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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리 May 27. 2024

014. 갖추갖추

오. 발. 단(오늘 발견한 단어) 오은시인 북토크

갖추갖추

: 부사 여럿이 모두 있는 대로.


5월 26일. 오은 시인의 생일이다.

오은 시인이 버찌책방에서 북토크 겸 생일파티를 한다고 했다. 조금 지쳤던 나는 이번 주는 쉬기로 마음먹었는데 친구 K에게 연락이 왔다. 북토크에 같이 가기로 했던 친구가 못 가게 됐다며 같이 가자고 했다. 작년에도 오은 시인의 북토크에 가려다 다른 곳으로 샌 적이 있었는데 이렇게 만나게 되는구나.



오은 시인이 말을 잘하고 재미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실제로 만나보니 더 말을 잘하고 더 재미있었다. 시인은 빅데이터회사에 3년 정도 다니다 퇴사한 후 말하는 사람으로 살았다고 했다. 기업, 학교, 기관에서 많은 강연을 했고 YES24 팟캐스트인 책읽아웃을 7년 정도 진행하면서 말을 정말 많이 했다고. 말을 많이 하면 좋은 점은 말은 할수록 는다는 사실이고 단점은 말을 많이 하면 글을 못 쓴다며 말과 글은 총량이 있는 것 같다고(뭐 그런 식인데 정확한 워딩이 기억나지 않는다ㅠㅠ) 했다. 말을 잘한다는 것은 잘 듣는 것이라는 말이 기억에 남는다. 시인의 말처럼 질의응답이 아니라 상대방의 말을 잘 들어야 다음 말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 그것이 대화의 기술이자 말을 잘하는 사람의 스킬인 것 같다.


지난 김현시인의 북토크에서 나온 단어채집. 나의 매일글쓰기의 콘셉트가 된 단어채집은 오은 시인에게서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왔다. 평소에 메모를 많이 한다며 자신의 휴대폰을 보여주었는데(어머, 이게 뭐야? 하며 읽어주는데 웃겼다.) 그렇게 일상에서 훈련해야 한다고 했다. 우리는 말을 할 때 구체적이고 정확하게 표현하지 않는다. 마음 상태를 구체적이고 정확하게 표현하는 연습이 필요하다. 감정이 납작해지지 않게 꾸준히 연습해야 한다고. 메모를 통해 쓸거리를 마련하고 씨앗을 만든다는 시인. 백지보다는 단어 하나라도 메모해 둔 것이 있으면 쓰는 시간이 든든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시인들을 만나고 나면 쓴다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오은 시인이  쓰는 것에 대해 말하길 쓰기 위해서는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혼자 있을 때가 시가 영글어가는 시간이라며 글을 쓰려면 반드시 필요하다는 말에 내가 혼자가 끙끙대며 글을 쓰는 시간을 생각했다. 시는 아니어도 나의 글도 조금은 영글어가고 있을까.


시라는 것은 어렵고 글을 쓴다는 것도 어렵다. 어렵다고 생각하면 더 어렵겠지만 어렵다는 생각을 떨치기 어렵다. 그럴 때마다 내가 이해하고 생각하는 것이 틀리더라도 괜찮다는 마음으로 시를 읽곤 했다. 오은 시인도 시를 읽을 때 완전히 파악해야겠다는 생각을 버리라고 했다. 우리는 상대를 오해하면서 살아가고 있다고, 누군가를 완벽하게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이다. 나는 시를 쓴 시인이 아니고, 상대는 내가 아니니 전부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내가 시를 읽고 시를 느끼는 것이 오해와 오독이더라도 잘하고 있구나 싶어서 마음이 편안해진다. 시인은 또 말했다. 시를 잘 읽고 싶으면 시인을 만나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이런 북토크에서 시인을 만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시인의 시를 좀 더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시인 역시 같은 생각이구나.


독자 중 한 명이 <초록을 입고> 안에 오. 발. 단(오늘 발견한 단어)처럼 오늘 발견한 부사를 이야기해 달라고 했다. 5월 3일 내용이 부사의 운명이라 부사를 물어본 것이다. 시인의 '갖추갖추'라는 부사를 알려주었다. 처음 듣는 부사였다. 부사를 생각하면 고명재 시인이 생각나는데 시인들은 부사를 좋아하나 보다. (나도 부사를 좋아해)


갖추갖추


조용히 갖추갖추를 발음해 보았다. 갖추갖추란 '여럿이 모두 있는 대로'라는 뜻의 부사이다. 오늘 시인의 생일을 맞이하여 북토크에 온 독자 두 명 케이크를 사들고 왔다. 책방지기도 케이크를 준비했다. 오은 시인을 위해 깜짝 방문한 양안다 시인의 손에도 케이크가??? 오은 시인과 함께 온 난다편집자인 유성원 차장님까지 케이크를 사와서 케이크는 다섯 개가 되었다. 오은이라 다섯이라는 시인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언어유희의 천재 오은 시인의 말장난은 북토크 내내 이어져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다섯 개의 케이크를 앞에 두고 생일을 축하하는 노래를 불렀다. 여럿이 모두 있는 대로 함께하는 이 자리. 함께해서 즐거웠다. 20명이 넘는 사람들의 마음이 갖추갖추 모였다.



북토크가 끝나갈 무렵,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모두에게 갖추갖추 마음의 선물이 내렸을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난다의 굿즈티셔츠를 선물로 받았다.

**갖추갖추를 이렇게 쓰는 게 맞는지도 모르겠다.


유성원차장님이 준비한 난다티셔츠!

감사합니다!

드레스코드는 초록!

온통 초록으로 준비했다:)



감사합니다 시인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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