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에 있어." 이렇게 말해줄 한 사람이 필요했다. 각자의 방에서 혼자의 고독을 지키다가도 때가 되면 농담을 나눌 한 사람이 있었으면 했다. 익숙해지지 않는 외로움이 하나도 사라지지 않는다 해도. 그걸 매달고 가볍게 걸을 수 있을 것 같았다. p.33
<잘 지내기를 바라는 마음, 김미현>
당신이 잘 지내기를 바랐다. 나와 함께. 내가 외롭고 힘든 시간을 보냈던 그 마음이 당신의 마음과 다를 수 있겠지만 당신에게 드리운 그 슬픔이, 불안이, 괴로움이 사라지게 할 수는 없을지라도 깊은 바닥에서 같이 앉아 있더라도 외롭지 않게 곁에 있어주고 싶었다. 당신의 마음에 슬픔만이 있는 것은 아니라고, 질퍽이는 슬픔의 바닥을 함께라는 힘으로 단단하게 만들어주고 싶었다. 더 나아가 함께 행복할 수도 있겠다 기대했다. 당신은 당신의 바닥에서, 나는 나의 바닥에서 허우적댔다. 함께 있는 줄 알았더니 우리는 각자의 바닥에 있었던 것 같다. 내가 함께 있겠다 해놓고 빠져나와버린 탓이겠지. 겁도 없이 마음껏 기대하게 만들고 마음 하나 제대로 품어주지 못한 탓이다.
당신이 여전히 잘 지내기를 바란다. 나와 함께가 아니더라도. 아프지 않고, 잘 먹고, 잘 살았으면 좋겠다. 옆에 있지 못해도 뒤에 여전히 있다고. 그래서 당신이 주저앉아 바닥에 처박히지 않게 뒤에서 받쳐줄 수 있을 거라고. 홀로 걷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뒤돌아보니 나를 봐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다면 그래도 좀 덜 외롭지 않을까. 나의 등은 조금 시릴지라도. 당신의 등을 바라보면서.
어쩌면 지긋지긋한 집착. 애매모호한 손길. 상처받지 않기 위한 안전장치. 막막한 바다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막막한 바다. 흑백의 숲. 가둔 건 나 자신이면서 갇혔다고 하지. 그곳에서 나오지도 않으면서 당신이 잘 지내기를 바라는 게 가당키나 한가? 나도, 당신도 잘 지내기를 바라는 마음. 나아가고 싶다고 하면서 금세 두려워하는 마음. 궤변만 늘어놓는 내가 유난히 우습고 초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