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생활을 하면서 느낀 것 중 하나는 '보고대상자'가 많으면 일이 산으로 간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이 말을 들었을때 머리로만 이해를 했는데 직접 경험하고 나니 이 말이 정말 맞는 말이구나를 여실히 느낀다.
나는 투자업무를 하고 있고 우리 회사는 모회사가 별도로 있다. 기업에서 만든 벤처캐피탈(CVC)이다. CVC는 보통 모회사가 주는 돈을 가지고 투자를 하기 때문에 모회사의 간섭을 어느정도 받는다. 모회사의 돈과 외부자금을 얼마나 받냐에 따라서 간섭의 정도가 달라진다고 보면된다. 우리회사는 지금까지 모회사의 돈만 받아서 투자를 해왔기 때문에 모회사의 간섭이 심한 편에 속한다.
투자를 진행할때 작년까지만 하더라도 회사 내부에서 투자결정을 하고 모회사의 대표에게만 승인을 받으면 투자를 집행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올해부터 상황이 달라졌다. 관리체계 강화와 꼼꼼한 의사결정이라는 명목으로 투자를 위한 보고대상자가 1명, 2명 늘어나더니 지금은 모회사에 보고대상자가 적은 금액은 4명,큰 금액은 8명까지 늘어났다. 보고대상자가 첩첩산중으로 늘어난 것이다.
처음에는 보고대상자가 이정도로 늘어난게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몰랐다. 단지 그냥 투자 건에 대해 설명할 사람이 1명 더 늘어난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보고대상자가 늘어나니 이들이 모두 투자에 대한 의사결정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일 진행이 정말 어려워졌다. 우선 보고받는 사람은 어쨌든 자기가 보고를 받으니 보고받는 내용을 모두 파악을 하려고 한다. 자기가 원래 하던 업무가 아니니 이해하는데도 하나씩 뜯어보고 내용을 파악하는데 시간이 오래걸린다. 그리고 궁금한 점과 의견을 하나씩 제시하니 한명한테 단순히 설명한 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 사람을 이해시키고, 궁금한 점을 해소시켜주고, 우려나 반대의견이 나오면 설득을 해야되는 과정이 생겨난 것이다. 애초에 예상한 것보다 3~4배의 시간과 노력이 소요되는 것이다.
큰 회사에 대한 투자도 의견이 다르고 갈리는 것이 일반적인데 스타트업 투자는 오죽 하겠는가. 단점만 보면 한없이 안 좋아보이는 것이 스타트업이고 벤처투자는 그 약점에도 불구하고 잘 될 요소를 보고 리스크를 안고 투자를 하는 것이다. 보고대상자에 들어가있으면 이 리스크를 지기 싫어하며 본인들한테 혹시나 피해가 올까봐 방어적인 자세로 나올 수 밖에 없다. 그러니 리스크없는 일만 통과가 잘되고 보통 그런 일은 좋은 일이 될 수 없고 뻔한 일만 반복적으로 진행이 된다.
그리고 보고대상자를 늘리는 것은 여러 이유가 있지만 위에서 본인 혼자 리스크를 감당하기 싫어서이다. 혼자서 의사결정을 하고 리스크를 감당하기 싫으니 본인 밑에 사람들을 추가로 보고라인에 넣어서 밑에서 검토를 하라는 것이다. 책임을 져야되는 사람이 본인의 책임을 덜고 다른 사람들에게 책임을 나누니 여러 사람의 의견이 섞여서 일이 산으로 간다.
일은 규모에 따라 다르지만 의사결정을 하는 사람이 명확히 있어야 되고 그 수는 한정적이어야 한다. 그래야 그 일에 대해 정확히 파악을 하고 올바른 방향 혹은 한가지 방향으로 일이 진행된다. 그렇지 않으면 결국 사공이 많아져서 일은 이도저도 아닌 산으로 가는 것이다. 그리고 회사는 책임자를 정해주되 그 일이 예상한 결과가 안나왔을때 적당한 책임을 지워야한다. 결과에 대한 과도한 책임을 개인에게 지었을때 개인은 혼자서 책임을 지기 두려워 여러 사람을 끌어드린다. 그러니 회사는 개인에게는 감당가능한 수준의 짐을 지어야하고 보호할 수 있는 시스템 또한 제공을 해야한다. 그래야 개인이 책임감을 가지지만 큰 두려움 없이 일을 해나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