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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하랑 Jul 28. 2022

나비효과

뭐랄까, 선행의 벨트?

걷다 보면,



교통의 요지, 바로 옆엔 산책하기 좋은 천이 있고, 백화점과 마트가 있는, 맥세권과 스세권을 모두 만족하는, 그런 편리한 동네에 자리 잡은 지 10년이 넘었다. 

집을 구하던 그때 조금 더 서울에 대해 잘 알았거나, 부동산에 관심이 있었더라면 지금 난 다른 곳에서 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곳을 택한 건 회사 통근버스를 타기 쉽고, 친한 친구가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긴 시간 동안 조금씩 변해가는 동네의 모습을 지켜봤다. 지하철역 출구가 늘어나고, 백화점이 생기고, 오가기 편한 구름다리가 만들어지고, 천 주변 생태 환경도 좋아졌다. 몇 개의 카페가 생기고, 요가원과 발레 학원, 미용실이 늘어났고, 동네 맛집은 외관을 재정비했다. 나는 점점 더 편리한 삶을 누리게 됐다. 


하루가 다르게 좋아지는 우리 동네에 그곳이 있다는 건 들어서 알고 있었다. 같은 구 소속의 옆 동에 있지만 실체를 직접 확인한 적은 없는, 하지만 재개발이나 재정비 사업이 거론될 땐 빠지지 않고 나오는 그곳, 쪽방촌. 뉴스 기사의 이미지로 접한 그곳의 모습은 정리되지 않은 골목, 슬레이트 지붕과 컨테이너로 만들어진 방, 잔뜩 쌓여 있는 물건들과 노인들의 뒷모습으로 완성됐다. 그곳을 직접 본 건 10여 년 만에 처음이었다.


몇 달 전, 맥도날드에 양상추가 없어서 햄버거를 구매한 고객에게 공짜 커피 쿠폰을 나눠준 일이 있었다. 출장 가던 날 아침, 기어코 그 쿠폰을 써보겠다며 기차역과 가까운 맥도날드를 지도 어플로 검색했다. 집에서 도보로 20분. 버스를 기다렸다 타고 가는 시간이나, 걸어가는 시간이나 큰 차이가 나지 않을 것 같았다. 어플이 알려주는 최단 거리의 길을 따라 산책하듯 걷고 있던 난 갑자기 바뀐 분위기에 겁을 먹었다. 어느새 쪽방촌에 들어와 있었던 것이다. 어느 방향으로 가면 쪽방촌이 나오는지 알 수 없었던 까닭은 그곳이 버스나 택시가 다니는 큰길에선 보이지도 않는 구역 안에, 일부러 찾아가려고 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공간 안에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사는 아파트의 맞은편에도 낮은 담을 한 집들이 모인 골목이 있지만, 쪽방촌은 그곳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열악해 보였다. 기사 속 사진의 모습보다 더 어둡고 좁은 길 안엔 빛도 제대로 들어오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다. 가능한 최대의 속도로 걸어 대로에 나와 안도의 한숨을 쉬고 곧바로 당혹감을 느꼈다. 쪽방촌 길을 걸으며 느낀 가장 큰 감정이 무서움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 분위기도, 어두운 표정의 사람들도 무서웠지만, 사실 난 계속 가난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언젠가 내가 가난해지진 않을까 두려웠고, 그렇게 살지 않기 위해 해야 하는 끊임없는 노력이 두려웠고, 그럼에도 함께 잘 살기 위해 나누어야만 하는 의무들이 두려웠다. 그런 생각을 하며 정체불명의 죄책감을 느끼는 스스로의 오만함이 두려웠다. 


셀 수 없이 많은 어리석은 생각들 사이로 내가 놓친 풍경 몇 장면이 떠올랐다. 소박한 음식을 내어주는 무료 급식소와 무료 진료를 하는 작은 의원, 주변 사람들과 근처 노숙자들을 위한, 기부금과 봉사만으로 운영되는 곳. 거기에서 봉사하는 사람들은 나처럼 무서움과 두려움을 느끼진 않겠지. 할 수 있는 노력으로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고 싶은 마음이겠지. 아니, 무섭고 두렵더라도 나누고 싶은 마음이 더 컸을까?


그 출장길 아침, 공짜 커피를 들고, 강렬한 인상과 혼란스러운 감정과 생각들을 안고, 기차에 올랐다. 쪽방촌이 있는 거리를 지나고 우리 집이 있는 거리를 지나고, 편리함과 가난함이 있는 우리 동네를 지나고, 기차는 아래로 아래로 내려갔다. 


기찻길을 따라가며 보이는 알록달록한 모습의 마을들, 그 안의 또 다른 공존들은 누군가에게 수많은 생각을 하게 할 것이다. 그는 한 번쯤 생각만 해볼 수도 있을 것이고 뭔가 한 발을 내딛을 수도 있을 것이다. 만약 한 걸음의 용기를 낸다면, 그로 인해 우리 동네는 조금 달라질 수 있을까, 더 따뜻해지거나 명랑해질 수 있을까. 





                                                              

                                           [이 글은 2W 매거진 24호 '여자들이 사는 동네'에 수록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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