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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리 Jun 10. 2024

028. 독서의 취향 1

멍때리다

멍때리다

아무 생각 없이 멍하게 있다.


하루가 사라졌다. 아무것도 안 했는데 벌써 12시. 정말 생산적인 일은 하나도 안 했다. 겨우 한 거라곤 필사 두 페이지. 5일간의 휴가가 끝나서 정신이 나가버린 건지 아무 생각이 없다. 오전에 일어나 아침 겸 점심을 먹고 다시 누웠다. 몸이 천근만근이라 자꾸만 눕게 된다. 휴일이니까 누워있으면 뭐 어때 싶다가도 뭔가를 해볼까 싶어 진다. 도서관이라도 갈까. 이미 이불속에 쌓인 나는 일어난 생각이 없다. 게임도 좀 하고 릴스도 좀 보고 뭐라고 해야지 싶은 마음과 그냥 좀 쉬자는 마음이 엎치락뒤치락 싸우는 것도 좀 보고. 바닥에 널브러진 책과 잡동사니들을 정리해 볼까 일어나 본다. 바구니 몇 개를 정리하다 다시 드러누웠다. 드러누워 천정을 멍하니 본다. 


누워서 주변을 둘러보면 온통 책이다. 책이 이렇게나 많은데 책을 읽지 않고 멍 때리고 있다. 아무 생각이 없는 하루였으므로 지난 독서의 시절을 떠올려본다.


어릴 때는 세계명작을 주로 읽었다. 집에 전집이 있었고 학교 도서실에서도 자주 봤던 기억이 난다. 좋았던 작품은 비밀의 화원, 제인 에어, 빨간 머리 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15 소년 표류기, 로빈슨 크루소, 80일간의 세계일주 등이 있다. 나열하고 보니 나는 똑 부러진 여자아이의 이야기나 어디론가 모험을 떠나는 이야기를 좋아했었다. '되고 싶은 나'와 '하고 싶은 일'이었겠지.


중, 고등학교 학창 시절에 감명 깊었던 책은 선뜻 떠오르지 않는다. 책을 읽는 학생이었던 것 같았는데 착각이었다. 나는 책보다는 만화책, 인터넷 판타지소설, 무협소설에 빠져있었다. 만화책도 책이고 판타지소설, 무협소설도 책은 책이니까요. 순정만화를 좋아해서 풀하우스, LET다이, 오디션, 후르츠 바스켓, 레드문, 호텔 아프리카, 마틴 앤 존, 나나 등등 정말 많이 보고 자랐다. 지금도 소장하고 있는 만화책들이 있을 정도다. 판타지소설은 인터넷연재가 많았던 때라 좀 더 편하게 읽을 수 있었다. 퇴마록을 시작으로(PC통신에서 연재가 시작된 엄청난 소설인데 아쉽게도 책으로 만났다.) 꽤나 많은 작품들을 읽었는데 기억나는 건 묵향, 비뢰도, 정령왕 엘퀴네스 정도다. 드래곤이 나오는 걸 무척 좋아했었는데도 기억이 전혀 없다니 당황스럽다. 읽었던 책에서 알 수 있듯이 어릴 때부터 잡생각이 많았고 책을 읽거나 TV를 보고 상상하는 것을 좋아했다. 그러니 판타지소설이 그렇게도 재미있었나 보다. 잘 기억나지 않았던 작품들도 검색을 통해 조금씩 기억이 났다. 허접한 작품도 있었고 판타지라는 이유로 저평가되기엔 좋았던 작품도 많았다. 이 와중에 양귀자의 <모순>이나 원태연식 시집이 유행처럼 번졌던 순간도 있었다. 어쩜 이렇게 취향이 극단적이었는지 그때부터 나는 내가 나를 참 모르겠는 시간이 시작된 것 같다.


순정한 사랑을 좋아했고 다른 세계를 꿈꿨으며 보이지 않는 힘을 갖고 싶었다. 그게 나의 학창 시절이다. 상상의 세계에서 행복했고 현실로 돌아오면 괴로웠다. 멍하니 하루를 보내고 어린 시절을 떠올리니 온갖 추억들이 흘러넘친다. 오늘은 여기서 끝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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