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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리 Jun 02. 2024

020. 나의 엄마

결핍은 결핍을 낳고

서글프다 

1. 쓸쓸하고 외로워 슬프다.

2. 섭섭하고 언짢다.


<엄마의 마른 등을 만질 때>라는 책을 읽고 엄마를 생각했다. 암에 걸린 엄마를 간병하는 아들의 간병일기이자 엄마에 대한 사랑을 담은 책이었다. 이런 책을 읽으면 눈물이 나고 마음이 아프다. 누군가의 죽음은 나와 관계가 없는 사람이어도 슬프게 다가온다. 가족을 잃는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슬픈 일이고 투병과정 역시 슬프고 고통스러운 일일 것이다.


15년 전쯤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할머니는 폐암으로 투병생활을 1년 정도 하다가 돌아가셨는데 그때 간병을 엄마가 도맡아서 했다. 할머니는 처음 진단받았을 때는 가족들이 알리지 않아서  몇 개월이 지난 후 상태가 악화되었을 때 자신이 폐암말기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때 알았다. 사람이 희망을 빼앗기면 순식간에 늙어버린다는 것을. 사실을 몰랐을 때 할머니는 그래도 생기가 있었다. 그러나 자신이 곧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나니 내가 알던 할머니의 모습이 아니라 영혼이 사라진 것만 같은 껍데기가 되어 있었다. 그 모습은 여전히 생경하게 남아있다.


할머니의 투병기간 동안 엄마와 나, 동생들이 간병을 했다. 주로 엄마가 간병을 했고 우리는 하루이틀 정도 병실을 지키는 정도였다. 아빠는 한 번도 병원에서 잔 적이 없었다. 자식이 여섯이었는데 그중 간병을 했던 건 둘째아들뿐이었다. 함께 평생을 살았던 둘째 아들 역시 며칠뿐이었다. 그래서 작가의 애틋하고 다정한 글들이 낯설고 어딘가 불편했다. 자식이 아프면, 부모가 아프면 누구나 다 슬프고 고통스러울 것이라는 사실은 변함없겠지만 그 정도의 차이는 너무도 크다는 것을 나는 할머니의 투병생활에서 느꼈다.


엄마는 암에 걸린 것은 아니지만 몇 번의 수술이 있었다. 엄마가 아프면 눈물이 먼저 났다. 엄마의 고단한 삶이 안쓰럽고 매번 엄마만 아픈 현실이 슬펐다. 엄마는 어린 나이에 결혼을 했고 나를 임신하는 바람에 신혼도 없이 육아전쟁이 시작됐다. 엄마에게 나는 짐이었다. 내가 아니었다면 엄마의 삶이 달라졌을 거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엄마는 아기를 키우기에는 너무 어렸고 아빠는 동생이 태어나고 얼마 되지 않아 원앙어선을 탔다.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는 길이었다.(엄마는 돌아오지 못할 거라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고 한다.) 열악한 상황이기도 했지만 엄마는 무척 예민하고 감정적이었으며 살갑지 않았다. 나는 어릴 때부터 엄마의 기분을 살펴야 했고 눈치를 보며 엄마를 관찰하기에 이르렀다. 엄마는 애정을 표현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엄마는 거슬리는 게 많은 사람이었다. 엄마는 기분에 따라 많은 것이 바뀌는 사람이었다. 나는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몰랐다. 나는 엄마의 힘들었던 시절보다 나의 어린 시절이 더 불쌍하고 안쓰럽다. 엄마는 어른이고 나는 아이였기 때문이다. 나는 어릴 때 결혼을 하지 않을 것이고 하더라도 아이는 낳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결핍 있는 인간이 제대로 된 가정을 꾸릴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엄마는 지난날을 잘 기억하지 못했다. 아니, 인정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러니 묻어둘 수밖에 없다.


엄마는 나에게 애증이 대상이다. 엄마가 아프다면 나는 간병을 할 것이다. 엄마가 죽는다면 무척 슬플 것이다. 하지만 그뿐이다. 엄마에 대한 나의 마음은 책임이자 의무이지 사랑이 앞서지 않는다. 내가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냉정하고 못된 것임을 안다. 나는 너무 서러워서 엄마의 사랑을 보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이 있었음을 넘치게 느끼게 싶었다. 보이지 않는 사랑이 있다고 믿고 싶은 내가 있다. 그러나 그것은 믿고 싶은 것이지 없는 것이라고 체념해 버리는 내가 있다. 나는 그 사실이 너무 서글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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