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잠을 자고 일어나 냉장고에서 무르기 직전의 오이와 싱크대 아래 방치되어 있던 감자로 감자사라다를 만들었다. 모닝빵 사이에 넣어먹으면 맛있는데 냉동실에는 모닝빵은 없고 소금빵뿐이라 소금빵을 데워 감자사라다소금빵을 만들어 먹었다. 오이가 쓴맛이 나서 껍질(응? 껍질 맞나?)을 깎아서 먹어보니 다행히도 살릴 수 있었다. 며칠 전에 사두었던 콜드브루커피와 블루베리, 소금빵을 먹었다. 벌써 정오가 지났다.
매달 월말이 되면 독서결산을 하는데 유월에는 책을 정말 안 읽었다. 못 읽었다기보다 안 읽었다. 요즘은 재미있는 책이 별로 없고 매일글쓰기를 하다 보니 독서와 필사에 쓸 에너지가 부족했다. 매일독서와 매일필사는 여전히 하고 있지만 예전보다 할애하는 시간이 많이 줄었다. 그렇다고 시간이 부족한 건 아니다. 물리적 시간보다 정신적 시간이 없다고 봐야겠다. 약간의 우울상태가 나의 디폴트인데 유월에는 유난히도 기운이 나지 않았다. 하는 일이 자꾸만 짜증이 나고 사람을 만나는 게 지쳤다.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도 행복지수가 그때만 올라가고 금세 가라앉았다. 인스타그램에는 너무 어둡고 우울한 글은 쓰고 싶지 않는데 텐션이 오르지 않으니 감정조절이 쉽지 않았다. 자꾸만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데 잠시 다녀오는 것으로는 채워지지 않았다. 그래서 오늘은 정말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나가는 것도 집안에서 무언가를 하는 것도 다 싫었다.
가볍게 빵을 챙겨 먹고 휴대폰만 붙들고 늘어져 있는데 이럴 때 마음껏 쉬지 못하고 마음속에서 뭐라도 해야 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쉬는 것도 편히 쉬지도 못하는 거니. 누워있다가 일어나서 오늘치 필사를 했다. 필사를 하고 다시 누웠다. 이번 달에 9권은 너무 적은데? 엉기적거리며 책장 앞으로 가서 시집 한 권을 챙겼다. 최근에 읽었던 안희연 시인의 시집이 정말 좋았기 때문에 조금 기대하는 마음으로 시작했던 시집이었다. 친필사인본이었는데 사인문구가 마음에 들어서 더 그랬다. 기대하는 마음은 심드렁한 마음으로 끝났다. 요즘 읽었던 젊은 시인(!)들의 시가 내게는 잘 와닿지 않는다. 시를 읽을 때면 늘 좋았던 것은 아니다. 시는 어렵고 와닿지 않는 시도 많다. 그래도 시집 안에서 한 편의 시라도 마음을 울린다면 그것만으로도 만족한다. 아주아주 마음에 들고 너무너무 좋은 시집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시집을 만날 때면 조금 속상해진다. 그런데 오늘 읽었던 시집은 시집의 문제라기보다 나의 상태가 문제인 것 같다. 월말에 한 권이라도 더 읽어보겠다고 집어든 시집이었고 시에 오롯이 집중하지 못했다. 조금 피로해져서 다시 누워있었다. 계속 누워있는 중에도 협찬받은 만년필 노트리뷰를 올렸고 캘리모임 인증문장도 올렸다.
저녁에는 가족모임이 생길 뻔했는데 다행히 취소되어서 대충 때웠다. 또다시 누웠다. 리뷰를 쓸까 하다가 노트북 앞까지 나를 데려가지 못했다. 리류를 쓸 때 결과물이 나오기까지 은근히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쏟기 때문에 자꾸만 미루게 된다. 리뷰 쓰기보다는 독서결산을 정리하기를 선택했다. 먼슬리다이어리에 매달 정리하고 있어서 읽기 시작한 책부터 완독한 책, 리뷰쓴 책을 쭉 정리해서 썼다. 그리고 또 누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