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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리 May 27. 2024

015. 언젠가는 아물겠지

상처

1. 몸을 다쳐서 부상을 입은 자리.

2. 피해를 입은 흔적.


얼마 전 사무실이 리모델링을 해서 한참 분주했다. 컴퓨터를 전부 옮겼다가 다시 책상으로 가져와 연결해야 했다. 나는 큰 무리 없이 바로 연결해서 자리를 정리했는데 초코파이는 아침부터 몸이 안 좋아 정리가 더뎠다. 컴퓨터 본체는 책상 앞에 나와 있었고 모니터는 연결 어댑터를 잃어버려 연결하지 못했다. 일은 내 컴퓨터로 해야 했고 사람이 오면 초코파이 자리에 가서 응대를 해야 했다. 어수선한 분위기에 정리되지 못한 책상, 나는 서류를 받으러 가다가 컴퓨터 본체에 정강이를 부딪히고 말았다. 악소리가 절로 나왔고 정강이뼈 아릿했다. 정신없이 하루가 가고 집에 돌아와 샤워를 하는데 정강이가 찌릿했다. 그제야 제대로 살펴보니 본체에 찍힌 건지 빨갛게 부어있고 살갗이 벗겨져 있었다. 찢어지거나 피가 흐르지는 않았다. 멍이 들겠구나, 그 정도였다. 밴드대신 메디폼을 붙여두었다. 벌써 일주일이 지났다. 상처부위는 진물이 났고 붉게 색소침착이 생겼으며 자꾸만 간지러웠다. 그때마다 짜증이 났고 제대로 정리하지 않은 초코파이를 탓했다. 사실 나의 부주의로 일어난 일임에도 남 탓을 하고야 만다.


몸에 난 작은 상처에도 이렇게 신경 쓰이고 감정의 동요가 일어나는데 마음의 상처는 오죽할까. 어제 오은 시인의 북토크에서 들었던 말을 생각한다. 나는 상대가 아니다. 나는 상대를 완벽히 이해할 수 없다. 상대의 큰 상처보다 나의 티눈 같은 작은 상처에 더 민감한 것이 사람이 마음일 것이다. 나의 상처보다 상대의 상처를 더 깊이 정확하게 느끼고 이해할 수는 없다. 그것이 진실이라는 것이 서글프다. 그러나 나는 그것이 진실이라 할지라도 누군가의 상처와 아픔을 이해하는 사람이고 싶었다. 그래서 서글퍼지는 게 아닐까.


나는 나의 상처, 아픔, 슬픔에 빠져 내 곁에 있는 사람을 잘 보지 못했다. 나의 정강이를 바라보며 오늘도 서글퍼진다. 나도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었을 것이다. 내 상처가 큰 만큼 상대의 상처도 컸겠지. 이제와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냐만은 지나간 나의 사람들에게 나의 미숙하고 어렸던 마음을 전한다.


너도 아팠겠구나.

너는 아프지 않고 나만 아팠겠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내가 아파서 너를 보지 못했어.

지금의 내가 그때의 나와 얼마나 달라졌을지는 알 수 없지만

나의 상처의 크기와 너의 상처의 크기를 재단하는 일은 하지 않을 거야.

누구의 잘못인지 누가 더 힘든지를 따지지 않을 거야.

내가 얼마나 아팠는지 이해시키기 위해 마음만 풀어내지는 않을 거야.


상처 앞에 굳건한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나의 정강이 상처가 서서히 아물어가는 것처럼 마음의 상처도 아물어가기를 천천히 기다릴 뿐이다. 누구의 탓도 하지 않고 상처를 더 후벼 파지도 않고 그저 흐르는 대로 천천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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