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리 May 25. 2024

012. 휴일의 여유

엔학고레와 온빛자연휴양림

여유

1. 물질적ㆍ공간적ㆍ시간적으로 넉넉하여 남음이 있는 상태.

2. 느긋하고 차분하게 생각하거나 행동하는 마음의 상태. 또는 대범하고 너그럽게 일을 처리하는 마음의 상태.


쉬는 날이라 오랜만에 친구 K를 만났다. 동학사에 가서 밥을 먹고 엔학고레라는 카페에 갔다. 엔학고레는 오래전 알쓸신잡이라는 예능프로에 나오며 유명해지기 시작했는데 그 당시에는 고깃집이었다가 현재는 카페로 운영 중이다. K는 엔학고레가 처음이라고 해서 이번에 같이 가보기로 했다. 엔학고레는 사계절이 다 아름다운 곳이지만 숲 속에 있는 카페라 너무 덥지 않은 지금이 딱 예쁜 곳이다.



엔학고레에 도착하니 저수지가 보이는 야외 테이블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초록의 큰 나무들과 초록빛 저수지에 눈이 시원해지는 느낌이다. 햇빛을 뜨거웠지만 바람이 살랑살랑 불었다. K와 나는 더위를 많이 타는 편이라 실내로 들어갔다. 시그니처 커피와 아메리카노를 주문하고 2층으로 올라갔다. 2층에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오히려 사람이 없는 편이 더 좋았다. 게다가 시원하기까지 하니 딱 좋구나. 2층은 통창으로 되어 있어서 야외테이블에 앉아 있는 것만 같았다. K와 나란히 앉아 바깥 풍경을 바라보니 마음이 평온해졌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와 잔잔한 물결, 소란스럽지 않고 조용히 대화하는 사람들. 아. 이걸 원했다. 온전한 쉼. 오롯이 느낄 수 있는 여유.



이번 주 내내 너무 시달렸다. 일은 바빴고 사람들은 부산스러웠으며 짜증이 자꾸만 밀려왔다. 지난 주말에 좋아하는 사람들도 만나고 바다도 보고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는데 어째서 월요일 하루 만에 그 여유가 금세 사라져 버리는 걸까.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고 싶었는데 먹고살아야 하니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일이어서일까. 일하기 싫은 자의 한탄이겠지. 일해야 할 시간에 일하지 않고 쉬는 이 시간이 더없이 편안하고 좋았다. K는 일이 있어서 돌아가야 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게 아쉬웠던 나는 K를 데려다주고  온빛자연휴양림으로 향했다.



온빛자연휴양림은 2년에 다녀왔는데 온통 초록인 데다 사람이 거의 없어서 오래오래 머물다 왔던 곳이다. 입장료도 없고 특별히 관리를 열심히 하는 것 같지 않았다. 그래서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라 더 좋았던 곳이었다. 이제는 드라마촬영지로 알려지고 인스타그램에도 자주 노출되다 보니 주말에는 줄을 서서 사진을 찍는 곳이 되었다고 한다. 오늘은 평일이니 주말보다 낫겠지라는 마음으로 갔다. 전보다 사람들이 있었지만 여전히 한갓지다. 조용히 산책하는 사람들 몇몇이 보였다. 오랜만에 다시 간 온빛은 여전히 아름다웠다. 메타세쿼이아나무는 더 많이 자랐다.


엔학고레에서 K와 함께 평온한 시간을 보냈다면 이곳에서는 오롯이 나 혼자다. 나 혼자 걸으며 바람소리, 새소리, 물소리를 듣는다. 늦은 오후가 그늘진 곳의 초록이 짙어졌다. 고요하고 한적한 숲 속을 천천히 걸었다. 사람들은 유명한 사진포인트 근처에 머물렀기 때문에 숲 속으로 들어가는 길에는 사람도 없다. 높고 커다란 나무아래 그늘 사이로 빛이 내려오고 바람에 나무가 흔들린다. 고요한 숲 속에서의 시간.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고 안정을 가져다주는 색이 파란색과 초록색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렇게 바다가 보고 싶고 숲이, 나무가 보고 싶었나 보다. 사람에게 치이고 사람 때문에 괴로운 시간에서 벗어나기 위해 걷고 또 걸었던 그때도 그랬다. 나는 숲을, 꽃밭을, 바다를 그렇게도 보러 다녔다. 사람이 아닌 자연에서 위로받았던 시간이었다. 여전히 나는 초록과 파랑을 찾는다. 계절을 이렇게 어김없이 흐르고 나는 쏟아지는 초록을 온몸으로 껴안는다. 마음으로 흘러가겠지. 아름다운 계절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011. 탈락했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