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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석훈 Jul 13. 2024

피를 봐야 정신 차리지

오랜만에

친구들과 모이면 자주 하는 헛소리가 있다.

 사람이 물을 봐줘야 해~ 

누구라도 그 말을 하면 늦은 새벽에도 근처 호수공원에 간다.

특별히 하는 건 없다. 패스트푸드나 편의점음식을 사가서 먹고 담배를 피운다. 술을 마시진 않는다.


가끔씩 봐주면 도움 되는 것들이 있다. 호수, 바다, 계곡, 산, 숲, 나무 등등

이 목록에 한 가지 추가하고 싶다. 피 다.


평소에 공용자전거나 스쿠터를 자주 이용한다.

늦은 밤이었고 시외버스에서 내렸을 땐 이미 막차가 끊길 시간이었다.

걸어가면 30분, 버스 타면 10분 조금 넘게 걸리는 거리. 밤의 눅눅한 여름 공기를 미뤄내고 있었다.

조금 걷다가 스쿠터든 자전거든 보이면 타야겠다고 생각하자마자 자전거가 보였다.

잠금을 해제하고 페달을 밟는다. 전기자전거를 타본 사람이라면 허공에 페달질하는 느낌을 알 것이다.

도로와 인도를 오가며 차와 사람을 피해 달린다. 익숙한 건물들이 서서히 늘어난다. 집 근처에 다다라서 속도를 올린다. 붉은 자전거 도로를 마음 놓고 질주한다. 도로가 끊긴다. 촘촘한 볼라드가 보인다. 왼쪽? 오른쪽?

이미 늦었다.


조금 날았다. 

부딪치기 직전에 머리로는 알고 있었다. 부딪친다. 어디 부러지지 않으면 좋겠다.

아마 핸들을 왼쪽으로 돌린 것 같다. 핸들 끝자락에 골반이 걸려 생각보다 멀리 날아가지 않은 듯하다.

그 자리에 누워 비명을 삼켰다.

늦은 밤이었고 아무도 없었지만, 혹시 몰랐다. 수치심이 수그러들자 아픔이 몰려왔다.

골반, 무릎, 어깨가 깨진 듯 아파왔다. 천천히 숨을 고른다. 왼쪽 팔뚝이 서늘해진다.

피부 위에 하얀 섬이 자리 잡았다. 주변으로 붉은 바다가 일렁이다 이내 섬을 삼킨다.

쓰라리다. 동시에 반가웠다. 오랜만에 느끼는 쓰라림이었다.


어릴 적 나는 활동적인 만큼 조심성이 부족했다.

뼈가 부러지거나 수술을 적은 없지만 작은 찰과상을 달고 살았다.

무릎, 팔꿈치 같은 부위에 언제나 반창고가 붙어있었다. 지금 와서 보니 이곳저곳 흉터도 많다.

그리고 지금. 

근 10년 만에 상처라고 할만한 상처가 생겼다.

생각보다 쓰라리고 생각보다 징그럽다. 어릴 적에 내가 지금의 나보다 상처에 무뎠나 보다.

참을성이 많았던 건가. 아무튼. 반가웠다.

피를 보니 정신이 더 또렷해진다. 무릎과 어깨를 살핀다. 누렇게 멍이 들었다. 조금 쑤시다.

내일이면 시퍼레지겠구나.

 

일어날 수도 있었지만 마침 사람도 없었고 밤공기가 시원해 묘한 해방감이 들었다.

또렷해진 정신 덕에 심장소리와 아픔이 더 크게 느껴졌다.

그렇게 누워있길 몇 분. 문득 핸드폰이 생각났다. 

벌떡 일어나 가방을 살핀다. 내부가 담뱃재로 범벅이 되었지만 없어진 것도, 부서진 것도 없었다.

자전거는 부딪친 자리에서 멀리 벗어나지 않았다. 나와 달리 멀쩡했다.


다시 페달질을 시작한다. 조금 긴장한 채 자전거 도로를 달린다.

집 근처에서 자전거를 반납한다. 그제야 마음이 조금 놓인다.

집으로 들어가 상처를 살핀다. 이를 꽉 문 채 흐르는 물로 상처를 씻어낸다.

하얀 섬이 드러난다. 다시 잠기기 전에 상처를 닦는다.

상처 부위에 습윤 밴드를 붙인다. 얼마 지나지 않자 상처모양으로 불룩하게 진물이 올라온다.

흉이 지면 그때 다시 글을 써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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