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을 배우면 배울수록 철학이란 지식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삶을 배우는 것라는 생각이 많이 든다. 처음에는 철학을 지식을 배우는 것이라 생각을 했다. 철학자의 이론, 주장 등을 배우는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철학을 배운지 3년 가까이 되면서 철학은 삶을 살아가는 전반적인 방법, 태도, 가치관을 배우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떤 사건이 발생했을 때 그 사건을 어떻게 대할건지, 나는 내 삶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누구와 관계맺고 누구를 사랑할건지, 타자를 어떻게 대할건지, 나의 행복의 기준을 어디에 둘 것인지 등 삶 전반에 대해 배우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 철학을 배운 뒤 삶에 전복이 일어나고 있고 모든 걸 처음부터 다시 고민하고 있다는 느낌도 받는다. 그리고 지식의 습득과는 다르게 삶의 전체를 생각해야하기에 어렵기도 하고 힘들기도 하다. 하지만 그것이 궁극적으로 나의 기쁨을 향해 가는 길이라는 확신적인 생각도 든다.
삶 전반에 대한 전복이 일어나고 있다. 가장 큰 것은 회사를 그만 둔 것이다. 일을 그만둔지 3개월정도 밖에 안됐지만 그동안 삶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던 것이 빠지니까 하루하루가 많이 달라졌다. 하루를 어떻게 보낼건지, 어떻게 보내야 삶이 유지되면서도 행복할지에 대해 고민을 하게된다. 답은 못 찾았지만 그동안 가지고 있던 생각에서 벗어나 어떤 삶이 행복한 삶일지, 내게 맞는 삶이지 고민하게 된다. 철학을 배우기 전에 가지고 있던 생각들, 혹은 세상에서 말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스승님이 말한, 그리고 나만의 방식은 무엇일지 처음부터 다시 고민하게 된다.
요즘 다시 공부를 하고 있는 미쉘푸코의 '주체의해석학'에서는 나 자신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세상으로부터 관심을 때고 자기자신에게 관심을 가져라고 말한다. 이 말에 많이 동의가 됐다. 퇴사를 하고 나를 불안하게 하는 것 중 하나는 타인과의 비교였다. 유튜브, 인스타에 들어가면 좋은 곳에서 맛있는 것들을 먹고 여행을 다니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들은 하나같이 모두 행복해보였다. 그런 모습들을 볼 때 마다 내가 잘못 선택한 것인지 의심이 들기도 했다. 직장을 그만두고 도보배달을 하는 내가 초라해보이고 자괴감이 들기도 했다. 내 삶에 집중하지 않고 타인의 삶을 계속 구경하다보니 쉽게 타인과 나를 비교하며 불행하다는 생각을 만들었다. 다른 사람들의 삶을 지속적으로 보는 것이 만드는 또 다른 문제점도 있었다. 내 욕망과 다른 사람들의 욕망이 구분이 안 된다는 것이었다. 내가 직접 경험하지 않고 보기만 하니 모든 게 내 욕망처럼 느껴졌다. 다른 사람들이 하는 것이 다 멋있어 보였고 재미있어 보였다. 지켜보는 모든 것들이 마치 내 욕망처럼 느껴졌다. 보는게 많아질수록 머리 속으로만 욕망하는 게 많아졌고 욕망 과잉상태로 넘어갔다. 그래서 머리가 아프기도 했다.
조금은 차분해질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마침 주체의해석학에서 비슷한 내용을 말했다. 세상에서 신경을 끄고 스스로에게 집중하라는 말이다. 한 번에 모든 걸 정리할 순 없지만 조금씩 예전보다 더 내 삶에, 스스로에게 집중을 하려고 노력하고있다. 특별한 건 아니다. 유튜브, 인스타그램에서 다른 사람의 삶을 보는 것을 줄이고 내 삶, 나의 경험, 내가 직접하는 감각에 더 신경을 쓰는 것이다. 요즘 좋아하는 것이 하나 생겼다. 먹고 싶은 음식을 생각해보고 레시피를 찾아서 직접 만들어보는 것이다. 먹고 싶은 것을 내가 직접 만들어보는 것이 재밌다. 그동안 집에서 밥을 먹는 것은 한끼를 때우는 것이였는데 먹고 싶은 것을 만들어서 먹으니 먹을 때도 좋고 만드는 과정 자체도 좋았다. 특히 요리를 할 때는 잡생각이 안 나고 거기에 집중할 수 있어서 좋았다. 직접 재료들을 손질하고 준비하며 느껴지는 감각 또한 좋았다.
돌이켜보면 항상 정신없이 살았던 것 같다. 엄청 바쁘고 부지런하게 살았던 건 아니지만 삶을 차분히 고민하고 집중하여 살았던 것 같진 않다. 가지고 있던 불안때문이기도 했고 업무의 영향도 있었던 것 같다. 업무 자체가 하나의 일에 집중하기 보다는 여러 산업에 관심을 가지고 새로운 기술과 트렌드에 민감하게 반응해야 되는 일이었다. 예전에는 그 일이 멋있어보이기도 했고 살아가는데 좋다고 생각했다. 항상 새로운 것들을 접하고 공부해야 뒤쳐지지 않고 잘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생각이 많이 바꼈다. 우선 모든 걸 다 따라가려고 해도 따라갈 수가 없다. 새로운 기술은 계속 생겨났고 그것들을 다 따라가려고 해도 수박 겉핥기 수준밖에 되지 않았다. 깊이 없는 단지 헛똑똑이 같은 지식들만 쌓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들을 모두 다 이해하고 따라가려는 삶은 무엇보다 행복하지 않았다. 정신없이 쏟아지는 것들에 신경을 빼앗겨있었고 정작 중요한 내 삶, 주변에 소중한 사람들을 차분히 고민하고 돌아보지 못했다. 뭔가 붕 떠있는 상태가 되거나 불안한 상태가 되었다.
이제는 조금 한계를 받아들이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투자 업무를 하는 사람의 특징이 하나있다. 직접 사업을 하는 것이 아니고 머리, 지식으로만 일을 하기에 마치 여러가지를 동시에 할 수 있는 전지전능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자신도 모르게 한다는 것이다. 여러 산업을 공부하고 여러 회사의 대표들과 만나고 대화를 하니 내가 마치 모든 걸 안다는 듯한 착각을 어느새 하게된다. 얕은 지식들의 총합을 깊고 많은 지식인양 착각을 하게 된다. 그러면서 어느 하나에 집중하는 것을 어려워하고 그것을 손해라고 생각한다. 내가 모든 것을 알고 할 수 있는데 굳이 왜?라고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삶은 그렇지 않다. 삶은 몸으로 사는 것이기에 한번에 하나만 할 수 있다. 지금 철학에 대한 글을 쓰고 있으면 경제에 대한 글은 못쓰고, 지금 요리를 하고 있으면 운동은 할 수 없다. A라는 친구를 만나고 있다면 B라는 친구를 만날 수가 없다. 몸은 하나이고 시간도 한정되어 있다. 오랫동안 머리로만 삶을 사람들은 이 사실을 까먹게 된다. 나 또한 이 사실을 까먹고 있었다. 이제는 이 사실을 받아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 않으면 지독한 분열, 무엇에도 집중하지 못하고 이것과 저것 사이에서 곁눈질하는 삶을 살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지 않기 위해서는 내 감각에 집중해야한다. 몸으로 직접하는 경험에 집중하여 관념이 아닌 현재의 감각에 집중해야한다. 그렇게 한계를 받아들이고 조금씩 현재에 사는 삶을 살려고 한다.
나의 유익성에 대해서도 고민이 된다. 타인, 친구에게 내가 줄 수 있는 유익성은 무엇일까? 유익은 고사하고 유해함만 주는 건 아닐까?하는 고민도 된다. 그런 느낌을 받을때가 있다. 내 머리 속이 복잡하고 불안함을 가지고 있을 때 친구를 만나면 그 친구에게 집중을 못한다. 그 친구가 하는 말을 모두 내 불안, 내 상태에 맞춰서 해석을 하고 나만을 위해서 생각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철학적 용어로 그 친구에게 감응하지 못한 것이다. 이는 분명 유해함이다. 나를 만나 시간을 보내는 친구에게 충만함을 주지 못하고 공허함을 주는 것은 유해함이다. 친구에게 내 불안을 느끼게 하는 것도 유해함이다. 친구에게 유해함을 주지 않고 유익함을 주기 위해서는 먼저 내 마음이 정돈되어야 한다. 평정심에 이르렀을 때, 나의 마음에 집중하지 않고 너의 마음에 집중하고 흔들릴 수 있을 때 너를 만나야된다. 평온한 마음은 너의 마음에 감응할 수 있지만 울렁거리는 혼돈스러운 마음은 너의 마음에 감응 할 수 없다. 깨닳은 사람의 마음은 자신의 고민으로 울렁거리는 상태도 아니며 계속 평정심을 유지한 상태도 아니다. 나의 번뇌를 어느정도 해결하여 평정심에 이른 상태이며, 그렇게 이른 평정심으로 타인을 만나 다시금 울렁이는 마음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렇게 나의 평정심을 울렁이는 마음으로 바껴서 타인의 울렁이는 마음을 평정심으로 바꿔주는 것이다. 그것이 깨닳은 사람의 마음상태일 것이다.
세상, 불특정 다수에게 신경을 끄고 나의 삶, 나의 감각에 집중을 할 때이다. 나의 삶으로 돌아가고, 그렇게 나로 돌아간 상태에서 내게 소중한 사람들을 만나야된다. 모든 걸 사랑하는 사람은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다. 내게 소중한 한명 한명을 세심하게 살펴야 할 때이다. 그렇게 한명 한명을 세심하게 살피고 만나며 그 한명을 넓혀나가야 한다. 다수의 너가 아니라, 단독적인 너를 만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조금 더 욕심을 내서 내게 고마운, 소중한 사람들을 모두 단독적인 너로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