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바위는 망치로 깨지지 않는다

뇌과학으로 증명한, 완벽주의자를 위한 '게으른 시작'의 기술

by 하레온

똑, 하고 떨어지는 소리에 대하여


어두운 동굴 깊은 곳, 정적을 깨고 들려오는 소리가 있습니다. 똑. 그리고 잠시 후 다시, 똑.


그 소리는 너무나 미약해서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들리지조차 않습니다. 손바닥을 대면 금세 흩어져 버리고, 햇볕이 조금만 들어도 말라버릴 아주 작은 물방울입니다. 웅장한 폭포수처럼 압도적이지도 않고, 거세게 흐르는 강물처럼 역동적이지도 않습니다. 그저 중력에 이끌려 무심히 떨어지는, 보잘것없는 낙수일 뿐입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른 뒤 그 자리에는 기이한 풍경이 펼쳐집니다. 단단해서 절대 깨지지 않을 것 같던 바위 위에 움푹 파인 자국이 생겨납니다. 그 작은 물방울들이 수천 번, 수만 번 같은 자리를 두드린 결과입니다. 바위는 거대한 망치에 맞아 깨진 것이 아니라, 가장 부드러운 물에 의해 서서히, 그러나 확실하게 뚫렸습니다.


우리는 종종 자신의 시작이 이 물방울 같다고 생각하며 한탄합니다. 내가 가진 것이 너무 작아 보이고, 나의 하루가 너무 보잘것없어 보이기 때문입니다. 저 거대한 현실의 벽 앞에서 고작 책 한 페이지를 읽는 것, 고작 팔굽혀펴기 한 번을 하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의심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더 큰 망치를 찾으러 다닙니다. 한 번에 바위를 박살 낼 거창한 계획과 불타는 열정을 찾아 헤맵니다.


그러나 자연의 섭리는 우리에게 다른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멈추지만 않는다면, 부드러운 것이 강한 것을 이깁니다. 이 글은 그 조용한 승리에 대한 기록이자, 당신의 작은 시작을 위한 과학적인 변명입니다.




1부: 우리는 왜 멈춰 서는가

Image_fx (61).png 압도적인 크기의 회색 돌벽 앞에 서 있는 작은 사람의 실루엣을 통해 막막함을 표현한 이미지.


무언가를 시작하려 할 때, 우리는 가장 먼저 거대한 바위를 마주합니다. 그것은 이루고 싶은 꿈일 수도 있고, 해결해야 할 과제일 수도 있으며, 때로는 나를 둘러싼 냉혹한 현실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생각합니다. 저 바위를 깨려면 바위보다 더 강한 힘이 필요하다고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비장해집니다. 새해 첫날, 우리는 다이어리를 펴고 빼곡하게 계획을 채워 넣습니다.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겠다고, 하루에 두 시간씩 운동하겠다고, 퇴근 후에는 반드시 영어 공부를 하겠다고 다짐합니다. 마치 거대한 바위를 한 번에 내리칠 준비를 하는 사람처럼 어깨에 잔뜩 힘이 들어갑니다. 우리는 이것을 의지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그 뜨거운 의지가 자신을 구원해 줄 것이라 믿습니다.


하지만 슬프게도 그 결심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3일이 지나고 일주일이 지나면, 바위는 여전히 흠집 하나 없이 그대로인데 내 손에는 물집만 잡혀 있습니다. 피로감이 몰려옵니다. 어느 날 하루 계획을 지키지 못하면, 그 틈을 타 자기비난의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역시 나는 안 되는구나. 내 의지가 이것밖에 안 되는구나. 그렇게 우리는 망치를 내려놓고 다시 멈춰 섭니다.


우리가 멈추는 진짜 이유는 게을러서가 아닙니다. 역설적이게도 너무 잘하고 싶어서입니다. 완벽주의라는 환상 때문입니다. 완벽주의자는 100점이 아니면 0점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준비가 완벽하게 되지 않으면 시작조차 하지 않으려 합니다. 첫 문장이 완벽하게 떠오르지 않아 백지 앞에서 밤을 지새우는 작가처럼, 운동복이 마음에 들지 않아 헬스장에 가지 않는 사람처럼 말입니다.


우리는 실패가 두려워 시작을 유예합니다. 실패했다는 사실보다 더 두려운 것은, 내가 최선을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실패했을 때 마주해야 할 자신의 한계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차라리 시작하지 않음으로써 실패의 가능성을 원천 봉쇄합니다. 나는 아직 준비 중이야,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어라는 핑계 뒤에 숨어, 안전하지만 아무런 변화도 없는 동굴 속에 머무릅니다.


바위는 그 자리에 가만히 고정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변화하지 않는 현실이자 저항입니다. 반면 우리는 움직이는 존재입니다. 하지만 완벽이라는 거대한 바위 앞에서 압도된 나머지, 우리는 스스로 물방울이 되기를 거부하고 말라버린 웅덩이가 되기를 자처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2부: 의지가 아닌 과학으로

Image_fx (62).png 숲속의 오솔길처럼 연결되며 빛나는 뇌의 신경망을 몽환적으로 표현한 이미지.


이제 관점을 조금 바꿔보겠습니다. 당신이 작심삼일을 반복하는 것이 정말 당신의 정신력이 나약해서일까요? 뇌과학과 행동심리학은 전혀 다른 대답을 내놓습니다. 당신의 잘못이 아닙니다. 당신의 뇌가 지극히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을 뿐입니다.


인간의 뇌는 기본적으로 변화를 싫어합니다. 원시 시대부터 뇌의 제1 목표는 생존이었습니다. 생존을 위해서는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써야 하고, 예측 가능한 상태를 유지해야 합니다. 뇌에게 변화란 곧 불확실성이며, 불확실성은 곧 위험 신호입니다. 우리가 새로운 습관을 들이려 하거나 평소와 다른 행동을 하려 할 때, 뇌는 이를 비상사태로 인식합니다. 그리고 항상성이라는 강력한 방어기제를 작동시켜 우리를 다시 원래의 상태로 되돌려 놓으려 합니다.


당신이 오늘부터 매일 1시간씩 달리기를 하겠다고 결심했다고 가정해 봅시다. 뇌의 입장에서는 갑작스러운 에너지 소모와 패턴의 변화가 발생한 셈입니다. 뇌는 즉시 저항합니다. 오늘은 피곤하잖아, 내일부터 해도 늦지 않아, 무릎이 좀 아픈 것 같은데? 온갖 합리적인 핑계를 만들어 당신을 소파 위에 붙들어 둡니다. 이것은 당신이 게을러서가 아니라, 뇌가 당신을 보호하기 위해 보내는 신호입니다.


그러므로 의지력을 믿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의지력은 감정의 영역이 아니라 근육과 같은 에너지 자원입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옷을 고르고, 업무를 처리하고, 점심 메뉴를 고르는 동안 우리는 이미 의지력을 소모합니다. 저녁이 되면 의지력 배터리는 방전되기 마련입니다. 방전된 배터리로 거창한 계획을 실행하려 하니 당연히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믿어야 할 것은 의지가 아니라 뇌의 가소성입니다. 신경가소성은 뇌가 경험에 의해 끊임없이 변화한다는 이론입니다. 처음 가는 숲길은 잡초가 무성해 걷기 힘들지만, 매일 그 길을 오가면 잡초가 눕고 흙이 다져져 번듯한 오솔길이 생깁니다. 뇌 속의 뉴런 연결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 하는 행동은 막대한 에너지가 들지만, 반복하면 뉴런 사이에 전용 고속도로가 뚫려 나중에는 힘들이지 않고도 그 행동을 할 수 있게 됩니다.


이 오솔길을 만드는 과정에서 우리는 행동경제학의 마찰 비용 개념을 빌려올 필요가 있습니다. 행동을 방해하는 물리적, 심리적 장벽을 마찰이라고 합니다. 헬스장이 집에서 걸어서 20분 거리에 있다면, 그 20분이 마찰 비용입니다. 책을 읽고 싶은데 책이 책장에 꽂혀 있다면, 책을 꺼내러 가는 그 몇 걸음이 마찰 비용입니다.


우리는 의지력으로 이 마찰을 극복하려 하지만, 현명한 전략가는 마찰 자체를 줄입니다. 운동복을 입고 잠자리에 들거나, 헬스장을 집 앞 5분 거리로 등록하거나, 읽던 책을 펴서 식탁 위에 올려둡니다. 반대로 나쁜 습관에는 마찰을 늘립니다. 스마트폰을 서랍 깊숙이 넣어두거나, TV 리모컨의 건전지를 빼놓는 식입니다.


결국 핵심은 뇌를 속이는 것입니다. 뇌가 변화라고 눈치채지 못할 만큼 아주 작은 행동, 뇌의 위험 경보가 울리지 않을 만큼 사소한 시작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바로 이 글에서 말하는 물방울입니다.




3부: 마침내 바위를 뚫는 법

Image_fx (63).png 단단한 바위 표면에 물방울로 인해 생긴 매끄럽고 작은 홈을 클로즈업한 이미지


그렇다면 우리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물방울이 되어야 할까요? 그 방법은 시작을 미세한 동작으로 쪼개는 것입니다.


목표가 매일 30분 독서라면, 당신의 물방울은 책을 펼친다여야 합니다. 목표가 10kg 감량이라면, 당신의 물방울은 운동화 끈을 묶는다여야 합니다. 너무 시시해서 실패하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의 행동이어야 합니다. 팔굽혀펴기 1회, 영어 단어 1개 외우기, 글 한 줄 쓰기. 이 정도라면 아무리 지친 날에도, 아무리 의욕이 없는 날에도 할 수 있습니다.


이 미세한 행동은 뇌의 방어기제를 우회합니다. 뇌는 고작 1분도 안 걸리는 이 행동을 위협으로 간주하지 않습니다. 경계심을 푼 뇌는 자연스럽게 행동을 허락합니다. 그리고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일단 책을 펼치면 한 줄을 읽게 되고, 한 줄을 읽으면 한 페이지를 읽게 됩니다. 운동화 끈을 묶으면 문밖으로 나가게 됩니다. 시작의 마찰력만 이겨내면 관성의 법칙이 작용하여 행동은 자연스럽게 이어집니다.


이 과정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조급함입니다. 우리는 물방울을 떨어뜨리자마자 바위가 뚫리기를 기대합니다. 며칠 운동하고 거울을 보며 몸이 변하지 않았다고 실망합니다. 하지만 세상의 모든 변화는 비선형적입니다. 노력과 결과는 정비례하지 않습니다.


오랜 시간 동안 아무런 변화도 보이지 않는 구간, 우리는 이것을 정체기라고 부르며 좌절합니다. 하지만 이 구간은 멈춰 있는 시간이 아닙니다. 바위 내부에서 밀도가 무너지고 있는 잠복기입니다. 물방울이 바위 표면을 때릴 때,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지만 내부에서는 미세한 균열이 생기고 입자들의 결속력이 약해지고 있습니다.


정체기는 변화가 멈춘 시점이 아니라, 변화가 표면 위로 드러나기 직전의 전조 신호입니다. 99도까지 물은 끓지 않습니다. 겉보기에 1도의 물과 99도의 물은 똑같이 잠잠합니다. 하지만 1도가 더해져 100도가 되는 순간, 물은 질적인 변화를 일으키며 끓어오릅니다. 우리가 포기하고 싶은 그 순간이, 실은 99도에 도달한 순간일지도 모릅니다.


물방울이 모여 흐름이 되면 자기 효능감이라는 선물이 찾아옵니다. 거창한 목표를 달성했을 때가 아니라, 내가 나와의 작은 약속을 지켰을 때 우리는 스스로를 신뢰하게 됩니다. 오늘은 피곤했지만 그래도 운동화는 신었어라는 작은 성취감이 내일 또다시 물방울을 떨어뜨릴 힘이 됩니다. 이 흐름이 반복되면 뇌에는 튼튼한 신경 회로가 구축되고, 어느새 노력하지 않아도 저절로 그 일을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바위가 뚫리는 것은 바로 그때입니다.




에필로그: 구멍 난 바위를 바라보며


언젠가 당신은 바위에 난 작은 구멍을 마주하게 될 것입니다. 굉음을 내며 바위가 산산조각 나는 극적인 장면은 아닐지도 모릅니다. 그저 매일 똑, 똑, 떨어지던 물방울이 만들어낸 조용하고 깊은 흔적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 작은 구멍은 어떤 폭발보다 강력한 증거입니다. 당신이 멈추지 않았다는 증거, 당신의 작은 반복이 거대한 저항을 이겨냈다는 증거, 그리고 부드러움이 결국 단단함을 이긴다는 자연의 법칙에 대한 증거입니다.


그 구멍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면, 이전과는 다른 풍경이 보일 것입니다. 더 이상 거대한 목표가 두렵지 않을 것입니다. 아무리 큰 바위라도 끊임없이 두드리면 결국 길을 내어준다는 사실을 뼛속 깊이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당신 앞에 놓인 바위가 무엇이든, 부디 망치를 들지 마십시오. 대신 당신만의 물방울을 준비하십시오. 그리고 그저 오늘 떨어뜨려야 할 그 한 방울을 툭, 하고 떨어뜨리십시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 같은 지루한 밤이 지나고 나면, 어느새 빛이 새어 들어오는 구멍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멈추지만 않으면, 반드시 뚫립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