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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하랑 Aug 07. 2021

오버 더 레인보우

뜨거웠던 순간,

b e    c o l o r f u l !



좋아하는 걸 할 때, 하고 싶은 걸 할 때, 사람을 향해 마음을 다할 때, 그럴 때의 얼굴은 무엇보다 아름답구나. 그런 얼굴을 마주하면 좋은 책을 읽을 때처럼, 웅장한 음악을 들은 것처럼 감정이 흔들리고 눈물이 고인다.


2019년 6월, 오랜만에 나섰던 엄마와의 나들이에서 그 느낌을 경험했다. 

산책하러 들른 남산골 공원엔 때마침 직접 기른 농산물을 파는 장터가 열렸고, 작은 공연도 하고 있었는데, 우리가 본 건 태권도 시범이었다. 많아봐야 10대 후반의 아이들이 땀을 뚝뚝 흘리며 진지한 태도로 부수고, 뛰고, 날아 다녔다. 

그 얼굴들은 빨갛다 못해 익어버릴 것 같았지만 모두 웃고 있었고 빛을 받아 반짝였다. 젊음이 형태를 갖고 있다면 저런 모습일 거야, 라는 생각을 하는데 갑자기 눈물이 흘렀다.


그 눈물의 의미에 대해 오래 생각했다. 순수한 열정에 대한 감동과 부러움, 그러지 못했던 젊은 시절에 대한 아쉬움. 


고백하자면, 나는 뜨거웠던 적이 없다. 뜨거워지기 전에 불을 끄는 건 언제나 나 자신이었다. 뜨거움 자체에 두려움을 갖고 있었고, 그건 실패에 대한 공포와 맞닿아 있었다. 추락할 바엔 날지 않겠다는 다짐.


이런 두려움의 이유에 대해 또 오래 생각했다.

좁은 동네에서 비슷한 사람만 보고, 격려보다 나무람에 익숙해진 아이는 이룰 수 있을 것 같은 꿈만 꾸며 자라게 된다. 어른들의 칭찬을 받기 위해 규칙을 준수하고 튀지 않는 소망만을 빈다. 얼른 커서 한 사람의 몫을 하는 어른이 되고 싶어 하고, 결국 아주 평범하고 멋없는 무채색의 인간이 된다. 


막상 다 자라고 나니 세상은 생각보다 컸고, 다양한 색으로 가득했다. 이제 와서 다른 사람을 탓하기엔 완전한 어른이었기에 그저 형형색색의 사람들을 보며 부러워하고, 색깔이 없음을 슬퍼했다.


내가 사랑하는 것들은 모든 음악, 아름답고 날카로운 글, 소박한 꽃과 식물, 달지 않은 술, 털북숭이 동물들, 차갑고 따뜻한 영화, 반항하는 문구를 담은 벽화들인데, 정작 나를 구성하고 있는 것은 적당히 타협한 직장, 자기계발서, 금리 2퍼센트의 적금과 주식계좌, 티브이로 채워진 시간과 습관적인 걱정이었다. 


사랑하는 것들로만 나를 채우며 살기엔 그럴 수 없는 수많은 핑계가 있었다. 음악을 사랑하지만, 난 재능이 없어. 글을 쓰고 싶지만, 먹고 살 수 있을까? 술집을 열기엔 너무 위험하지. 이 나이에 그림을 배운다고? 너무 늦었어. 그냥 취업하자, 그냥 돈을 모으자, 그냥 남들만큼만 살자. 


아, 하지만 뜨겁게 사랑하지 않는다고 하여 그것들이 무의미한 것일까? 생각해보니 그 필요성을 계산해내고, 노력해 얻어낸 것도 무채색의 나였다. 

끓어오르진 못했지만 적당한 온도를 유지할 수 있게 해주는 고마운 것들이었다. 가능한 꿈만 꾸던 아이가 이룰 수 있는 최선이었다. 


어쩌면 내 끓는점이 처음부터 남들과 달랐던 건지도 모른다. 남들처럼 섭씨 100도에서 끓지 않는다고 내가 미지근한 건 아니었다. 내게 주어진 날들을 살아내며 나도 그 태권도 소년들처럼 웃고 있었을 거다. 

남들과 비교하느라, 내 스스로를 낮게 생각하느라 나도 끓고 있었다는 걸 자주 놓쳤나 보다. 지금 가진 온도면 충분했는데.


이젠 내가 갖고 있는 것들과 갖고 싶은 것들을 알록달록한 퀼트처럼 잘 꿰어 나가야지. 그걸 방패삼아 뜨거움의 두려움에 맞서 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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