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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란 Nov 13. 2023

몸과 마음의 힘겨루기

일상단상

‘꾸에에엑~엑’

돼지 멱따는 소리와 함께, 변기로 노란 위액이 쏟아져 나온다.

내 생에 열 손가락 안에 꼽힐 숙취다.

11월과 함께 찾아온 우울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그저

‘이러다 입으로 위를 토해내면 어쩌지’

‘정말 죽는 거 아닌가’

-어제까지만 해도 문득문득 죽고 싶었다!

하는 생각만이 깨질듯한 머릿속을 파고든다.

‘식욕’이 아닌 ‘생에 대한 욕구’로 부엌으로 기어가 칼국수를 끓인다.

냉동실을 뒤져 꽃게와 황태를 꺼내 국물을 우리고 호박과 당근 양파를 넣고, 칼칼한 고추장에 청량고춧가루를 더해 땀을 빼낼 준비를 마친다.

이걸 먹고도 해장이 안되면 난 끝난 거다.

‘후루룩’

땀을 뻘뻘 흘리며 칼국수를 먹고는 소파에 가서 눕는다.     

아 이제 좀 살 것 같다!     


몸과 마음이 서로 상호작용한다는 굳건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

몸이 안 좋으면, 마음도 힘들어지고

마음의 힘듦이 크면 몸의 아픔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매년 가을이면 잊지도 않고 찾아드는 우울로 작년에 신경정신과를 다닐 때도

병원을 가지 못한 날 마사지를 다녀오면 병원에 다녀온 것보다 개운해진 마음을 느낄 때도 많았다.

그래서 힘든 일이 있거나 우울할 땐, 일단은 걷는다.

내가 몸의 차지가 되면 자연스레 마음은 나를 휘어잡지 못하니까.     

몸과 마음.

둘 다 중요하고,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도 분명 하나

결국은 몸이 우선이 아닌가 싶다.

아무리 우울하다 해도 죽을 거 같은 숙취로 몸이 힘들면, 아픈 마음은 순간 사라진다.

만약 눈앞이 노래질 정도의 급똥의 순간이 온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렇다고 우울을 이기고자 몸이 일부러 아프게 할 수는 없는 일.

다만, 어두운 마음이 휘몰아쳐 나를 덮칠 때

위를 토해낼 것 같은 숙취, 눈앞이 깜깜해지는 급똥의 순간을 생각하자.

그럼 나를 온통 차지한 마음을 몸이 조금은 밀어낼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아무리 ‘죽고 싶은 마음’이라도

결국 ‘죽음’ 앞에선 다만 살고 싶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숙취로 나의 우울을 무찔러준 그녀들에게 소소한 감사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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