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하랑 Nov 27. 2021

고해성사

글 쓰는 나 

괴로움이 날 찾을 때



얼마 전부터 생각만 해오던 글쓰기를 시작했다. 모임에 가입하고, 브런치를 시작하고, A4로 한 장에서 두 장 분량을 끄적거렸다. 얼마 안 되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새 자연스레 글을 쓰는 것이 삶 곳곳에 박히기 시작했다. 내가 원래 글을 쓰고 싶어 했나? 정말 글을 써야겠다고 다짐한 건 언제였을까? 


글을 쓰는 행위가 가끔 스트레스로 다가올 만큼 진지해져 버렸다고 생각했다. 정확히 뭘 쓸지, 앞으로 어떻게 써 나갈 것인지에 대한 계획은 아무것도 없었으면서. 

매일 책을 읽고 일주일에 두세 시간은 카페에 앉아 키보드를 두드리지만 그 정도의 노력은 만족스럽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 대해 변명거리를 찾기 시작했고 심지어 그마저도 마음에 들지 않아 또다시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 우습기도 했다. 


책을 읽을 때에도 내용에 푹 빠지기 전에 ‘어떻게 이런 글을 쓸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얼마 전 설재인 작가와 정세랑 작가의 소설을 읽으며 그들의 아이디어와 문장 하나하나에 감탄함과 동시에 ‘역시 난 재능이 없는 거군’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기도 했다.

그들은 어쩜 이름도 설재인이거나 정세랑일까? 내가 설아무개라든지 모세랑이었다면 좀 더 글을 잘 쓸 수 있었을까?



한 달에 두어 개의 아주 짧은 글을 쓰고, 열 권 남짓한 책을 읽고, 문장이나 문법에 대한 공부도 전혀 하지 않는 내가 가질만한 감정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가까운 누군가에게 이런 내 속마음을 털어놓는다면 조금은 비웃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조금 더 깊이, 조금 더 솔직하게 내 마음을 들여다본다. 혹시 난 이런 스트레스와 자기 비하마저 기꺼워하는 게 아닐까? 응당 글쟁이라면 이 정도쯤은, 이라는 말도 안 되는 자아도취의 일종에 빠진 게 아닐까?

 

거기까지 도달하고 나니 스스로가 정말로 한심해졌다. 글에 대해 진지한 것이 아니었다. 두세 달 공부하면 딸 수 있는 자격증 정도로 가볍고 만만한 태도로 글을 썼다는 것이 정답에 가까웠다. 글을 쓰기보단 과제를 끝마치는 것이라고 해야 맞았다. 닿지 못한 것들로 인해 가끔 괴로움이 나를 지배하는 시간이 오는데, 그 안에 글이 보이지 않았다. 삶 곳곳에 글이 박혀 있다는 것은 진실이 아니었다. 그저 ‘나 요즘 글을 쓰고 있어’라는 말을 하기 위한 워밍업 정도였다. 


이쯤 해서 처음으로 돌아가야 했다. 정말 글을 쓰고 싶은지, 어떤 글을 쓰고 싶은지 다시 묻는다. 아마 이 질문은 글을 쓰는 한 계속 되풀이될 것이다. 어떤 대답도 쉽사리 정답이 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명확한 답을 내릴 수 없는 이 질문에 대해 글에 대한 태도를 조금 바꾸는 것으로 당장의 면피를 하고자 한다.


할 수 있는 것을 할 것이다. 더 많이 읽을 것이다. 기교와 지름길에 대해서도 배울 것이다. 가벼운 마음으로 꾸준히 쓸 것이다. 글을 쓰는 나에 대해 함부로 말하지 않을 것이다. 글을 쓰면서 느끼는 고통과 즐거움을 모두 인정할 것이다. 무뎌질 만큼 무뎌진 시선을 날카롭게 벼릴 것이다. 스스로 만족할 만한 글을 가끔은 완성할 것이다. 오래 고민하고 오래 괴로워할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여드름은 더럽지 않아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