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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저무는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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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하라 Feb 14. 2024

ep 13. 무제

두 번째로 취업했던 가족 회사 기업으로부터 

권고 사직 통보를 받고 돌연 백수가 되었었습니다.

기업에 속해있던 여성 직원 전부가 같은 처지가 되었는데

잠시 쉬어가며 구직 활동을 하겠다는 그들 사이에서

저는 혼자 생활비가 걱정되어 남몰래 발을 동동 굴렀지요.


다행히 고용보험이 끝나는 바로 다음 날 기준으로

새로운 회사에 취업하게 되었습니다.

기존에 뽑고자 했던 1순위가 있었는데

면접 때의 제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려 

결국 저에게 손을 건네주신 지금 회사 대표님 덕에


좋은 대우를 받고 연봉 앞자리까지 올림한 채로

원하던 마케팅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전 회사에서는 정말 사람 간에 적응하기 힘들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곳에선 딱 들어맞는 사람인양

너무도 편하게 적응을 해버렸지요.


참 다행이지 뭡니까

돌이켜보면 한숨 돌리며 추억이다, 할 수 있겠지만

그래도 버텨내던 순간 순간은 참으로 아찔했습니다.


좋은 사람과 새롭게 연애를 시작한 지도 

벌써 넉달이 다 되어 갑니다. 

둘다 순둥한 성격이라 싸울 일이 있을까 싶었지만

그래도 서로 다른 사람이 만나면 어쩔 수 없을까요

그새 눈물을 펑펑 쏟아내며 심하게 싸우고 

또 화해하고, 다시 싸우고를 반복하기도 했습니다.

덕분에 만난 시간에 비해 더 돈독해진 것 같기도 합니다


워낙에 서운한 내색도, 불편한 기색도 표내지 않는 둘이라도

사랑 앞에서는 어쩔 수 없나 싶어 이 또한 지나고 나니

유치하긴 했네. 하며 웃음이 납니다.


중간중간 좋은 일도 많고 슬픈 일도 많았습니다

명절이 되니 혼자라는 생각에 슬펐지만 그 덕에

남자친구 부모님께 초대받아 같이 술한잔 기울이게 되었고

큰맘 먹고 산 강아지 치석 제거기가 자몽이의 으르렁 

입김 몇 번에 힘없이 반품되기도 하였고 

예뻐서 마음에 쏙 들었던 아이패드 케이스 옵션 키보드가

돌연 고장나 속상한 날도 있었습니다


몇개월 선배의 갑작스러운 퇴사로 일이 많아져

평소보다 1~2시간 늦게 퇴근하는 날이 잦아졌지만 

그 덕에 금방 월급도 오르고 능력도 인정받아 

결국엔 새옹지마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그 좋아하던 니콘 카메라는 

몇번 꺼내보지도 않고 겨울잠을 재워놓고 말이죠.


날이 춥고, 마음도 추우니 

카메라가 여간 무겁지 않겠습니까.

갑자기 심해진 우울증 덕에 

남자친구를 만나지 않는 날이면

사진은 커녕 바깥에 한발자국도 나가지 않고

내리 잠만 자는 상태라 더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네요.


해가 바뀌고 벌써 또 한살을 먹었습니다.

요즘 너무 우울했는데, 잠시나마 이런 일기를 쓰니

괜시리 퍽 괜찮아지는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요즘에도 복권을 사고 있습니다

다만 6/45 복권이 아니라 바로바로 결과가 나오는

스피또 세트 위주로 구매하고 있어요.


2천원 2장을 샀는데 한장에서 2천원이 당첨되었습니다

결과가 바로 나오는 게 저는 차라리 나은가봐요.

큰 당첨이 아니라도 매일매일을 살아가는 

재미가 드니 말입니다.


원래 한달씩만 살아가려 했는데,

그게 버거워 일주일씩만 살아가고 있었거든요.

근데 그 재밌어하던 로또를 사고도 일주일을 기다리는 게

너무 힘든 걸 보니 제가 하루밖에 버티지 못하는 상태인가 봅니다.


우울증에 걸리지 않았다면

평생 남들이 하는 얘기는 듣지 않고

독불장군처럼 나만 잘났다, 하고 살았겠구나

하는 생각이 스멀스멀 드는 요즘입니다.


겉으로는 참 순해보여도 

제가 은근 똥고집에 내 말만 맞다. 

하는 사람 중 하나였거든요.


이제 일상에서 재미를 느끼는 것이

정말 하나도, 진짜 하나도 없어졌습니다.

남자친구를 포함한 다른 사람은 

제 이런 모습을 싫어하는 게 당연하니

타인과 대화할 때는 잔뜩 밝은 척을 하는데

비밀이지만, 전혀 재미있지가 않습니다.

재미는 커녕 즐겁지도 않습니다. 


외로운 게 죽도록 싫어져서 

그렇게라도 다른 사람과 함께하고 싶나 봅니다.


누군가를 실컷 욕하고 싶거나 

눈물을 펑펑 쏟으며 하소연 하고 싶을 때는

비공개 sns 개인 계정에 주구장창 글을 씁니다


그러면 조금 낫는 것 같습니다.

펜을 쥐면 힘이 너무 많이 들어가

손은 물론 팔 전체에 통증이 심해져

다이어리를 못 쓰는 게 요즘에 느끼는

아쉬움 중 하나라고나 할까요.


사랑받고 싶습니다.

주변에 아무 사람이 없으니

남자친구와 헤어지면 혼자 고독사를 해도

아무도 못찾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어

가끔씩은 무섭습니다. 


그런 고독감이 두렵습니다. 

내가 이 세상에서 아무런 쓸모가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때가 점점 잦아지고 있어서요. 


글을 쓰고 싶습니다.

막연한 행복이라도 느끼고 싶어서요.

돈을 벌고 싶습니다.

지긋지긋한 스트레스와 우울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살고 싶어서요. 

사랑받고 싶습니다.

여는 노랫말처럼 오랜 외로움 반댓말을 찾고 싶어서요. 


인간 관계, 가정사, 몸과 정신의 건강, 

경제적 여건, 환경, 커리어 등등

전부 온전한 게 없이 버티는 것만으로도 벅차서

요즘에는 그냥 다 놓아버리고 싶습니다. 


우리 집 강아지 두 마리가 없었다면

혼자 고립되어 아무 노력도 하지 않고

영영 잠들었을 것만 같습니다.

말 못하는 생명이라도 곁에 있어 주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 


덕분에 오늘도 겨우 일어나 씻고

겨우 회사에 도착해 겨우 일을 하고

겨우 집에 돌아와 겨우 한술을 뜨고

겨우 침대에 누워 쓰러지듯 잠들었다가

말간 눈으로 날 쳐다보는 아이들을 보며

겨우 몸을 일으켜 샤워를 하고 

겨우 책상에 앉아 글 몇자 적으며 우울을 버려내고

가벼운 산책이라도 나가려 겨우 겨우 준비를 합니다.


행복은 멀리 있지 않다는 말이 정말일까요.

꼬박꼬박 우울증 약을 챙겨먹고

하루에 한 시간씩 빠른 걸음으로 강아지와 바람을 쐬고

아침에 일어나 씻고 회사에 가서 제 몫을 해내고

나름 인정도 받으며 남자친구와도 관계를 쌓아가고

이런 저런 부업도 하며 용돈 벌이로 돈을 벌기도 하고

자그마한 성취라도 느끼려 노력하는데 

정말이지 견디기 너무 힘든 겨울입니다


무사히 잘 버텨내기를

자정이 지났으니 해피 발렌타인데이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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