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시리즈: 시작하는 사람들 04
왓츠뉴는 이름 그대로 새로운 것들에 관한 콘텐츠입니다.
왓츠뉴의 인터뷰 시리즈 <시작하는 사람들>은 무언가 새로운 것에 첫 발을 내디딘 이들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소개 부탁드립니다. 무엇을 새로 시작하고 계신가요?
저는 IT회사에서 카피라이터로 일하고 있는 최광래라고 합니다. 노트폴리오와 라우드소싱이라는 디자인 플랫폼을 보유한 '스터닝'이라는 스타트업에서 일하고 있고요. 대기업 금융사에서 스타트업으로 이직해 새로 일을 시작한 지 두세 달 정도 되었어요.
광고회사의 카피라이터는 많이 들어봤는데, 일반 기업의 카피라이터는 무슨 일을 하나요?
회사에서 나오는 모든 글을 책임진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상품명, 서비스명, 보도자료, 콘텐츠 등 브랜드가 보여지는 모든 곳에서 어떤 말투로 말을 건넬지 고민해요. 회사가 내보내는 모든 글에 대해 책임감을 갖는 일이죠. 작게는 회사 내부 오피셜 메일을 어떻게 이름 지을지까지도 고민해요. 어떤 이름을, 왜 그렇게 지어야 하는지 제시하는 거죠. 어쩌면 콘텐츠 에디터와 비슷해 보이기도 하지만, 더 넓은 영역에서 브랜드 이미지를 형성하는 요소 중 '텍스트'를 담당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어요.
어쩌면 요즘 핫한 UX라이터와도 비슷하다고 볼 수 있을까요?
회사에서 요구한 건 아니지만 비슷한 영역의 업무를 하기도 해요. UX라이터와 다른 점은 제가 하는 일이 좀 더 콘텐츠와 마케팅을 중심에 두고 있다는 점인 것 같아요. 물론 큰 틀에서 보면 UX라이터의 역할이 마케팅이나 콘텐츠의 요소가 되기도 하지만요. 회사의 인상을 결정한다는 점에서는 같은 일을 하고 있다고 봐요. 장기적으로는 UX라이터의 역할까지도 제가 관여해야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하고요.
대기업에서 스타트업으로 이직하신 건가요?
네. 맞아요. 원래는 삼성생명에서 8개월 정도 일을 하다가 나왔어요. 아, 먼저 오해하지 않으셨으면 하는 부분이 있는데요. 그곳에서 일하는 게 대단히 힘들어서 그만둔 것도 아니었고, 대단히 열정적이라 하고 싶은 일을 위해 모든 걸 포기하고 도전하는, 그런 것도 아니었어요. 저로서는 가장 합리적인 선택을 한 거였거든요. 꿈에 부풀고 가슴이 뛰는 선택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잘 살 수 있을지” 고민하며 나온 차가운 선택이었어요.
제가 영향을 많이 받았던 사람이 BC카드의 이동수 님이에요. <아무튼 출근>에도 나오셨던 분인데. 이분의 철학이 “언젠가 회사는 망하고 나는 잘린다”예요. 근데 오히려 저도 그런 생각을 품어야 회사를 더 잘 다닐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회사를 따르는 게 아니라 저 자신을 중심으로 잘 살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게 되었죠. 대기업을 다니는 건 톱니바퀴 부품으로 사는 것 같아요. 그게 나쁜 건 아닌데, 회사가 커질수록 회사가 없는 저는 작아진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언제든지 잘려도 괜찮은 직장을 선택해야 한다고 결론을 내리고 보니 (이직을 해야겠다는 결정이) 명확해지더라고요.
그래도 정말 어려운 선택이었을 것 같아요. 입사하기 어렵기도 하고, 대기업이 주는 확실한 베네핏이 있잖아요.
네, 그건 맞아요. 일단 지금 다니는 스타트업의 공고를 보고 원서를 냈고, 덜컥 붙었는데. (웃음) 붙고 나서 정말 고민이 많았어요. 일단 대기업은 부모님이 너무나 좋아하셨고. 주변 친구들도 다들 저보고 고생 끝났다, 이런 얘기 했거든요. 대기업이 주는 연봉과 복지, 타이틀도 진짜 편하고 달콤하긴 했어요. 제가 주변의 눈치를 안 보는 편은 절대 아니거든요. 대기업을 처음에 가야겠다고 생각했던 것도 저의 온전한 선택이라기보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 썼던 거죠. 그에 반해서 새로운 회사는 포지션도 정확하지 않고, 불안정해 보이는 선택이니까요.
연봉이 주는 기쁨도 컸을 것 같은데요
네, 월급날엔 정말 활짝 웃었죠. (모두 웃음) 스타트업으로 이동할 때 연봉이 줄어든다는 불안감도 있었는데요. 막상 회사를 옮기니 지출도 달라져서, 저한테 남아 있는 돈은 거의 같더라고요. 삼성에서 일할 때는 주변에서도 그에 맞는 소비를 요구한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제가 아까 주변의 시선을 의식한다고 했잖아요. 주변 사람들한테 밥도 많이 사고, 지출도 커지고. 여기로 옮기고 나니까 돈을 과하게 쓸 일이 없어요. 주변에서 저한테 밥도 사주고요. (웃음) 제가 물욕이 큰 것도 아니라서요.
요즘은 어떠세요? 이직이라는 선택에 만족하시나요?
솔직히 너무 잘한 선택인 것 같아요. 지금 회사에선 제 목소리를 낼 기회가 많고, 어떤 의견을 내도 “이건 광래님 의견”이라고 인정해주거든요. 대기업에서는 항상 탑다운으로 내려오는 일을 잘 수행하고, 운영하는 게 중요하다 보니까 제 생각이 커진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어요. 회사가 작아지다 보니 캠페인의 규모는 훨씬 작지만 제 생각을 담고, 제가 직접 문장을 고를 수 있고, 이런 점들이 좋아요. 제가 추구했던 걸 이룬 것 같아요.
돈에 대한 불만족은 적고, 일에 대한 성취감은 커지니 결국 합리적인 선택이 맞았던 거죠.
이직, 퇴사를 앞두고 용기가 필요한 분들에게 도움이 될 이야기가 있을까요?
제가 회사를 그만둘 수 있게 용기를 줬던 분이 파트장님이셨어요. 30년 넘게 그 회사를 다녔던 분이고, 힘든 일도 많이 하셨는데요. 제가 퇴사 고민을 털어놓으니 “퇴사 후 하려는 게 네가 하고 싶은 일이야? 그럼 왜 안 해?”라고 물어보시더라고요. 좋은 커리어, 연봉, 이런 건 다 내버려 두고 지금 하는 일이 ‘내가 하고 싶은 일’인지 생각해 보면 그건 아니었어요. 그럼 심플하게 하고 싶은 일을 하면 된다고 결론을 내주셨어요.
제가 또 여긴 주변 사람들도 너무 좋은데 다른 곳에 가서 후회하지 않을지, 더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을지도 걱정이라고 이야기했더니 “나만큼 좋은 사람은 밖에도 널렸어.”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런 말을 하셨다는 게 진짜 좋은 분이라는 증거 같은데요.
근데 사실이었어요. 좋은 사람과 일하는 건 축복이 맞지만 좋은 사람은 또 어디에나 있어요.
그분의 말을 듣고 다니 드디어 ‘차가운 선택’이 가능해졌어요. “과연 벌이가 줄어들어도 잘 살 수 있을까?” 초봉은 줄어들 수 있지만, 스타트업에서 ‘나’로서 기억될 수 있는 일을 하기 시작하면 저를 협상 테이블에 올려놓을 수 있게 되잖아요. 합리적으로 나중엔 결국 돈을 더 잘 벌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예를 들자면 초원에서 길러지는 양이 아니라 야생에서 늑대를 씹어먹는 양이 될 수 있는 거죠.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일, 결과적으로 잘 살 수 있는 일을 차갑게 고민해보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대기업과 스타트업의 일하는 방식은 좋고 나쁨을 떠나 확실한 차이가 존재하는 것 같아요. 특히 일에 대한 욕심이 많은 분들은 스타트업에서 성취감을 찾기도 하고요.
혹시 스타트업을 고르는 광래님만의 기준이 있었나요?
기준이 분명히 있었어요. 제가 생각하는 좋은 스타트업의 기준은 세 가지였는데요. 우선 첫 번째는 투자를 받은 회사여야 한다는 것이었어요. 외부에서 보기에도 가치 상승이 기대되는 회사고, 또 투자받는 것 자체를 나쁘게 생각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회사여야 했어요. 두 번째는 직무가 진짜 특이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평소에도 그런 질문을 많이 들어요. ‘광고 회사가 아닌 일반 회사에서 카피라이터는 어떤 일을 하나요?’ 그러니까 제가 하는 일만 소개해도 제가 특이한 사람이 되는 데 성공한 거죠. 세 번째는 제가 의견을 쉽게 낼 수 있는 환경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회사는 평균 연령대가 낮고, 대부분 저와 비슷하거든요. 그러니까 편하게 의견을 낼 수 있는 분위기였던 것 같아요. 세 가지 기준을 따져보고 나니 이 회사를 재밌게 다닐 수 있었어요.
듣고 보니 갖고 계신 능력 자체가 뛰어나신 것 같은데요.
전혀 그렇지 않아요. 그리고 저는 사람 능력은 다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나 따위 론’이라고 부르는데요. 저따위는 지금 대단치 않은 존재지만, 그렇기 때문에 가능성을 믿고 조금이라도 움직이려고 해요. 박탈감을 느낄 시간도 없이, 투두리스트를 찾아 움직이는 거죠. 제가 능력이 좋아서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동시에 능력이 없어서 못하는 일도 없다고 생각해요. 잘하는 일과 못하는 일의 차이는 "재미"인 것 같아요. 내가 재미있다고 느낄 수 있다면 잘할 수 있고요. 못한다고 생각하는 일을 잘 들여다보면 사실 못하는 게 아니라 재미있는 포인트를 찾지 못한 거더라고요.
그래도 한 가지만 본인의 강점이라든지, 어필을 위한 포인트를 뽑아보자면요?
음 제가 그동안 인턴을 6개 했는데요. 많은 조직을 경험해봤다는 점이 강점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사실 자존심이 없다는 게 진짜 타고난 제 장점이에요. 기회가 되면 일을 가리지 않고 했던 것 같아요. 진자리 마른자리 가리지 않고···. 그렇게 여러 조직에서 많은 일을 하다 보니, 일이 다 똑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강제로 일에 대한 시야가 넓어진 거죠.
광래님이 계속해서 새로운 일을 하게 되는 원동력은 어떤 것인가요?
음 ‘반골기질’이라는 키워드가 가장 맞는 것 같아요. 저는 예전부터 남들과 똑같은 걸 싫어했어요. 정확히는 “남들이 다 하니까 나도 한다”라는 게 싫었거든요. 고등학교 때도 다들 문과를 가니까 저는 이과를 선택했어요. 또 이과에 오고 나니 다들 공대를 가니까 저는 제일 특이한 과를 고민하다가 의류학과로 왔어요. 오고 보니 다들 힙하게 입고 지디병에 걸려 있길래 저는 유니클로병에 걸려버렸죠. (모두 웃음) 또 졸업하고는 다들 섬유나 무역회사로 취직하길래 남들이 많이 안 하는 걸 하려고 처음엔 광고 쪽에 관심을 가졌고요. 반골기질이 세서 남들이 무조건 안 하는 거, 반대로만 갔는데 사실 지금은 그 정도까진 아니고요. 그래도 대세를 의심하고, 나와 맞는지 점검해보는 힘은 있는 것 같아요. 그러면서 새로운 일을 많이 하게 됐어요.
카피라이터기도 하시고, 글 쓰는 일은 원래 좋아하세요?
지금은 가장 좋아하는 일이 글쓰기라고 확실히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글쓰기를 새로 시작한 지는 1년 반 정도 되었어요. 그동안 100일 연속으로 글을 쓴 적도 있었어요. 그만큼 제 글을 쓰는 게 좋았거든요. 저는 27살까지 취미가 없어서 고민이었어요. 취향도 없고, 대단히 좋아하는 일도 없었던 것 같아요. 한때 광고에 관심을 가져보기도 했지만, 사실 광고를 좋아한 게 아니라 같이 하는 친구들의 반짝이는 눈이 좋았던 것 같아요."같이 일하다 보면 나도 눈에서 빛이 나겠지?" 생각했는데 그렇진 않더라고요.
그러다 힘든 시기가 찾아왔는데, 친구가 "일기라도 써봐"라고 해서 글을 쓰기 시작한 거였어요. 브런치에 글을 올리기 시작했는데, 생각지도 못하게 반응이 좋은 거예요. 조회수도 많이 나오고. (웃음) 물론 긍정적인 반응도 좋았지만,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드디어 취향이 생기고, 나에 대해 이해하기 시작했어요.
브런치에 취미로도 글을 쓰시고, 직업적으로도 글을 쓰고 계시는데요. '취미로 쓰는 글'과 '일로 쓰는 글' 사이의 시너지가 있다고 느껴지시나요?
엄청난 시너지가 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브런치에 주로 제 개인적인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를 쓰는데요. 감사하게도 가끔 주변에서 '보고 울었다'라는 말을 해주는 분들도 있지만, 제 개인적인 서사를 모르는 사람들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확실한 단점이 있거든요. 모두에게 대중적인 글은 아니에요. 반면 회사에서는 저를 지우고, 글로만 평가받다 보니 많은 부분을 배울 수 있었어요. 팔리는 글을 써야 하고, 다른 사람들의 지갑을 열 만큼의 가치가 있는 글을 써야 하다 보니까. 좋은 글에 대한 표준을 고민하게 된다고 할까요? 글을 쓸 때 저만의 개성을 가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개성을 사람들이 오해하지 않게, 올바르게 전달할 수 있는 기회를 지금 찾고 있는 것 같아요.
매번 새로운 글을 쓰는 일은 달리기 시작점에 서는 것 같기도 해요. 뭘 써야 될지 모르겠다든지, '백지의 공포'는 없으신가요?
저는 그런 건 별로 없는 것 같아요. 우선 수치심이 없어서요. "이건 일기 수준이야, 이걸로 어떻게 글을 쓰겠어"라고 생각할 법한 일도 저는 그냥 써요.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바로 써버려요. 글을 머리로 쓰는 게 아니라 손으로 쓴다는 생각도 하는데요. 예전에 대학내일에 에세이를 기고했는데, 그때도 정말 사소한 이야기였어요. 취준생 시절의 전화 통화, 턱걸이하다 힘든 경험, 이런 것들이요.
글이 되었든, 일이 되었든 시작에 대한 두려움은 수치심, 부끄러움 같은 것에서 온다고 생각해요. 밑바닥에 있어야 무언가 새로 시작할 수 있잖아요. 다시 밑바닥에 가기 위해 내려놓는 일을 부끄럽고 수치스럽게 여기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그런데 달려가는 사람들은 절대 시작할 수가 없어요. 시작이라는 건 반드시 '0'의 위치로 회귀해야 한다는 건데. 더 이상 아무것도 아니게 된 나를 받아들이고, 수치심을 이겨내는 게 '시작'에 있어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가진 걸 놓지 않으면 새로운 걸 잡을 수 없잖아요.
앞으로 또 새로운 일에 도전할 계획이 있으신가요?
올해부터는 뉴스레터와 유튜브를 시작할 계획이 있어요. 테마는 "말듣쓰"예요. 말하기, 듣기, 쓰기. 살아가는 데 이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을까요? 일을 하다 보면 가장 중요하다고 하는 '눈치'도 저는 제대로 말하고, 듣고, 쓰는 데서 온다고 생각해요.
그중에서도 솔직함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이 많아요. 제대로 솔직할 줄 아는 말하기, 듣기, 쓰기에 대해서요. 많은 사람들이 솔직함과 무례함을 종종 헷갈려하는 것 같아요. 솔직함이라는 귀중한 단어를 막말하는 사람들에게 붙이는 게 너무 싫었어요. 그래서 진정으로 솔직하게 말하고, 듣고, 쓰는 법에 대해 이야기하는 콘텐츠를 만들고 싶어요. 이건 제가 제일 재밌어하는 분야기도 하니까요.
솔직함은 광래님의 말과 글에 잘 드러나는 장점인 것 같아요.
마지막 질문입니다. 궁극적으로 이루고 싶은 꿈이 있나요?
저는 커뮤니케이션 전문가인 김창옥 교수님처럼 말하고, 글 쓰는 일의 전문가가 되고 싶어요. 제가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삶도 더 다채로워지고, 취향도 생겼던 것처럼 다들 글쓰기를 좋아하게 되면 좋겠어요. 거기에 조금이라도 기여하고 싶다는 꿈이 있어요. 카피라이터로 일을 하고, 꾸준히 글을 쓰는 것 모두 남들에게 글쓰기를 알릴 수 있는 당위성을 찾는 과정인 것 같아요.
말을 워낙 잘하셔서 유튜브도 기대됩니다. 시작하시면 꼭 보러 갈게요.
퇴사에서 글쓰기까지,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을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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