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서로의 우주가 되어
"엄마는, 사람이 눈 앞에 왔다갔다 하는 것조차 싫어"
생활이 엉망인 채로, 내 몸 위에 올라 고릉고릉 소리를 내머 잠든 두 아이의 귀에 대고 물었다. 너희는? 너희는 어떠니?
누군가를 미워하는 이유는 그들로부터 받은 상처 때문일 것이다. 사람으로부터 받은 상처를 치유하지 못해, 여전히 사람을 멀리 하는 나처럼.
그런데 너희들은 주인에게 버려지고 길거리를 맴돌며 오지 않는 주인을 하염없이 기다리다 겨우 보호소에 들어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희는 참 밝아. 처음 본 사람에게도 잘 웃어주고, 먼저 손 내밀어 다가오고.
타인의 손을 핥아주고 배를 보여주며 꼬리를 흔들지. 너희는 어째서 사람들에게 관대할까?
너희를 버린 엄마를, 주인을 원망하지 않는 걸까? 어째서 사랑을 주는 것에 두려움이 없는 걸까?
홍시와 자몽이가 말했다. '미워하는 건 매일 해야 하는 거지만 용서는 딱 한번이면 돼'
6개월 전부터 준비했던 개인회생이 올해 1월 16일자로 인가결정 되었다. 5,500만원에 달하는 빚 가운데에는 각종 병원비와, 굿비용, 부모님께 빌려드리고 받지 못한 돈을 메꾸려고 받은 대출들과 한번도 받지 못했던 코로나피해보상금을 핑계료 곁들인 추가 대출금,가게수리 및 공사비, 월세, 등등이 포함되어 있었을 것이다.
개인회생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받아들이는 데에만 해도 4개월이었다. 매일 울고, 어지러워 집 밖을 나서질 못하고, 세상에 희망이란 보이지 않았다. 창피, 수치, 두려움, 걱정, 원망, 외로움, 공허함, 등에 이틀에 한끼 씩 밥을 먹으며 겨우 연명했다. 사실 매일같이 목을 매달며 '나는 곧 죽을 거니 홍시와 자몽이 입양만 잘 갔으면...' 하는 바람이 전부였을만큼 살고자 하는 여력이 없었다. 늘어나는 빚도, 제대로 케어하지 못하는 가게도. 나에게는 탈출구 없는 감옥일 뿐이었다. 이런 나를 다독여 줄 엄마를 보내달라고 했는데. 그 기도는 이뤄지지 않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나는 나를 파괴하며 그 시간들을 이겨냈고, 나는 완전히 피폐해져갔다.
확실한 방법을 택하고 싶어서 국내외 자살 논물을 번역해서라도 찾아봤다. 고통스러우면서 확률이 낮은 방법 말고, 정말 제대로 된 방법이 필요했다. 비유하자면, 유명 연예인들이 죽던 방식처럼, 나는 무릎을 꿇고 목을 매달았다. 고통이 지나고 정신이 아득해져가는 찰나에 이곳저곳 뛰어놀던 홍시와 자몽이가 갑자기 내 곁으로 돌아왔다. 나를 가만히 올려다보며 내 손을 하염없이 핥고 내 몸을 툭툭 쳐내는 두 아이를 한참 내려다보며. 왠지모를 서글픔에 마음이 차분해졌다. 내가 정말 죽고 나면, 발견될 때까지 계속 내 곁에서 이러고 있겠구나. 나는 줄에서 내려와 가게 바닥에 그대로 누웠다. 아이들이 내 얼굴을 핥았고, 내 몸에 자신의 몸을 바짝 붙여 누웠다. 따뜻했다.
죽지 않고 살아남기로 마음먹은 이후 부터의 내 삶은 지옥이었다. 다달이 날아오는 미납 독촉장과 두 곳의 월세 납기일, 매월 20만원 남짓의 전기세, 보험료, 통신비, 괸리비, 말 그대로 엉망인 집과 가게, 제일 최악인 건 의지가 없는 내 모습.....
나는 가게를 살리기 위해 투잡을 시작했고 필요없는 물건들을 죄다 갖다버릴 요량으로 청소를 시작했다. 그 날 75L 봉투 세 개 만큼의 쓰레기가 우리 집에서 비워졌다.
뭐, 어중간하게는 살아있는 중.
그러던 중 얼마전 결혼한 친한 언니와 형부에게 초대를 받아 집들이에 갔다.
벽 선반 한 쪽에 세워놓은 올해 목표들 가운데 '김민주씨의 친구 되어주기'가 있다는 걸 본 순간, 무언가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우리는 민주씨를 충분히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에요"
이 말이 달갑게 들리지는 않았다. 누가, 누군가를, 돕는, 관계. 이는 더이상 수평적인 관계가 아님을 뜻했기에.
여섯시간에 걸친 대화 내용도 비슷했다. 본인은 시간이 돈보다 아까운 사람인데, 그 시간을 나에게 냈다. 그러니 함께 얘기해보자
민주씨의 꿈이 무언가?, 뭘 하고 싶나?, 로또 당첨된다면 그 일을 할 것인가?, 삶의 목표가 무엇인가?
이런 식의 취조가 이어졌다. 대화가 필요해 나온 자리였으나,
대화보다는 '투자할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인가?'를 판단하기 위한 시험대라는 표현이 더 어울렸던 것 같다.
어느 순간 나는 장학금을 받기 위해 자기 피알을 하던 열 여덟의 나로 돌아가있었다.
영화 피아니스트의 전설, 굿플레이스, 책 아티스트웨이, 타이탄의 도구들에서 발췌한 내용으로 내가 생각하는 답을 내어놓았다.
그들은 박수를 치며 놀라기도 했고 별로라고 생각하는 답에는 내게 시선조차 두지 않았다.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들 스스로는 아무 조건 없이 베푸는 도움이라 할 지라도
앞으로 이들 앞에 나처럼 서는 많은 이들은 무력감을 느끼겠구나. 하는.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르는. 온전한 경험적 무력의 영역 말이다.
"저는 온실 속 화초를 싫어해요. 그래서 자꾸 민주한테 마음이 가요"
언니로부터 이 한 마디를 듣는데, 속에서부터 쓴 웃음이 나왔다.
온실속 화초의 입에서 내가 이런 말을 듣게 되다니.
"다른 직장 다니는 사람 평생 모아도 우리같은 집에 못살아요"
하는 말처럼 그들의 주머니는 풍족했고
샤넬백은 사치이기에 필요 없으니,
간소하게 부모 도움 없이 둘만의 힘으로 신혼 생활을 시작하자 말했다던 언니의 차는
K3에서 K9이 되었다.
자만과 자기 확신을 오가는 대화 가운데
나는 점점 지쳐갔다.
홍시자몽이의 보드라운 털에 파묻혀
죽은 듯 평생 자고 싶었다.
햇볕이 잘 드는 카페로 자리를 옮겨 재개한 대화는
양지바른 제단 위에 나를 올려놓고 '김하라'가 과연 하나님의 택함받은 제물인지를 뜯어보는 과정 같았다.
당신의 돈, 시간, 감정을 쏟아부어도 될만한 제물인가. 하는 그런 선별 과정.
나는 양도 아닐 뿐더러, 그 제단 위에 올라가고 싶지도 않았으나
어느 순간 나는 그렇게 부위별로 등급이 매겨지고 있었다.
더하여 그들은, 내 삶에 있어 가장 빛나는 사람.
내가 가지고 싶어했었으나, 이제는 그이처럼 되어가는 게 꿈이라 했던
그 사람이 정말 그런 능력이 있는 사람인지에 대해서도 태클을 걸어왔다.
그 날의 대화는 그렇게 끝났다.
나는 너덜너덜해진 상태로 집에 돌아와
하염없이 홍시자몽이를 끌어안고 울었다.
그리고 마음먹었다.
내가 어떻게 해서든지 인생을 살아가는 카테고리
한 분야에서만큼은 저들보다 더 우위에 서리라.
그래서 저들에게 휘둘리지 않고
내가 찾은 답으로 다른 사람들을 도우리라.
저들의 말에 스스로 망가지지 않으리라.
이 말에 상처받은 나는, 한참을 방황하다
세상에 하나뿐인. 내가 정말 사랑하고 존경해 마지않는 그에게
용기내어 전화를 걸었다.
'너 민주니?"
상대방이 나라는 것을 알아차리고 나서의 그의 태도는 무서우리만치 변해갔다.
어서 통화를 빨리 끝내려는 듯, 표면적인 인사말을 얼마간 쏘아붙이더니
그대로 통화가 끊겼다.
아니야, 이 사람은 그런 사람이 아니야. 그렇지?
하고 말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다.
공허했다. 난 또 그 부부를 이기지 못했다.
나는 오늘 밤, 이 사람들에게도 안주거리가 되겠지.
홍시 자몽이를 앞에 앉혀놓고 물었다.
'전 주인이 보고 싶니?'
'보호소의 생활이 그리워?"
'전 주인이 널 데려간다면, 넌 날 버리고 갈거니?'
아이들은 동그란 눈으로 내 말에는 아무 관심이 없다는 듯
내 품을 파고들어 애교를 피웠다.
홍시, 자몽. 너희는 상처 뿐인 과거에서 진작 벗어난 모양이구나.
그래서 이렇게 마음껏 누군가를 새롭게 사랑할 수 있지.
엄마는 그게 너무 어려워서, 오늘도 이렇게 사서 상처를 받고 있어.
요즘 엄마는 너희와는 달리,
왜 세상 모든 사람들이 싫어지는지 모르겠다.
이제 엄마 삶에서 나침반으로 삼았던
별같은 사람들이 다 사라져서 그런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