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바나 아름다운 나의 도시-0
쿠바는 어떤 나라일까
대학교 2학년, 군복무를 마치고 돌아온 학교에서는 꽤나 바쁜 일들의 연속이었다.
여느 대학생처럼 과제와 시험에 치이기도 하였고, 뉴스와 신문에서는 연일 불경기와 청년실업에 대해 떠들어 대고 있었다.
선배들은 꽤나 바쁘게 사는 것 같으면서도 취업의 실패와 불확실한 미래에 불안해 보이기는 마찬가지였다. 나 역시 그런 분위기에 떠밀려 토익학원도 다니고 취업특강도 가보고 하던 때였다.
우연이었을까. 오랜만에 돌아간 고향집 거실의 티비에서 걸어서 세계속으로를 봤다. 그게 걸어서 세계속으로는 기억이 정확하지는 않지만, 요즈음의 영화배우나 아이돌 그룹의 화려한 여행기는 아닌 피디 혹은 현지작가의 소개와 설명, 체험으로 진행되는 그런 류의 여행프로그램이었다.
쿠바는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미지의 나라였다. UN에 가입한 200여 국가 중에 대한민국이 수교하지 않은 나라는 4곳뿐이다. 북한, 시리아, 코소보 그리고 쿠바이다. 쿠바에는 아직도 대한민국의 대사관과 영사관이 설치되지 않아 주 멕시코 대사관에서 영사업무를 진행하고 있다.
2016년, 파드레 데 레볼루시온, 쿠바 혁명의 아버지 혹은 독재자 피델 카스트로가 90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그의 친구이자 혁명의 아이콘, 체 게바라가 요절한 것에 비하면 천수를 누린 죽음이었다. 동생 라울 카스트로가 권력을 이양받아 독재는 이어졌지만, 피델의 죽음은 꽤나 많은 것을 바꿔놓았다.
쿠바 미사일 사태로 전쟁직전까지 갔던 양국의 관계는 60년 만에 국교가 정상화가 되고 대사관을 설치하기에 이른다. 아메리칸 에어라인의 마이애미-하바나 노선도 비행을 시작했다. 이제 아롤디스 채프먼이나 호세 아브레이유와 같은 보트난민 쿠바 야구 선수들은 역사로만 남게 되었다.
2016년 피델의 사망 이후 미국과 쿠바의 관계는 원만했다. 이 기간 동안 각종 미디어에서는 쿠바와 수도 아바나가 등장하곤 했는데, 헐리우드 영화 분노의 질주에서는 아바나를 배경으로 올드카 레이스가 펼쳐지기도 하였다. 지금은 쿠바와 아바나의 상징이 된 올드 카는 역설적이게도 미국과 쿠바 사이의 반목에서 탄생했다.
1950년대 미국은 공산주의 세력에 맞선다는 명목으로 군사독재정권인 바티스타 정권을 후원했다. 바티스타 정권의 부정부패와 악행이 계속되자 1959년 젊은 장교 피델과 아르헨티나 출신의 의사 체게바라는 이에 혁명(쿠바인들은 이것을 REVOLUCIÓN, 레볼루시온이라 부른다)을 일으켜 공산정권을 수립한다.
플로리다 주 바로 아래에 위치한 자신들의 앞마당 쿠바에 공산정권이 수립되는 것을 묵시할 수 없었던 미국은 공산정권 수립에 반대하여 쿠바를 탈출한 게릴라 세력에게 무기와 자금을 지원하고 군사훈련을 실시하였다. 1961년 4월 17일 미국의 항공기와 수송선을 타고 게릴라 세력은 쿠바의 피그만(Bays of Pigs)을 통해 상륙했으나, 100명이 전사하고 1천 명이 포로로 되는 참패를 겪게 되는데, 이를 피그만 침공이라고 부른다.
피그만 침공 실패 이후 이듬해, 기세가 오른 쿠바와 소련은 미국 본토를 직접 타격할 수 있는 미사일 기지를 건설하기에 이르는데, 이를 안 미국이 쿠바 일대의 해역을 군함으로 봉쇄하면서 미국과 소련의 해군들이 대치하는 사태가 벌어진다. 전 세계가 3차 대전과 핵전쟁의 공포에 휩싸여 있을 때 소련이 미사일 기지 건설 계획을 철회하고 군함을 복귀시키면서 사태가 일단락된다. 피그만 침공과 쿠바 미사일 위기 이후 양측은 국교를 단절하기에 이르고 미국은 쿠바에 대해 각종 금수조치와 제재를 실시하였다.
역설적이게도 바티스타 군사독재시절의 쿠바는 꽤 잘 살았다. 2차 대전을 겪으면서 미국 내 산업이 군수산업위주로 개편되자 밀, 소고기, 설탕 등의 식량을 쿠바를 비롯한 남미에서 수입했다. 쿠바의 부르주아 계급은 스페인 시대부터 축적했던 부를 바탕으로 유럽과 미국에 중개무역을 하는 한편, 설탕 등의 플랜테이션 농장을 통해 더욱 성장했다. 이때 전후에 얼마 남지 않았던 이탈리아의 포르쉐와 페라리, 그리고 쉐보레 등의 고급자동차가 다량으로 수입되었다.
미국과의 단교와 제재 이후 쿠바가 더 이상 자동차를 수입할 수 없자 올드카는 고치고 고쳐 다시 쓰게 되었다. 부품을 돌려쓰고 맞지 않으면 깎아 썼다. 그것이 현재는 관광유산으로 남았다니 아이러니하다.
쿠바와 아바나의 아름다운 유산은 쿠바 역사를 빼놓고는 말하기 어렵다. 나는 그런 쿠바에 열흘간 있으며 많은 것을 보고 느꼈다. 앞으로의 여행기에 그것들을 풀어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