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추는 매워요
여름의 한가운데에서 이 글을 쓴다.
장마가 없었으니 이번 여름 수박은 맛있겠구나. 전역 후 제일 먼저 읽은 책이 김애란 작가의 비행운이다.
너는 자라 내가 되겠지. 겨우 내가 되겠지. 노랫말로 알고 있던 문장의 출처 정도로만 알고 있었는데 읽어보니 여름에 맞게, 어쩌면 맞지 않게 축축하고 끈적한 소설이었다.
게이밍 노트북을 치워버렸다. 퇴근 후 책상에 앉을 명분을 만들기 위해 게임을 시작하려 했다. 하지만 어떤 게임도 예전 같은 재미는 없었다. 사실 재미는 바라지도 않았다. 한 시간 정도 뇌를 비우고 몰입할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했었다. 다시 글 쓰는 노트북을 가져다 놓고 그냥 앉았다. 앉아서 놀고먹고 하다 보니 쓸 수 있게 됐다.
가족들이 모두 잠든 시간에 귀가한다. 에어컨만이 어둠속에서 차가운 숨을 내뿜는다. 뒤꿈치를 살짝 든 채로 부엌의 제일 작은 불을 켠다. 가스레인지 위에 솥이 놓여 있다면 덥혀 먹고 그렇지 않다면 냉동실을 뒤져 고기나 햄 등을 꺼내 에어프라이기에 넣는다. 냉장고에 소분되어 있는 밥을 전자레인지에 넣는다. 조용히 방에 가져와 100번도 넘게 본 드라마나 팟캐스트를 들으며 밥을 먹는다. 조용한 시간. 중학생 때 나의 가장 편한 시간은 늦은 밤 학원에서 귀가하여 모두가 잠든 시간에 시리얼을 먹으며 만화를 보는 것이었다. 사람을 만나면서 에너지를 얻는 나지만 이런 시간도 몹시 소중하다.
며칠 전에 일찍 귀가하여 밥을 먹는데 아버지가 들어오셨다. 가끔 이렇게 겹치기도 한다. 어머니가 해주신 보쌈에 고추를 쌈장에 찍어먹고 있었는데 아버지가 밥상에 앉으시더니 장난스러운 말투로 고추 끝까지 먹어야지 그게 뭐냐~ 농부들 생각해야지라고 하셨다. 오랜만에 들어보는 낡디 낡은 충고였다. 나는 그 말이 괜히 거슬려 대충 농부들이 우리보다 잘 산다고 하며 넘겼다. 아버지는 그 말이 마음에 안 들었는지 그렇게 말하면 싸우자는 것 밖에 더 되냐고 은은하게 화를 표출하셨다. 최근. 그러니까 근 5년 동안은 아버지와 사이가 좋다. 내 마음 한편에 많이 작아졌지만 여전히 뜨거운 불덩이를 잘 죽이며 살고 있다. 화를 은은하게 표출하는 아버지를 보고 꼴좋다는 마음과 측은지심, 약간의 씁쓸함과 슬픔이 몰려왔다. 어릴 때였으면 불같이 화를 내셨을 텐데. 작살을 놓으셨을 텐데. 나는 점점 커지고 아버지는 점점 작아진다.
그의 에너지가 그리운 것은 아니다. 그냥 함께 오랜 시간을 보낸, 함께 나이를 먹어가는 인간을 바라보는 마음이 크다. 그러다 제일 마지막에는 화가 났다. 지금 당장 식탁을 엎고 접시를 깨며 내가 고추를 씹어먹든 베어 먹든 먹다가 뱉든 당신이 무슨 상관이 나며 화를 내고 싶었고, 낼 수도 있었다. 온 집안을 뒤집어 놓고 어머니의 귀를 막은 채 할머니와 아버지에게 큰아들, 큰 손주 없는 셈 치고 사시라며 풍비박산 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그 안에는 가정의 평화를 위함이 한 스푼, 아직 나도 모르는 내 안에 남은 아버지에 대한 두려움 한 스푼, 어머니에 대한 사랑이 한 스푼, 할머니에 대한 걱정이 한 스푼... 여러 가지가 섞여 목이 씁쓸했다.
그냥 아무 말 없이 고추 밑동을 씹었다. 아삭이 고추라면서. 꽤 쌉쌀하고 맵싸하다. 맺힌 씨를 쌈장에 푹 찍어 하나하나 우적우적 씹어 삼켰다.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 나는 눈물을 흘릴까. 잘 모르겠다.
여름이 좋냐 겨울이 좋냐 물어보면 내 대답은 언제나 겨울이다. 확신에 찬 겨울이다. 너 겨울에 보자. 그때 가면 여름이 좋다고 할걸? 그러면 나는 절대 그럴 일 없다고 한다. 겨울이 오고 지금처럼 계절의 한가운데에 놓이면 정말 죽을 정도로 춥다. 하지만 여름을 그리워하지는 않는다.
여름과 겨울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할 때 늘 덧붙이는 말이 있다. 여름은 괴롭고 겨울은 고통스럽다. 아픔은 견딜 수 있지만 괴로움은 애초에 견디지 말라고 생겨난 것이라고. 누군가는 겨울에 사람이 더 많이 죽는다고. 겨울이 더 견디기 힘들다고 말한다. 잘 모르겠다. 고통 속에 죽고 괴로움에 산다. 둘 다 비극이다.
살아야지. 괴로움과 고통 속에서도 살아야지.
최근에 다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첫 문장도 뗐다. 나 같은 초보 소설가들은 쓰고자 하는 말이 너무 많아(혹은 텅 비어서) 글을 나아가지 못하기도 한다. 그렇기에 이곳에 털어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