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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리 Jun 06. 2024

024. 취중일기

팀장과 선생 사이

아슴아슴 :
정신이 흐릿하고 몽롱한 모양.


내일부터 연휴라서(이미 6일이 되었네) 대전에 갔다. 오랜만에 전 직장 동료를 만났다.


내가 팀장이었을 때 마지막으로 들어온 신입교사였다. 유일하게 나보다 어렸고 내가 담당한 과목이 같이 묶이는 바람에 다른 과목으로 들어온 선생이라 신입이라고 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팀장님이라고 잘 따르던 선생이라 좀 더 애정을 가지고 함께 일했다. 내가 일에 지쳐 힘들 때, 선생들에 환멸을 느낄 때 그나마 옆에서 같이 일해주었던 선생이었다. 내가 일을 그만둘 때 오히려 자기가 더 울었던 그런 선생이었다.


직장동료에서 지인이 되기도 하겠지만 그만큼 가까워지는 건 쉬운 일이 아니고 가까워진다고 해도 그만두고 나서는 오래 지속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우리의 경우 매우 가깝다고 볼 수는 없다. 많이 만나야 일 년에 한두 번이다. 꾸준히 연락하는 것도 아니다. 인스타그램에서 서로의 근황을 끊기지 않게 확인하는 정도다.


이 정도가 딱 적당하다. 우리는 각자의 관계망에서 각자의 삶을 살아가고 적당한 거리에 있다. 서로에게 크게 바라는 것도 없고 서로의 생일을 챙긴다. 가끔 잊을만하면 만나서 맛있는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 술을 마신다.


적당한 거리에서 적당하게 챙기는 사이. 여전히 팀장님, 선생님 하고 있는 사이. 만나면 즐겁게 편한 사이. 친구나 지인과는 이런 관계를 잘(?) 만들어 나가는데 마음에 사랑이 생기면 왜 아무것도 모르는 바보가 되고 마음은 엉망이 되는 걸까.


취중이라 적당히 아슴아슴하다. 내일은 바다나 보러 가야겠다. 일요일에까지 신나게 쉬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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