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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리 Jun 11. 2024

029. 귀여운 게 최고야

쓸데없으면 좀 어때

쓸데없다

아무런 쓸모나 득이 될 것이 없다.


지금까지 일본여행을 네 번 다녀왔다. 여행을 다녀오면 기념품을 사 오는데 꼭 들리는 곳이 있다. 바로 동구리공화국이다. 지브리스튜디오 캐릭터샵으로 토토로를 좋아하는 내게는 방앗간 같은 곳이다. 


쓸데없이 귀여운 나의 토토로사랑의 시작은 대학 때였다. 선배 두 명과 친구와 나, 이렇게 넷이서 일본에 다녀왔다. 일본 애니메이션에 대한 해외탐방 프로젝트로, 학과와 관련된 테마를 기획해서 공모전에 뽑혀서 다녀왔는데 선배들 뒤만 졸졸 쫓아다녔던 기억이 난다. 프로젝트에 대한 의욕은 없었고 그저 첫 해외여행에 신났을 뿐이었다. 징징대고 아무것도 모르는 후배들 데리고 다니느라 고생한 선배들에게 이제야 심심한 사과를 보낸다. 어쨌든, 우리의 여정은 지브리스튜디오가 메인이었고 영화로만 보던 토토로와 고양이 버스, 천공의 성 라퓨타에 나왔던 거대한 로봇까지! 지브리의 세상에 홀랑 빠지고 말았다. 아주 오래전이라 기념품을 사 왔었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지만 나의 잡동사니박스에 지브리스튜디오에서 받았던 작품은 필름이 있다. 그렇게 지브리사랑, 토토로 사랑이 시작됐다.


두 번째 여행은 삿포로와 오타루였다. 10년 가까이 하던 일을 그만두고 연말에 떠난 여행이었다. 오타루는 오르골로도 유명한데 그곳에서 토토로 오르골을 샀다. 이 오르골은 사연이 있는데 내가 무척이나 힘든 시기를 보낼 때 결혼하는 친구에게 선물로 줬던 오르골이다. 그 오르골은 다시 우리 집에 와있다. 내가 다시 마음의 평온을 찾았을 때 친구는 나에게 오르골을 돌려주었다. 친구는 제자리로 돌려주는 것이라고 했다.


세 번째 여행은 오사카였다. 2박 3일의 짧은 여행이었는데 하루는 오사카 외곽의 온천에서 보내고 다음 날 오사카에서 하루를 보내고 마지막날은 오전 비행기로 돌아오는 아주 비효율적인 일정이었다. 하지만 우리의 첫 여행은 무척이나 즐거웠고 역시나 토토로덕후인 친구와 동구리공화국에 들렸었다. 손가락에 끼우는(?) 귀여운 토토로와 손수건을 사 왔는데 손수건은 여전히 상자에 들어있는 상태로 그대로 보관 중이다.


네 번째 여행도 오사카였다. 이번에는 교토에서 이틀, 오사카에서 하루를 보내는 일정이었다. 동구리공화국은 교토 닌넨자카점에 들렸다. 작은 토토로 인형을 샀고 손가락 인형을 더 사서 대토토로, 중토토로, 소토토로까지 세 마리(!)를 완성했다. 오사카 난바에 있는 동구리공화국에도 들렸는데 친구는 커다란 왕토토로 인형을 사서 가방에도 넣지 못하고 안고서 비행기에 올랐다. 동구리공화국은 가격이 매우 사악해서 마음껏 사들일 수가 없다. 나도 왕토토로 갖고 싶어. 아무래도 진짜 덕후는 내가 아니라 친구다. 친구는 그 후로도 일본을 자주 갔고 갔다 올 때면 내 선물을 꼭 사 오곤 했는데 그 안에 토토로 마그넷과 토토로 손가락 인형이 있다. 아마 더 있을 것이다. 엽서라든지, 토토로 편지지에 직접 써준 편지라든지.


토토로덕후라고 하기도 민망하게 나에겐 토토로가 많지 않다. 토토로만 보면 눈이 돌아서 막무가내로 사지도 않는다. 이제는 용산에만 가도 동구리공화국이 있고 인터넷으로도 충분히 살 수 있다. 지금도 넷플릭스로 지브리영화를 보곤 한다. 쉽게 살 수 있고 쉽게 볼 수 있게 되어버려서 이제는 설레지 않고 좋아하는 마음이 옅어지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럴 때면 조금 서글퍼져서 그때 좋았는 순간을 자꾸 떠올리지는 모르겠다. 자꾸만 생각하면 그때 그 마음을 조금은 되찾을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결론은 귀여운 게 최고다. 쓸데없어도 좋아. 귀여우니까. 쓸데없는 걸 좋아하고 쓸데없이 귀여운 걸 좋아하는 사람이 좋다. 나는 그냥 귀여운 걸 좋아한다. 귀여운 걸 이겨낼 방법이 없다. 토토로도, 사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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