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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리 Jun 03. 2024

021. 끄적끄적

알 수 없는 마음들

끄적이다 : 글씨나 그림 따위를 대충 쓰거나 그리다.


가만히 가만히 바라본다. 당신은 자고 있다. 나는 늘 이 시간이 꿈같다. 바람이 세차게도 분다. 저 멀리 바다가 보인다. 바다는 어쩌자고 이렇게 푸른가. 어쩌자고 이리도 드넓은가. 밀려오는 물결이 바라본다. 바다가 있으면 우리는 평온하다. 칠흑같이 어두운 밤바다가 당신의 끝 모를 불안을 붙들고 평온한 것도 잠시 밤을 지새우고 삶은 왜 이다지도 무력하게 다가오는 것일까.  아무 말이나 끄적이는 지금. 나는 당신의 우울의 바다라도 함께 빠져 죽겠다. 우리가 함께 깊은 바다로 가라앉는대도 그곳이 바다라면 괜찮겠다. 아니, 거짓이다. 나는 겁쟁이니까. 마음은 언제나 흔들리고 그 옛날 아침의 바다를 떠올린다. 그저 복기하는 것이다. 가만히 가만히 생각에 잠기면 과거의 늪으로 빨려 들어간다. 지금 이 순간만 생각하고 싶다. 후회나 미움, 원망 같은 건 애초에 없었다는 듯이. 뒤돌아보는 건 그만하자. 눈앞에 바다가 있잖아. 지금 이 시간이 너무 편안하니까. 바람이 차갑다. 실없이 웃는 것도 좋다. 이런 시간에는 불안도 두려움도 슬픔도 잠시 숨어있는다. 다시 혼자가 되면, 밤이 오면 슬그머니 찾아오겠지. 글을 쓴다는 것은 마음을 쓰는 거라고 오은시인이 말했다. 마음을 쓰는 건 어려워. 나도 내 마음을 잘 모르겠거든. 책을 읽다 말고 낙서하듯 끄적인다. 바다에 대한 시를 쓰고 싶었다. 지치고 괴로운 순간마다 바다를 떠올렸으니까. 어쩜 이렇게 진부하고 낡은 표현들만 생각나는 걸까. 오늘은 아무 생각이 없다. 내게 보이는 것은 바다와 당신뿐. 여전히 바람이 분다. 마음이 시리게. 불현듯 폭설이 내리던 그 밤을 떠올린다. 폭설이 내려서 마음도 내려앉았나. 까마득한 기억이다.  당신이 물었다. 이런 얘기를 하면 짜증 나? 아니, 나는 쓸쓸해. 그리고 슬퍼. 입안에 맴도는 말은 삼킨다. 행복하고 싶다던 당신의 행복은 어디에 있을까. 나는  언제까지 이럴 수 있을까. 언제까지. 입이 쓰다. 어둠 속을 달리며 오늘도 슬펐다. 이 시간만은 막막한 바다 같다. 평온했던 바다가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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