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이 내게 쿠바를 간다 혹은 다녀왔다고 했을 때 그 먼 나라를 왜 가고 싶어 했냐고 했다. 앞서 나는 여러 이유를 설명하기도 했지만, 그 설명이 나오기도 전에 먼저 묻는 이도 더럿 있었다. 혹시 체 게바라를 찾아 쿠바로 갔느냐?
Che Guevara,1968 | Pitz Patrick|
혹자는 이 사진이 세계에서 가장 많이 (불법) 복제된 이미지라고 말한다. 1968년 아일랜드의 미술가 짐 피츠 패트릭은 이 이미지를 제작해 무료로 배포했다. 지금도 이 이미지는 티셔츠, 앨범, 저항의 상징으로 사용되고 있다.
많은 이들이 체 게바라가 쿠바사람으로 기억한다. 그는 아르헨티나의 부유층 자제로 태어난 의사였다. 그의 아버지는 지역에서 가장 큰 병원의 병원장이었다. 그의 애칭 che도 이탈리아 식 이름이다. 아르헨티나는 이탈리아의 이민자들이 건설한 나라였기 때문이다. (당연히 후대의 이탈리아인들은 부르주아로 살았다.)
한편 체 게바라의 명성이 전 세계적인 것에 비해 쿠바 내부에서는 피델 카스트로를 더 쳐주는 분위기였다. 그들에게 피델은 국부이며 체 게바라는 쿠바를 떠났지만 피델은 60년간 쿠바를 통치하며 미국과 맞짱(?)뜨는 리더십을 보여주었기도 하였다.(여담으로 피델이 죽고 그의 동생 라울 카스트로가 정권을 이어받았지만, 여행객에게 라울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큐바노는 존재하지 않았다. )
나 역시도 그 흔한 체 게바라 티셔츠와 현수막, 태피스트리, 마그넷 등을 가지고 있지 않은 그저 평범한 관광객이었다. 그리고 단 한 개의 체게바라 기념품도 사지 않았다.
체 게바라는 쿠바의 상징이자 아이콘이다.
쿠바의 여느 가정집에도 그의 초상화가 현관에 있다.
[올드 하바나, 여기가 하바나의 시작이다]
드디어 나는 말레꼰에 무거운 짐을 풀고 약간의 휴식을 취한 뒤 올드 하바나로 이동했다.
올드 하바나 말 그대로 구 하바나 지역이다. 우리의 사대문 안쪽과 같이 예전에는 올드 하바나만 하바나였고, 나머지는 황무지였다. 하바나 항을 중심으로 하는 식민지 무역은 부유한 스페인 지배계급과 몇몇의 부르주아 큐바노를 낳았다. 올드 하바나는 우리의 종로처럼 쿠바의 역사를 관통하는 유서 깊은 거리이다.
하바나의 명물 올드카들이 형형색색을 뽐낸다
올드 하바나의 중심부에 위치한 플라사 데 아르마스(Plaza de Armas)는 하바나의 가장 오래된 광장 중 하나로, 주변에는 고풍스러운 건물들과 책 시장이 열리며, 광장 중심에는 카를로스 마누엘 데 세스페데스의 동상이 있다. 이 광장은 지역 주민들과 관광객들이 어울리는 만남의 장소로, 하바나의 역사와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중요한 장소다.
사회주의 국가 쿠바의 숙박업 역시 허가제이다. 저 마크가 바로 인증마크이다.
Casa, 까사, 집이라는 평범한 스페인어 고유명사이다. 우리에게도 친숙한 가구 브랜드 '까사미아'도 여기서 왔다. 쿠바에서는 숙박업이 허가제이다. 오로지 까사 인증마크를 부여받은 곳만 숙박업을 할 수 있다.
올드 하바나의 정취에 빠져있을 때, 낯선 이방인은 많은 호객꾼들의 시달림을 받아야 했다. 데이투어, 마차투어, 올드카 투어, 시가와 같은 특산품 구매까지. 호객행위에 지쳐갈 무렵 그중 한 명의 큐바노는 한국어와 영어를 섞어 쓰며 나의 경계를 허물어 뜨렸다. 그는 자신의 바에 초대한다며 어느 술집으로 들어갔다.
술집은 에어컨으로 쾌적했고, 현지인 손님도 제법 있는 꽤 인기 있는 곳이었다.
[ 흰 것은 체 게바라, 검은 것은 피델.]
그가 말한다. 흰 것은 체 게바라, 검은 것은 피델.
쿠바가 사탕수수 식민지였다는 점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사탕수수를 발효하여 만든 것이 바로 럼주이다.
쿠바 럼주는 독특한 특징이 있다. 첫째, 쿠바 럼은 주로 사탕수수 당밀을 원료로 하여 발효, 증류, 숙성 과정을 거친다. 쿠바의 기후와 토양은 사탕수수 재배에 최적의 조건을 제공하며, 이는 럼의 풍미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둘째, 쿠바 럼은 위스키와 같이 오크통에서 숙성되며, 이 과정에서 럼은 독특한 향과 맛을 얻게 된다. 오크통 숙성은 럼에 깊고 복합적인 풍미를 부여한다. 하바나 클럽(Havana Club), 바카디(Bacardi) 등 우리나라에서도 흔히 구할 수 있는 리큐르 베이스 럼주가 쿠바에서 왔다.
국내에도 정식 수입된 하바나 클럽, 아니 근데 미수교국에서 이걸 어떻게 들여왔지?
이 럼을 기반으로 신선한 민트 잎, 라임 주스, 설탕, 탄산수를 섞어 만든 것이 그 유명한 모히또이다. 신선한 민트 잎은 모히또에 청량감을 더해주고, 라임 주스는 상큼한 맛을 제공하며 설탕과 함께 단맛과 신맛의 균형을 맞춘다. 백 럼은 모히또의 풍미를 완성하고, 탄산수는 상쾌함을 더해준다.
쿠바 리브레(Cuba Libre)는 럼과 콜라, 라임 주스로 간단하게 만들어진다. 이 칵테일의 이름은 스페인어로 "자유 쿠바"를 의미하며, 이는 쿠바의 독립과 자유를 기념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쿠바 리브레의 기원은 190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칵테일은 미국-스페인 전쟁 이후 쿠바의 독립을 축하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당시 미국 군인들이 쿠바에 주둔하면서 현지인들과 함께 즐긴 음료가 바로 쿠바 리브레였다. 럼은 쿠바에서, 콜라는 미국에서 왔고, 라임은 현지에서 자주 사용되는 과일이었기 때문에 이 셋이 합쳐져 탄생한 음료이다. 한 전설에 따르면, 한 미국 군인이 바에서 럼과 콜라를 섞은 음료를 마시며 "Por Cuba Libre!"(자유 쿠바를 위하여!)라고 외쳤다고 한다. 이 말이 퍼지면서 음료 이름이 되었다.
그렇다. 영상 속의 흰 것은 모히또, 검은 것은 큐바 리브레이다. 모히또야 워낙 유명한 술이지만 큐바 리브레라는 것은 그날 저녁 알았다.
모히또 아래 큐바 리브레라는 글자가 보인다.
큐바 리브레는 낮에 먹은 술과 똑같았다. 맛은 어떠냐고? 미국 위스키 잭다니엘 코크 잭다니엘에 콜라를 섞은 것으로 완제품으로도 나온다. 그거랑 거의 같았다.
그는 나에게 친구가 된 기념으로 바우처를 써주겠다고 한다. 그리고 술값에는 이 바우처값이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1 museo = 1개 박물관이라는 뜻이다. 뮤세오는 뮤지엄이다. 12시 30분까지 나오면 투어를 시켜준다고 한다. 술값이 얼마 나왔냐고? 종이에 수기로 적어준(사진이 어디 갔는지는 모르겠다) 그의 금액은 모히또 1잔 큐바 리브레 한잔에 2천5백 CUP였다.(큐바페소, 혹은 쿱이라고 읽는다)
이게 얼마냐면 현재 100달러가 2천5백큐바페소이다. 나는 이때 천 달러를 환전을 했었다. 그러니까 원화로 하자면 2천 5백큐바페소는 약 12만 5천원 정도 되는 것이다. (1,250원달러환율 기준)
그렇다 나는 칵테일 2잔에 12만 5천 원을 지불해고 말도 안 되는 종이 바우처를 받아온 것이다. 이걸 숙소로 가져와 매니저인 알버트에게 물었다. 이거 말이 되는 거야?
알버트: 오 맨, 아미고 너는 속은 거야. 그런 가격은 없어. 250 큐바페소면 큐바리브레 먹을 수 있어(위 사진이 이걸 증명한다) 모히또도 300 페소면 충분해. 그리고 이런 바우처는 없어. 12시 30분에 나가잖아? 이제 그들은 너에게 시가를 팔려고 할걸?
그렇게 나는 모히또 2잔의 비싼 수업료를 지불하며, 이방인의 어리숙함을 경험할 수 있었다. 흰 것은 체 게바라, 검은 것은 피델이라. 굉장한 브랜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