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사라진 그 시절 동대문 형들
야 친구야 그 옷 어디 거야? 예쁘다~ 이리 와봐~
아니 형이 너 꾸며주려는 거야. 부담 갖지 말고 입어봐~
이 씨 X아 안 살 거야?
2000~2010년대 초 동대문 옷가게를 가본 사람은 알겠지만 모든 상인이 저런 식이었다.
더 하면 더 했지. 반말은 기본에 쌍욕을 퍼붓고 심지어 폭행까지 자행되었었다.
지금은 온 오프라인 모두 매장, 팝업, 쇼핑몰이 잘 되어있지만 2000~2010년대 초까지 옷을 사려면 브랜드 아니면 동대문이었다. 그중에도 동대문 보세옷은 질이 좋진 않지만 싸고 예쁘다는 인식이 있어서 젊은 사람들은 대부분 동대문에서 옷을 사곤 했다. 하지만 옷 한 벌 사려 하면 각오를 했어야 했다. 애초에 한 벌을 살 수도 없었다. 돈은 딱 쓸 만큼 현금으로 가져가고 혼자 가지 말 것. 원하는 옷이 보일 때까지 불러도 뒤돌아보지 말 것. 지금 생각해 보면 던전에 들어가는 용사의 마음가짐이었다.
중학교 3학년 때 친구를 따라 처음 동대문에서 옷을 산 적이 있다. 좁은 문을 지나 에스컬레이터를 타자마자 위에서 크고 작은 소리들이 들렸다. 던전에 입성하는 순간이었다. 에스컬레이터를 내려서 처음 들은 소리가 어이! 였을 것이다. 같이 간 친구는 익숙한 듯 눈을 피하고 무시하며 지나갔다. 앞에서부터 집요하게 우리를 부르던 나시 입은 형에게 저 OO형네 가요!라고 하니 그제야 말 걸기를 멈췄다. 던전을 뚫고 도착한 매장에서 차비와 밥값을 제외한 모든 돈을 썼다. 동대문에 왔으니 떡볶이 먹고 가라는 OO형은 호탕하게 말하며 입꼬리가 올라가 있었다. 그렇게 산 맨투맨과 청바지는 고등학교에 들어갈 때쯤 해졌다. 나는 더 입고 싶었지만 어머니는 고민 없이 버리셨다.
지금 생각해 보면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옷 사러 온 손님에게 쌍욕이라니. 하지만 그때는 그게 당연했다. 거실에서 담배 피우는 아버지, 몽둥이로 학생을 패던 선생님처럼. 낭만의 시대, 강한 자만 살아남던 시대라고 하지만 그 시대의 어둠은 이 시대의 어둠보다 밝지 않았다.
시간이 흘러 동대문 보세시장은 쇠퇴했다. 그전부터 있던 낮은 품질 문제, 손님응대 방식과 함께 2010년 초중반에 론칭한 국내의 젊은 브랜드(비바스튜디오, 커버낫이 대표적이다), 싸고 품질 좋은 각종 SPA브랜드, 무신사에 밀려 자연스레 사라졌다. 그러면 동대문 던전에 서식하던 이들은 어디로 갔을까? 나에게 싸구려 맨투맨과 청바지, 셔츠를 팔고 비릿하게 웃던 그 형은 지금 어디서 뭐 할까?
그들은 동대문을 나와 번화가에 로드샵을 차리거나 수완이 좋으면 백화점에 입점하기도 했다. 동대문 도매시장도 위기를 느끼고 품질에 조금씩 신경 쓰기 시작한다. 상인들은 기존의 저질스러운 응대방식에서 옷을 자세히 설명하고 손님에게 맞는 스타일을 친절하게 추천하는 진짜 영업사원 같은 방식으로 바뀐다. 매장 분위기도 편집샵 같은 고급스러운 느낌을 내거나 아예 저가 박리다매를 노린다. 그렇게 바뀐 이들만 살아남았다.
내가 처음 매장에 입사할 때 손님을 응대하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그냥 계산해 주고 옷 정리 하겠지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그런 매장이 대부분이니까. 하지만 첫 출근날 매장 입구에서부터 깔깔대는 웃음소리가 들렸다. 사수는 능숙하게 손님을 응대하며 한 벌 한 벌 옷을 입혀갔다. 아 이 청바지랑은 지금 입고 계신 니트도 예쁜데 이 맨투맨이랑 입으셔도 잘 어울릴 거예요 하며 거울 앞에 선 손님에게 맨투맨을 가져다 댔다. 손님이 불쾌한 기색이 없자 한 번 입어보세요 하며 환하게 웃으니 손님도 그럼 한 번 입어볼게요 하며 탈의실에 들어갔다. 손님의 일행과 옷 얘기 일상 얘기를 하며 금세 친해지니 일행은 그 손님이 나오자 사수보다 먼저 예쁘다를 남발했다. 충격적이었다. 그때 그 손님은 청바지 하나 보러 와서 니트에 맨투맨까지 한 30만 원어치 사갔던 것 같다. 손님 일행은 매장을 나가면서도 사수에게 고맙다며 인사를 했다. 사수도 밝은 미소로 감사합니다 또 들러주셔요~ 하며 응대를 마치고 재킷을 팔지 못했다며 아쉬워했다.
나이차이가 꽤 나는 그 사수는 동대문 출신이었다. 나는 그에게 손님 응대, 재고관리, 디스플레이 등등 매장관리의 전반을 배웠다. 사장님들도 모두 동대문에서 옷장사를 하던, 중학생시절 나에게 옷을 팔던 그런 형들이었다. 지금은 그렇게 장사하면 잡혀간다며 섬세하고 조심스레 응대를 가르쳐주었다.
나는 동대문에서 장사를 해본 적이 없다. 해보고 싶지도 않다. 그건 응대가 아니라 강매고 폭력이다. 하지만 나에게는 동대문의 피가 흐른다. 동대문 2세라고 해야 할까. 아무것도 모르는 갓 전역한 코흘리개가 이젠 얼굴에 두꺼운 철판을 깔고 제법 능숙하게 손님을 응대한다. 고맙고 소중한 단골이 생기고 잊지 못할 진상이 생겼다.
그 많던 동팔이들은 다 어디 갔을까. 대부분 도태되고 몇몇은 살아남았다.
여기 있다. 옷을 판다. 글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