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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리 May 18. 2024

006. 나의 닝구일지

아프지 마 닝구

고장 (故障) : 기구나 기계가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게 되는 기능상의 장애.

닝구가 고장 났다.

우선 닝구에 대해 소개해야겠다.


닝구는 나의 작고 귀여운 차다. 모닝인데 촌놈이라서 닝구라고 부르기로 했다. 사실 닝구는 내 동생 차였다. 동생이 몇 년간 일해서 번 돈으로 산 첫 차였다. 무려 현금박치기!! 나는 걸어서 출퇴근을 했기 때문에 차가 필요 없었고 장롱면허여서 운전에 대한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닝구가 내 차가 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그러다 동생이 결혼을 하면서 대전을 떠나게 되었고 닝구는 나와 또 다른 동생의 차가 되었다. 동생은 닝구를 쿨하게 그냥 주고 갔다.

면허를 딴지 7년 만에 운전을 시작했다. 닝구는 나와 동생이 필요할 때마다 번갈아가면서 타게 되었다. 그러다 또 다른 동생마저 결혼을 하면서 닝구는 온전히 나의 차가 되었다.

우리 닝구 시집보내주는 차니...? (아니요.)

이제 닝구는 내 차다. 닝구는 내가 타자마자 세 번이나 사고가 났던(아니, 나는 시집 말고 사고를 주는 거니...?) 차다. 처음에는 우회전하는데 어느새 왼쪽에 차가 나타났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분이 날 못 보고 건너편 주차장에서 나온 거 같다. 나는 첫 사고라 너무 놀란 나머지 제대로 확인도 못하고 보험처리를 했다. 상대차주가 보험회사 놈이랑 차 안에서 블랙박스 확인하고 소곤소곤할 때 눈치챘어야 했는데!! 어쨌든 그러고 나서  2주 후 또 사고가 났다. 수업 가는 길이 너무 바쁜 나머지 다음 신호등을 착각하고 빨간 불에 그대로 달려버렸다. 삼거리였는데 이번에도 왼쪽이 찌그러졌다. 이번에는 신호위반이라 군소리 없이 100%로 끝냈다. 이 사고로 아빠는 보험회사와 나에게 난리를 쳤고 우리 사이는 멀어졌다.(멀어질 것도 없이 이미 멀었다.) 그리고 다시 2주 후, 이번에는 가만히 있었을 뿐이다. 사거리에서 신호를 기다리며 얌전히 있었단 말이다. 그런데 쿵! 이번엔 뒤에서 박았다. 그나마 다행이다. 이번엔 그쪽이 100%다.


불쌍한 닝구, 주인이 바뀌자마자 폭삭 늙고 말았다.
동생은(첫 주인) 운전을 무서워해서 출퇴근과 본가에 가는 일 말고는 장거리 운전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달랐다. 세 번이나 사고가 났음에도 운전에 대한 두려움이 없었다. 나에겐 기동력이 생겼다는 사실이 더 큰 기쁨이었다. 닝구 덕분에 광주에서 결혼하는 언니 결혼식에도 달려갈 수 있었다.(서울은 못 감) 그 길을 시작으로 장거리에 대한 부담까지 사라졌으니 신나게 쏘다닐 수 있었다. 일을 그만두고 나서 정말 많이 다녔는데 닝구가 없었다면 그 힘들었던 시간을 버틸 수 없었을 것이다.(5일 차 참고)

요즘 닝구를 타고 다니다 보면 닝구가 정말 늙었다는 걸 새삼 느낀다. 닝구가 속도를 내야 할 때 부스터를 달아야 하나 싶게 시간이 오래 걸린다. 방지턱을 넘을 때 꿀렁거리는 것이 삐걱대고 있다. 작년에 아는 친구 어머니가 자동차 쪽 일을 하셔서 차를 봐주셨는데 상태가 처참했다. 3년 사이에 주말마다 산이며 바다며 많이도 다녔다. 작년엔 바다에 빠져서 정말 매주마다 바다를 갔었다. 그만큼 힘들었고 그만큼 좋았던 날들이었다. 나에게 기운을 불어넣어 준 만큼 닝구는 늙어가고 있었다.

닝구를 병원에 데려가 엔진오일도 갈아주고 망가진 트렁크도 고쳐주고 타이어도 봐줬다. 닝구 덕분에 좋은 곳에 많이 다녔는데 닝구를 아까지 않고 험하게 탔다. 이제 고장 나서 망가지면 끝이다. 그 사실을 잊고 있었다. 고물이 되어버린 닝구가 오래오래 버텨주면 좋겠다.


이제 잘 챙겨줄게,

닝구야. 힘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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