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된 고양이'
라는 상호를 보곤 내가 생각났다고.
내게 원하는 게 뻔한,
그래서 몇 번의 만남을 거절한 뒤에 온 문자라
문자 자체에 대한 어떤 무게도 없었는데,
그냥 그 말이, 그 단어의 조합이 좋았다.
특히,
'못된'이란 말이.
늘 받는 것보다
주는 게 많아야 했던
사랑받는 것보다
더 많이 사랑해야 했던
호구인 내가 끔찍이도 지겹고 싫었다.
그래서
'못된 고양이'로 날 생각한다는 말이
희망처럼 느껴졌다.
아 나도 못되게 살 수 있다!
라는 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