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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리 Jun 04. 2024

023. 독서가보다 책수집가

책치레

책치레

1. 책을 단장하여 꾸밈. 또는 그런 치레.

2. 집 안이나 방 안에 책을 많이 갖추어 치레하는 일.



오늘 발견한 단어는 '책치레'다. "책을 단장하여 꾸밈. 또는 그런 치레" "집안이나 방 안에 책을 많이 갖추어 치레하는 일"을 가리키는 말이다. 바닥에 수북이 쌓인 책들을 보니 책을 단장하여 꾸미는 게 가능한 일인지 자문하게 된다. 그리고 집안이나 방안에 책을 많이 갖추는 게 '치레'가 될 수 있는지 의구심이 인다. 말치레, 인사치레, 체면치레 등 치레는 들키게 마련인데 책치레라고 해서 다를 게 있을까. 책이 많다는 사실은 책을 많이 읽었다는 것을 증명하지 못한다. 책을 많이 읽을 수도 있음을 넌지시 보여줄 뿐. 아, 바로 그 이유로 책치레가 가능한 것이로구나! p.215

<초록을 입고, 오은>


책치레. 오늘 책을 읽다가 마음에 훅 들어온 단어이다. 나는 책이 매우 많다. 책을 좋아하고 책을 읽는 것도 좋아하고 책을 사는 것도 좋아하고 책을 읽고 필사하는 것도 좋아한다. 책을 읽고 서평을 쓰는 것은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오래 기억하고 싶고 서평을 쓰면 글을 쓰는 연습이 되기도 해서 꾸준히 쓰려고 하는 편이다. 


그렇다면 내가 가지고 있는 책을 거의 다 읽었을까. 아니다. 가지고 있는 책의 절반은 읽지 않은 책이다. 지금 사는 집으로 이사오기 전에는 알라딘 중고서점이 가까워서 책을 중고로 많이 팔았기 때문에 실제로는 책이 더 많았을 것이다. 오은 시인의 문장을 읽으면서 뜨끔했다. 책이 많다고 해서 책을 많이 읽은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책을 인테리어용으로 두기도 한다는데 그 정도로 읽지 않은 것은 아니라 죄책감은 덜하다고 해야 할까.


나는 나를 독서가라기보다는 책수집가라고 해야 맞는 게 아닐까 종종 생각하곤 했다. 갖고 싶은 책은 많고 읽고 싶은 책도 많고 읽지 않아도 가지고 있어야 할 것만 같은 책도 많다. 도서정가제가 도입되기 전에는 정말 함부로 책을 샀다. 정말 함부로. 싸다는 이유로 또는 작은 호기심에도 책을 마구 사들였다. 도서정가제는 나의 책구매욕을 조금 떨어뜨리기는 했지만 오래가진 못했다. 집에 책이 산더미처럼 쌓여있으니 말이다. 책을 좋아하는데 책을 온전히 소화할 자신이 없는 책이 많다.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은 소장가치가 떨어지지만 도서관에서 빌려서 읽는 것보다 직접 구매해서 밑줄도 긋고 허리도 꺾으면서(!) 편안하게 읽고 싶다. 그러다 보니 가벼운 에세이부터 좋아하는 시집, 좋아하는 시인이나 작가의 산문집, 소설, 좋아하는 작가의 리커버나 한정판, 독립서적, 인문학, 심리학, 그림책 등 참 다양한 책을 사들였다.


책치레라는 말이 마음에 훅 들어온 것은 내가 치레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정통으로 얻어맞았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책을 샀고 좋아하는 책을 읽었지만 그중에는 있어 보이는, 누구나 읽어야만 할 것 같은 책도 끼어있다. 대표적인 게 고전문학, 노벨문학상 수상작과 같은 책들이다. 그저 책장에 꽂혀 있는 것만으로도 책 읽는 사람의 지적허영심을 채워주었다. 게다가 책을 많이 읽는 사람으로 보이는 것에도 욕심이 있어 남들에게 보이지 않는 책장마저 꾸미고 있었던 것이다.


나의 책장을 둘러본다. 언제 이런 책을 샀지? 몇 년이 지나도록 읽지는 않고 진짜 인테리어용이 되고 있고 책들. 책을 읽는 건지, 책을 읽는 나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건지. 어쩐지 낯 뜨거워지고 말았다. 나는 이런 나 자신의 모습을 들킬까 봐 더 부지런히 책을 읽었나 보다.


어쩌면 선순환인가? 자기변명이겠지. 지적허영심이 뭐가 나빠? 그래도 독서를 멈추지 않고 있다고. 그래도 언젠간 읽을 거야, 라며 자기 합리화를 시키며 오늘도 인터넷서점 장바구니를 채우고 결제할까 말까 고민하다 글을 쓴다. 다행히 오늘은 책을 주문하지 않았다. 결제까지 가지 않은 나 자신 칭찬해!


어디서 등짝 맞는 소리 안 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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