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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란 Nov 06. 2023

산소호흡기

어느 하루의 기록


숨 가쁜 날들이 이어지고 있다.

바쁘단 얘기가 아닌, 말 그대로 숨 쉬는 게 버거울 정도로 침잠하는 날들이다.

갑작스레 부는 태풍 같은 바람에 이리저리 휘날리는 낙엽처럼 생에 발붙이지 못하고 부유한다.

몇 번의 반복으로 조금은 익숙한 이 상황에 애써 나를 일으키고, 움직여 숨을 쉬게 하지만, 가끔은 실패하기도 한다.

어제는 아침에 눈을 뜨고 날 움직이려 한 노력은 결국 실패하고, 바닥을 알 수 없게 가라앉으려는 내게 끊임없이 음식을 욱여넣으며 잠시 잠깐의 자극이 되는 식욕의 힘으로 간신히 붙잡았다.

그리고 오늘, 아직은 내가 괜찮던 2주일 전에 만난 그녀와 다시 만남을 약속한 날이 되었다.

어떤 의욕도 없는 날 감지한 것일까.

전날 전화가 와 오늘의 일정을 확정해 준 그녀 덕에, 그대로 주저앉으려는 날 일으키고 머릿속 생각을 차단한 채 집안일을 하고 샤워를 하고 머리를 말리고 그녀에게 줄 고구마를 삶아 챙기고 집을 나섰다.

그녀를 만나기로 한 장소는 내가 좋아하는 도서관.

도서관에서 자신의 일에 집중하고 있는 그녀 앞에 앉아 있으니 불안이 조금씩 잦아들어 나도 해야 할 공부를 조금 하고 있자니, 제법 괜찮은 것도 같다.

카페에 마주 앉아 그녀가 사준 라테를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두서없이 주고받는다.

그녀에게 얘기를 하는 건지, 나 자신에게 얘기하는 건지 알 수 없는 이야기들, 말들, 단어들.

그렇게 마구 내뱉는 사이, 훅 하고 숨이 쉬어진다.     

돌아오는 길 검은 구름 사이로 햇볕이 비친다.

날이 개인 것인지, 잠시 그친 것인지 알 수는 없으나 어쨌든 지금은 볕이 비치고 있다.


숨이 턱턱 막히고 눈앞이 캄캄해져 어찌할 바를 모를 날들.

갑자기 닥치고야 마는 날들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지금 당장 숨을 이어갈 산소호흡기를 찾는 것.

맛있는 음식, 좋아하는 장소, 집중할 수 있는 일, 친구, 가족, 나를 말간 눈으로 바라보고 있을 아이, 한 잔의 술 혹은 한 권의 책.

그 무엇이든 지금 당장의 숨을 이어 갈, 그리하여 생을 놓지 않을 수 있게 해주는 산소호흡기를 찾는 것.

다만 그런 것일 뿐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견디고 이어나가다 보면 무엇이든 결말은 오지 않을까, 혹은 결말이 오지 않더라도 생을 계속될 것이다.

비록 고통일지라 해도 계속되는 생이란 어쩌면 마땅히 그래야 하는 것이기에, 내 곁에 산소호흡기를 찾는 것, 산소호흡기를 만들어 놓는 것만이 가장 명확히 필요한 것일지도 모른다.     

한 호흡을 돌리고 나니, 그녀에게 조금 미안해진다.

나도 그녀에게 산소호흡기 같은 존재였으면 좋으련만, 가끔 어떻게든 날 이해하려 미간을 살짝 찌푸려 가며 고민하는 그녀를 보면 아마도 그러지는 못한 모양이다.

하지만

'먹어두면 언젠가는 몸에 좋을 보약 같은 존재일지도 몰라'

라고 효과가 입증되지 않은 약을 파는 약장수처럼 그녀에게 그리고 내게 가만히 속삭여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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