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무탈한 듯이 별일 없이 산다.
내 안에 수많은 감정과 기억이 담긴 작은 방들이 하나둘씩 열렸다 닫혔다를 반복한다. 어젯밤에는 정말 가끔, 일 년에 한 번쯤은 꼭 떠올르는 기억들이 나를 창피하고 바보 같은 사람으로 끝없이 몰락하려던 찰나에 잠이 들었다. 물론 개운하게 깰 수 조차 없었지만 오늘 하루도 여파가 상당했다. 몇 년 전 신호등 앞에 서있던 그 날처럼 상점과 날씨만 조금 다른 그곳에서 초록불을 기다렸다. 붐비는 사람들 속에서 우리만 빛났었다 오늘은 나 홀로 덩그러니 서있었다. 그 예전 기억들로 돌아간 나는 이 곳에서 우연이라도 마주치길, 아니 그냥 한 번쯤은 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창피한 나의 모습도 내 모습이었다. 당시에 그가 어떤 생각이 들었을지는 정확히는 모르지만 홍대로 향하던 우리의 방향과는 역으로 집으로 돌아오던 오늘의 한남대 교위에서 잠시나마 우울한 동굴 속에 자리 잡았다. 훌훌 다 털어내고 싶었다. 머리가 너무나 복잡하다. 잊고 싶고 지우고 싶다. 아직도 쿨하지 못하고 이불을 걷어찰 정도의 안타까운 몇 년 전의 내 모습이 선하고 선해서 슬프기까지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