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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마구 Aug 03. 2017

폭발

공갈빵

 아침부터 회의실에서는 큰 소리가 몇 분째 이어졌다.

다들 아침부터 무슨 소란이 나며 근원을 찾았으나, 모두가 출근하기 전부터 일어난 일이라 그 누구도 원인을 알지 못했다. 다만 고대리 자리만 비어 있는 것을 보고 부장님이 고대리에게 무언가 화내는 것이라고 짐작할 뿐이었다. 다들 오늘은 또 고대리가 무슨 일을 저질렀을까 예측하며 수군수군 대고 있는데 회의실 문이 벌컥 열렸다.

"아무튼 고대리 아침부터 미안한데 다음부터는 그러지 말아요!"

부장은 종이뭉치를 어깨너머로 흔들며 자리로 돌아갔다. 그 뒤로 고대리가 풀 죽은 표정으로 터덜터덜 걸어와 자리에 앉았다. 자리에 앉아서도 너무 표정이 좋지 않아 내가

"고대리님 무슨 일 있으세요?"

라고 물었으나 고대리는 멋쩍은 듯 머리를 긁적거리며

"허허 아니에요 아무것도" 하고 웃으며 넘겼다.


 다들 조용히 일을 시작하고 시계가 10시 30분을 가리킬 때 부장님이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모두들 놀라 파티션 너머로 무슨 일인가 흘깃 쳐다보았는데, 부장님이 아끼던 난이 썩은 채 부장님의 손에 들려 있고 부장님은 야연 실색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내가 내 난에 물 주지 말라고 했잖아요! 내가 관리한다고 괜찮다고 했잖아요! 누가 물 줬어요!"

부장은 신경질적으로 버럭 소리를 지르며 쌍심지를 켜고 사무실 이곳저곳을 쏘아보았다. 그 누구도 대답을 하지 않고 있다가 갑자기 내 옆자리에서 기여 들어가는 목소리로 고대리가

"죄.. 죄송합니다. 저는 그저.."라고 입을 열었다.

아.. 고대리님 당신의 호의는 알겠지만 왜 하필 당신입니까.

부장님은 그런 고대리를 쏘아보았다가 콧김을 여러 차례 내뱉고는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가 내쉬었다.

"그럴 수 있죠. 고대리. 일부러 내 난을 죽이려고 한 건 아니잖아요. 괜찮아요 일 봐요"

부장은 아침에 고대리에게 화를 낸 것이 미안했는지 끓어오르는 화를 참고 난을 들고 자리로 돌아갔다. 고대리는 다시 풀 죽은 표정으로 고개를 푹 숙이고 큰 한 숨을 내쉬었다.

"고대리님. 오늘 일진이 사나우시네요. 괜찮아요 이제 별일 있겠어요?"

나는 고대리를 위로하고자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점심시간이 되자 부장이 "오늘 맛있는 거 먹으러 갑시다. 날씨도 더운데"하고 웃으면서 나왔다. 부장이 무엇을 먹으러 갈까 하고 묻자 다들 주저주저하고 답을 못하고 있었는데, 하필.. 하필 고대리가 손을 번쩍 들며 "삼계탕집 잘하는 곳 알고 있습니다!" 하고 외쳤다. 부장님은 표정이 썩 좋지 않았으나 애써 웃으며 "그래요 갑시다" 하고 말했다. 고대리가 말한 삼계탕집은 경복궁역에서도 유명한 곳이라 모두들 알고 있으나 사람이 워낙 많아 다들 가지 않는 곳이었다. 벌써 40분째 뙤약볕 아래에서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 줄을 기다리며 모두 서있었다. 10분이 지날 때마다 고대리는 가게 안으로 들어가 얼마나 남았는지 확인하고 "10분이면 된답니다!"라는 말을 반복해 전했다. 부장의 표정은 점점 어두워졌다. 12시 50분이 돼서야 삼계탕집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복날이라 삼계탕집에 사람이 많다 보니 종업원들은 음식을 텅텅하고 내던지듯이 내려놓았고, 무엇을 달라고 하면 짜증을 내며 잘 가져다주지 않았다. 부장은 애써 " 허허 복날이라 그런가 보네" 하고 말았고, 모두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삼계탕을 넘겼다. 고대리는 다시 풀이 죽어 고개를 숙인 채 닭다리에 붙은 살을 깨작거렸다.


 사무실로 돌아오자 1시 30분이었다. 다들 속이 안 좋은지 가슴팍을 치고 사이다를 찾았고 나도 소화가 되지 않아 소화제를 먹었다. 부장은 외근이 있다며 나갔다가 1분 만에 다시 들어오더니 자기 차 앞에 주차한 차가 누구의 차냐며 빼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지 않길 빌었는데 옆에서 고대리가 어두운 표정으로 일어났다. 나는 왠지 불안한 마음에 고대리가 차를 빼는 것을 도와주기 위해 밖으로 함께 나섰다. 부장님은 "얼른 차 빼줘 나 늦었어"라고 말하고 차에 탑승했다. 고대리는 전쟁에 나가기 직전의 병사처럼 심호흡을 하더니 운전대를 잡았다. 시동을 걸고 차가 조금씩 움직이며 잘 운전하는 것 같더니 갑자기 "어.. 어? 어!"

내가 말할 틈도 없이 고대리는 후진기어를 잘못 넣어 그대로 부장님의 차에 부딪치고 말았다. 부장님은 차에서 야차 같은 표정으로 내렸다. "고대리.." 고대리는 차에서 내려 죄송하다며 허리를 90도로 몇 번씩이나 숙였다. 나는 고대리를 대신해 고대리의 차를 빼주었고 부장은 일단 미팅이 늦었다며 나중에 이야기하자며 출발했다. 사무실로 돌아오자 고대리는 풀 죽은 표정으로 고개를 숙인 채 한 숨을 내쉬었다. 밖에서 소란했던 소리가 사무실까지 들렸던지, 사람들은 내게 무슨 일인지 물었고 나는 "아니에요 아무 일도" 하고 말았다.


 오후 늦게서야 부장이 사무실로 돌아왔다. 부장은 미팅이 무사히 잘 끝났는지 간식으로 빵을 사 왔다며 우리들에게 웃으며 나누어 주었다. 점심을 제대로 먹지 못해 출출하던 차에 다들 잘됬다며 좋아했다. 그 순간 상무님이 굳은 표정으로 사무실로 들어왔다. 상무님은 사무실 복도에 서 나지막한 목소리로 부장님에게 무어라 이야기하고 돌아갔고 부장님은 안 좋은 소식을 들었는지 고개를 숙인 채 한숨만 내쉬었다. 다들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들고 있던 빵을 내려놓고 조용히 일을 했다. 나도 눈치를 보다 빵을 내려놓았으나 옆에 고대리는 그 상황을 지켜보지 못했는지 빵을 들어 입을 크게 벌리더니 한입 베어 물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나는 속으로 '어...? 어? 고대리님 그 빵은..'이라고 생각하며 손을 들어 그를 막으려고 하는 순간. "팡!" 하고 고대리가 베어 물은 빵이 터지고 빵 조각 들이 키보드와 책상에 후두두 하고 떨어졌다. 고대리가 받은 빵은 속이 텅 비어 있던 공갈빵이었다. 갑작스러운 소리에 부장은 노기가 어린 표정으로 고대리를 쳐다보았다.

"고대리.. 지금.."

"아니 저는.. 공갈빵을 처음 먹어봐서.. 이게 이렇게 폭발할지 모르고.."

고대리는 거의 울기 직전의 표정으로 고개를 푹 숙였고, 부장은 들고 있던 서류를 내던지며 "고대리 지금 나랑 장난해 아침부터! 내가 참다 참다 못 참겠네! 회의실로 따라와요!" 하고 소리를 질렀다. 


 왜 고대리는 공갈빵을 한 번도 먹지 못했을까. 공갈빵의 속이 비어있다는 것을 알았더라면 그렇게 입을 크게 벌려 베어 물려고 하지 않았을 텐데 말이다.

고대리는 축 처진 어깨로 회의실로 향했고, 고대리 자리에는 폭발한 공갈빵 조각과 부스러기들이 널려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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