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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하랑 Nov 12. 2021

여드름은 더럽지 않아요

매끈과 울퉁 사이 

거울을 볼 때면, 




매끈하던 얼굴에 하나 둘 무언가 솟아오르기 시작한 건 대학생이 되고 나서부터였다. 

여드름. 그것은 처음 찾아온 이후 10여 년이 넘도록 나를 괴롭힌 작은 악마였다. 



여드름의 존재를 인식한 것은 대학교 1학년 때였다. 화장을 처음 시작해서였을까, 혼자 살기 시작해서였을까, 술을 마시기 시작해서였을까. 이마에 한 두 개씩 올라오던 녀석은 간헐적으로 뺨에도 나기 시작했고, 코나 턱 등 사람이 우습게 보일만한 곳을 아주 잘 찾아서 존재감을 드러내곤 했다. 

학생일 때엔 그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지만, 취업을 하고 나서 상황이 더 심해지기 시작했다. 야근과 회식으로 주 3~4일을 보내고, 수면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해질 무렵 내 피부는 최악의 상태가 되고 말았다. 그렇게 일해서 번 돈으로 화장품을 비싼 것들로 바꾸고, 피부관리실에 다니기 시작했다. 



인중에 난 왕여드름을 짜 본 적이 있는가? 말로 할 수 없을 만큼 아프다. 관리실의 선생님들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눈물이 찔끔 나도록 노란 농이 빠지고, 검붉은 피를 흘리고, 투명한 핏물이 나올 때까지 여드름을 모두 짜내곤 했다. 매주 토요일 오전, 관리실 침대에 누워 얼굴이 얼얼할 만큼 여드름을 짜내고, 차가운 팩을 얹어 진정시키고, 울긋불긋한 얼굴로 집에 돌아왔다. 그냥 좀 쉬면 좋으련만, 한창 약속이 많았던 나는 꾸역꾸역 다시 화장을 하고 집을 나섰다. 

피부가 좋지 않다면 화장을 하지 말아야 하는데 화장을 함으로써 조금이라도 피부를 감춰야 하는 악순환이 반복됐다. 



피부가 나빠진 후엔 내 피부를 보고 하는 말들이 인사말이 되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보는 친구이건 매일 보는 회사 사람들이건 내 피부를 보고 한 마디씩 얹었다. 

“요즘 무슨 일 있어? 피부가 왜 그래?”, “어! 얼굴에 뭐가 났다야”, “레이저라도 좀 쏴야 하는 거 아냐?” 

‘나도 다 알고 있으니 제발 좀 닥쳐!’라고 외치고 싶었지만 최대한 울상을 지으며 속상한 척 상황을 넘기는 수밖에 없었다. 무심하게 툭툭 내뱉는 소리에 스트레스는 곱절로 쌓였고 그에 비례해 여드름은 개수도, 크기도, 단단한 정도도 모두 늘어갔다. 

여드름도, 그로 인한 짜증도 최악에 달했을 때 친구에게 들은 한 마디는 결국 나를 병원까지 가게 만들었다. 


“윽, 피부 더러워”


워낙 직선적이고 그런 말을 본인이 들어도 웃어넘길 만큼 쿨한 성격의 친구였기에 그런 말을 했을 거라 믿는다. 물론 머리론 이해하지만 그녀의 그 말은 지금까지도 잊을 수 없는 상처로 남아있다. 

그 말을 듣고 바로 피부과를 예약했다. 원장님과 상담을 하고, 실장님과 치료 코스를 짰다. 비용보다는 빠르고 확실한 효과가 우선이었기에 비싸더라도 좋아 보이는 과정을 선택했다. 매주 주사를 맞고, 약을 먹고, 이상한 기계에서 나오는 빛으로 피부를 혹사시켰다. 올라오는 여드름이 단단해질 기미만 보이면 병원으로 달려가 주사를 놔달라고 했다. 그렇게 피부과에 쓴 돈으로 주식을 샀다면 지금쯤 돈 꽤나 굴리고 있지 않았을까. 



여드름은 자체로도 아프고 고통스럽지만, 그걸 대하는 주변의 반응은 마음까지 병들게 한다. 거울을 보기 싫지만 십 분에 한 번씩 상태를 확인하고 절망하는 과정을 반복하게 된다. 그 절망감은 결코 무뎌지지 않는다. 걱정해서 하는 말들은 약해질 대로 약해진 마음에 올곧게 와닿지 않는다. ‘그래, 넌 피부가 좋으니까’라고 비꼬아 받아들이게 되고, 누군가 날 보기만 해도 내 여드름 때문이구나, 싶어 고개 숙이게 된다. 피부에 관한 모든 말들은 나 자체를 평가하는 것처럼 느껴지고, 하나하나가 다 화살처럼 박혀 잘 빠지지 않는다. 


그렇게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지독하게 날 괴롭힌 여드름은 의식하지 못하는 어느 한순간에 사라졌다. 10년이 넘게 내 얼굴에서 떠나지 않았다는 게 믿을 수 없을 만큼 갑자기, 허무하게, 깨끗하게. 

나이에 맞게 변화한 호르몬의 영향일 테지만 이 변화가 내게도 왔다는 것이 기쁘다기보다는 어색하고 새삼스러웠다. 

스페인 여행에서 만났던 검은 성모 마리아에게 “여드름 제발 좀 데려가 주세요”라고 빌만큼 간절했던 상태였기 때문일 것이다. “부자 되게 해 주세요”도, “결혼하게 해 주세요”도 아닌 여드름을 없애 달라는 소원이라니, 성모님도 조금 당황했을 것이다. 


그렇다. 여드름은 정말, 여러분의 생각보다 당사자를 많이 괴롭히는 녀석이다. 

그러니 앞으로 여드름이 잔뜩 난 사람을 만나더라도 입에서 나오려는 그 한 마디를 참아주길 바란다. 당사자가 먼저 말을 꺼내기 전까진 제발 모른 척해주길 바란다. 가장 괴롭고 힘든 건 그 여드름과 함께 사는 당사자이기 때문이다. 


여드름으로 괴로운 동지들, 우린 조금 더 견뎌볼 필요가 있다. 호르몬의 힘은 생각보다 강하다. 여드름이 나는 것은 불가항력적이므로 시간이 흐르길 기다리는 것이 가장 현명하지만, 피부로 인해 위축되어 지내진 않길 바란다. 여드름으로 인한 고통은 관리실 침대 위에서 그것들을 짜낼 때 느껴지는 것으로 충분하다. 여드름이 나건 말건 우리는 그 누구보다 잘 먹고 잘 자고 잘 웃어야 한다. 





                                                              

                                                                 [이 글은 2W 매거진 '아픔의 기억'에 수록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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