‘어제 참지 못하고 먹은 음식들 생각 안 해? 돼지로 살래? 이 정도도 못하면 뭘 하겠어?’

이런 느낌의 줄다리기가 몇 번 이어지다가 ‘안정’의 내가 불만이 가득한 채 물러서려는 게 느껴졌다.

그 순간, 나는 그동안 나를 너무 극복의 대상으로 봐왔던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이대로의 나를 인정해주지 않고 극복해야만 할 조금 부족한 사람으로 생각한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안정을 추구하는 나를 그저 게으름뱅이, 의지박약으로 치부하고 무시하기보단 서로가 대화를 통해 협의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

순간 빠르게 걷던 걸음을 늦추고 천천히 걸어 2코스로 운동을 마무리했다.

-그저 단순히 운동이 하기 싫었던 것일지도!     


지난 며칠은 바짝 텐션을 올려 다이어트를 하던 중이었는데, 어제 아침은 너무도 꼼짝하기가 싫어 뒹굴대다가 결국 운동을 나서지 못했다.

이번엔 ‘안정’의 내가 완승.

‘극복’의 나를 달래려 종일 ‘책’을 보며 뒹굴대기로 하고 모두가 좋아하는 술도 슬쩍 끼워 넣는다.

그리고 오늘 아침운동을 하는 것엔 견 없이 나온 나는 2코스냐 3코스냐로 다시 논쟁을 하다가 2코스를 하되 산책로를 달려서 강도를 좀 높이자고 의를 한다.

잠깐의 위기는 있었지만 무리 없이 아침 운동을 마치고 나니 극복의 내가 생각을 한다.

이 정도는 많이 익숙해진 것 같으니, 2.1코스 2.2코스...를 만들어서 조금씩 안정의 나를 살살 꼬드겨야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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