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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리 May 25. 2024

013. 아빠의 연애편지

연애편지 : 연애하는 남녀 사이에 주고받는 애정의 편지.


아빠의 연애편지를 발견했다. 엄마의 오래된 물건들 사이에서 연애편지가 나왔다고 했다. 엄마는 우리들에게 연애편지를 보여줬다.


사랑하는, 으로 시작하는 연애편지. 오래된 흔적이 남아 빛이 바랬고 그때 그 마음마저 바래버린 그 편지를 읽었다. 편지 안에 가득한 사랑과 그리움의 문장들이 낯설었다. 퍽퍽한 서울살이의 외로움과 청춘의 방황이 그대로 드러난 그 시절의 아빠가 다른 사람 같았다. 우리는 깔깔거리며 편지를 읽으며 애틋했던 연애시절의 마음을 보았다. 그 편지가 너무 비현실적이어서 우리 셋은 웃으면서도 슬펐다.


벌써 40년도 전이다. 그 시절의 애틋하고 절절했던 그 사랑은 어디로 가버렸을까. 사랑은 시간이 흐르면서 사라지는 것일까. 아니면 사랑은 여전히 있는데 우리가 그것을 보지 못하게 되는 걸까.


나는 내가 엄마를 닮아서 책을 좋아하고 글을 쓴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아빠의 편지를 읽고 나니 나는 아빠를 닮았다. 아빠의 연애편지는 시였다. 사랑하는 연인과 떨어져 있는 시간 동안 사랑을 마음껏 표현하고 연인을 그리워하고 삶의 괴로움을 풀어낸 시가 거기에 있었다. 나는 그 사실이 못내 슬프고 씁쓸하다. 내가 아는 아빠는 사랑을 표현하지도, 다정하고 애틋한 말을 하지도 않는 사람이다. 가난하고 보잘것없던 젊은 날의 아빠는 시 같은 연애편지를 쓰던 사람이었는데 40년이 흐른 지금 늙어버린 아빠는 그 시절을 다 잊었을까.


너무 젊었던 엄마와 아빠의 사랑은 나를 결실로 이루어졌다. 나는 내가 없었다면 엄마가 더 나은 인생을 살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자랐다. 그래서 사랑이 없다고 믿으면서도 사랑을 갈구하는 미성숙한 어른이 되어버렸다. 나에게 아빠는 너무 먼 사람이었는데 오늘은 더 멀게만 느껴진다. 아빠는 나에게 늘 상처이자 슬픔이다. 언젠가 아빠에 대한 나의 마음을 쓸 수 있는 날이 올까. 글을 쓴다는 게 오늘은 참 서글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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