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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랜들리 Sep 27. 2023

핵심감정 찾기

#마음 #치유 #행복찾기

작년 이맘때 명절을 앞두고 업무를 조기 마감하고 여유가 생긴 일정에 찾은 병원에서 예상치 못한 혹을 발견했고 결국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발견된 혹은 몸을 혹사시킨 탓을 단단히 했다. 그렇게 몸안 여기저기 생긴 혹을 제거하느라 한 해에 수술과 회복을 반복하길 세 번. '이 정도 가지고 뭘..' 하는 마음으로 병원을 혼자 오갔다. 그렇게 의식하지 못한 채 투병 아닌 투병을 일 년간 하게 되었다.


지나고 나서야 보이는 것이 있다. 내게는 그것이 감정이다. 어린 시절 내 또래는 대부분 그랬겠지만 감정을 배우지 못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감정에 이름을 배우지 못했다. 그것은 개인적으로 고통스러운 일이었다.'이 감정이 뭐지?' '왜 힘들지?' 늘 그 모호한 감정 안에서 헤매느라 나를 제대로 바라보고 있지 못한 건 아닌지 불안했다.


쉴 틈 없이 바쁘게 돌아가던 일정은 오랜 시간 병원을 오가면서 공백이 생기기 시작했다. 인간관계와 대외 활동도 그것은 마찬가지였다. 여유로운 시간이 많으면 불안함을 느낄 만큼 부지런을 떨던 나는 체력의 문제로 반 강제적인 혼자만의 시간을 갖게 되었다. 시간에 쫓기던 시절에는 더도 말고 딱 한 달만 아무 생각 없이 쉬고 싶다고 했다가 아마 길어야 일주일 지나면 좀 쑤셔서 못 쉴걸? 하기도 했었다.


체력이 떨어져서인지 예상과 다르게 지난 나의 일 년은 평화로웠다. 급하지 않았고 소란스럽지 않았다. 매일 걷는 산책 안에서 종종 나를 만났고 반가웠다. 의지 할 곳 없이 독립적인 삶을 이십 대 중반부터 시작해 당시 학생이었던 남편을 졸업시켰고 서른셋 이른 나이에 아들을 혼자 키우는 삶을 선택했다. 그렇게 살아온 나는 주변으로부터 '단단하다' '강단 있다' '자신감 넘친다'라는 평이 주였지만 스스로는 언제나 불안했고 흔들렸고 고통스러웠다. 어린 아들을 업고 머리에 보따리를 이고 양손엔 짐을 가득 들고 외나무다리를 건너는 심정으로 삶을 살아내면서도 스스로 자책하면서 인정해 주지 못했다.


병을 얻어 주어진 여유로운 시간 속에서 나는 스스로를 괴롭히던 핵심 감정을 찾았다. '죄책감' 정확지는 않지만 어린 시절 엄마를 떠나보내면서 내가 엄마 없이 자랄 운명이라 엄마가 죽은 건 아닐까로 시작되었던 것 같다. 이후 새로운 인연을 맺은 엄마는 반듯하고 섬세한 완벽주의 성향을 가지셨던 만큼 다소 예민하셨고 대학생인 딸이 9시 넘은 귀가가 동네 창피하다 말씀하실 만큼 통제가 심했다. 물론 그로 인해 계획적이고 성실한 삶을 살게 되었지만 다른 성향의 엄마를 이해하는 데 있어 한계에 다다를 즈음 폭발하듯 의절을 감행하고라도 독립을 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청소년기에 듣던 질책과 평가는 근원적 문제로 남았다. 나 때문에 누군가 힘들진 않은지, 혹은 그런 문제를 만들지 않기 위해 또는 완벽하고 싶어 스스로를 통제하고 민감한 삶을 살았고 그런 스스로에게 이제는 엄마가 하시던 '네가 하는 게 그렇지'라는 비난을 지적과 평가를 더 냉정하게 혹독하게 하고 있었다. 늘 궁금하던 알 수 없는 불안감은 어디로부터 오는 것인지 답답해하곤 했는데 죄책감이었다. 나는 죄책감을 느껴야 하는 삶이 어쩌면 학습되었을지도 모른다.





이제 죄책감이란 감정의 원인을 보다 깊이 들여다 보고 이 감정을 어떻게 잘 정리해 떠나보내고 조금 더 행복해질 것인가 생각하는 하반기를 보내고자 한다. 성숙해져 가는 스스로를 칭찬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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