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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하랑 Sep 04. 2021

모두의 거짓말

푸른 날들

파랑 초록 하양



여기, 환경에 관심이 많다고 자부하는 한 여자가 있다. 과연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하며 사는지, 그녀의 하루를 따라가 보자.


새벽 6시, 전날 밤 주문한 식료품이 문 앞에 도착해 있다. 이 쇼핑몰은 종이 박스만, 아이스 팩도 물로 채운 것만 사용한다. 아쉬운 건 상온, 냉장, 냉동 각각 다른 박스에 담겨 박스 개수가 많다는 건데, 그 정도는 괜찮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종이니까.


박스 안엔 폴리백으로 포장된 채소들, 플라스틱 통에 담긴 도시락 몇 개, 생분해 에어캡으로 둘러싸인 동물복지 유정란, 비닐로 포장된 치즈와 빵 몇 종류가 들어있다. 물론 각각의 포장재들은 모두 분리수거해서 버릴 것이다. 생각보다 쓰레기가 많이 나오지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어딜 가든 다 이렇게 파니까.


그녀는 하이브리드 차로 출퇴근을 한다. 나름대로 연비와 환경을 고려해서 큰맘 먹고 장만했다. 완전히 기름을 안 쓰는 건 아니지만, 연비가 훨씬 좋으니까. 전철을 타고 다니기엔 너무 멀고 코로나가 무서우니까. 이 차는 저공해 차량이니까.


사무실에선 최대한 양면 인쇄를 이용한다. 한두 번 보고 말 서류지만, 모니터로는 내용 파악이 영 잘 안 되는 느낌이다. 커피와 물은 꼭 텀블러에 담아 마시고, 점심은 가능한 구내식당을 이용한다. 가끔 반찬이 너무 많이 남기도 하지만, 그녀에겐 다이어트도 중요하기 때문에 모른 척한다.


탕비실에서 과자를 나눠 먹는데, 이건 뭐 죄다 과대포장이다. 동료들과 과대포장의 폐해에 대해 신나게 한바탕 수다를 떤다. 동료들 중 대다수는 종이컵으로 커피를 마시며, 종이컵은 그래도 종이가 아니냐고 한다. “종이컵은 종이로 분리수거가 안 된대. 그냥 태워야 한다던데?” 누군가 얘기하지만 모두들 처음 듣는 얘기라는 표정이다.


드디어 퇴근! 그녀는 차에 시동을 걸고 배달앱을 켠다. 뭘 먹을까 고민하다 플라스틱 통이 나오지 않는 치킨을 주문한다. 당연히 일회용 수저는 받지 않는다. 육식도 환경에 나쁘지만 닭은 소나 돼지보다는 낫지 않을까, 생각한다. 완벽한 채식은 건강을 위해서도 좋지 않다는 기사 내용을 떠올리면서.


그녀가 보통 샤워하는데 들이는 시간은 30분 남짓이다. 클렌징 밀크, 폼 클렌저, 샴푸, 컨디셔너, 바디워시로 완벽하게 씻고 드라이까지 하고 난 후 편안하게 치킨을 먹으며 인터넷 쇼핑몰을 들락거린다. 매일 같은 에코백을 들고 다니며 조금 지겹다고 생각했던 그녀는 여름에 어울리는 상큼한 색의 가방을 눈여겨본다.

마침 세일 중이라 에코백 두 개, 티셔츠 하나, 조거 팬츠 하나를 담았다. 다 면으로 만들었으니까, 에코백이니까 충분히 합리적인 소비라고 생각한다. 작년에 샀던 티셔츠랑 청바지는 이젠 좀 촌스러우니 내일 헌 옷 수거함에 내놓기로 한다.

아직 샴푸와 주방 세제가 많이 남았지만, 환경을 생각해서 플라스틱 통에 담겨 있지 않은 샴푸바와 설거지 비누도 몇 개 구입한다.


이제 쓰레기를 정리할 차례. 한 주의 반도 안 지났는데 어느새 쓰레기가 한가득이다. 박스들 안에 플라스틱, 비닐, 종이, 캔 등 종류별로 정리한 후 아파트 재활용장으로 간다. 이웃의 손에 들린 음식물이 다 묻은 플라스틱 통, 라벨이 그대로 붙은 PET병들을 흘긋 보고는 한심하다는 표정을 짓는다. 그녀는 쓰레기들을 한 번씩 헹구고, 라벨을 따로 분리하고, 꽉꽉 눌러 부피를 줄여 가져왔기 때문이다.


그녀는 이제 잘 준비를 한다. 퇴근 후 계속 틀어놨던 에어컨을 끄고, 부엌과 거실의 불을 끄고, 아차, 화장실 불도 켜져 있었다.

방에 스탠드를 켜고, 선풍기를 6시간쯤으로 가동해 놓고 침대에 누워 잠깐 스마트폰을 본다. 대체에너지, 친환경 포장재 등 환경에 대한 기사를 찾아 클릭한다. ‘좋아요’가 많이 눌린 댓글을 찾아 읽는다. 

“이건 친환경이 아니야. 눈 가리고 아웅 일뿐이라고!!”.


그녀는 순간 뜨끔한다. 그러다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그래도 최소한의 노력은 하고 있잖아.’ 곧 다음 날 도착할 택배들을 기다리며 잠이 든다.


그녀는 분명 환경을 생각하는 사람이지만, 지금 누리고 있는 편리와 안락함을 포기할 만큼은 아니다. 

당신은 어떠한가?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이 아슬아슬한 외줄 타기에서 겨우 균형을 잡는 것뿐일지도 모른다.



                         

                                                          [이 글은 2W 매거진 '지구와 우리 사이'에 수록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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