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주말마다 만난다.
나는 지금 전남편과 주말마다 외출을 함께 하고 있다.
사이가 물 흘러갈 때처럼 평화롭게도 하고, 싸우고 사이가 안 좋을 때는 지옥 같은 날이 온다. 이 같은 날들이 무한반복했는데 벌써 2년째이다.
우리는 아기가 6개월일 때 별거를 시작했고, 12개월이 되었을 때 서류가 정리되었다.
그런데 아기는 너무 어렸고, 나는 그와 아기만 보낼 수가 없었다.
그는 아기가 6개월부터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육아가 미숙했고, 아기는 낯을 가려 많이 울었다.
결정적인 이유는 그와 내가 서로 불안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우리는 셋이서 주말마다 만나 밥도 먹고, 키즈카페도 갔다.
이혼 후에도 만남을 지속한다는 건 생각보다 훨씬 거북하고 뻘쭘한 일이었다.
죽을 맛이었다.
그는 숙려기간 중이나 이혼 직후,
“나는 너를 기다릴 거야”라는 말을 몇 번 했다.
이혼할 의사가 없다는 뜻이었다. 사실 나는 그 말이 만날 때마다 제일 두려웠지만, 꾸역꾸역 만났다.
이미 이혼까지 상황이 진행됐고 감정은 멀어졌는데, 되돌아가기엔 너무 멀리 와버렸다.
마음은 이미 떠났는데 몸은 여전히 같은 공간에 있었다.
다니기 싫은 회사에서, 사이가 좋지 않은 상사랑 같이 식사를 하는 느낌이랄까.
가까이 있으니 또 싸우게 됐다. 이럴 거면 뭐 하러 이혼했나 싶을 정도였다.
그런데 나와 비슷한 사람이 또 있었다.
오픈채팅에서 “아기가 너무 어려서 면접교섭을 같이 동행하고 있어요. 그럴 때마다 현타가 와요.”
라는 글을 봤다.
그냥 문 앞에서 아기를 보내면 되지 않을까?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을 수도 있다.
사람은 다 똑같지 않다. 자녀 특성도 다르고, 상황도 다르고, 사람의 성향에 따라 대처 방식은 천차만별이다.
그런데도
“그게 이혼이냐”, “다시 합쳐라”, “위장이혼이다”
같은 말들은 너무 쉽게 나온다.
나는 그런 말을 정말 많이 들었다.
자녀가 있는 이혼은 굉장히 어렵다.
둘만의 이혼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를 위해 이혼을 했기 때문에 자녀에게는 항상 미안한 마음이 든다.
예전에 상담가 선생님이 이런 말을 했다.
“이혼했다고 자녀에게
미안해하지 마세요.
키울 때는 아무 일 없는 듯,
평소처럼 혼내고, 사랑해 주세요.”
머리로는 이해가 되는데, 마음이 그럴 수 있을까.
돌쟁이 아기가 이혼을 알긴 뭘 알겠는가.
나를 보며 방긋방긋 웃을 때 나는 마음이 찢어졌다. 죄책감 때문이다.
그래도 내 기분이 아기에게 전염되지 않게 눈은 울고 있었지만 입은 웃고 있었다.
피에로 같았다. 이게 정신분열인가..
이혼은 나의 선택이었지만 자녀의 아빠를 자녀에게서 뺏을 수는 없었다.
나는 아빠와 자녀 사이를 지켜주고 싶었다.
그게 내가 해줄 수 있는 유일한 배려라고 생각했다.
면접교섭 시간에 내 육체가 쉬는 선택도 할 수 있었지만, 전 남편과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편이 자녀에게 더 좋다고 느꼈다.
이혼 과정에서 교육 영상을 필수로 시청하게 되는데 그 안에 이런 말이 있었다.
“엄마 아빠가 등을 돌린 채
자녀를 보내는 모습보다
면접교섭 때 문 앞에서
가벼운 인사라도 나누는 것이
자녀에게 더 좋은 영향을 줍니다.”
나는 남편이라는 관계는 놓았지만 아이의 아빠로서는 최대한 협조하기로 했다.
지금 나는 만나고 있는 이성이 없다.
서로 각자 만나는 사람이 생긴다면 이야기는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아이가 아빠를 찾고 있고 우리 둘의 생각이 이 부분이 비슷해 주말에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다.
보이지 않는 선은 분명히 있다.
최소한의 양육비만 받는다.
자녀 앞에서 언성을 높이지 않는다.
각자의 생활공간은 철저히 분리한다.
그는 나와 자녀에 대한 이야기 외는 자제 한다.
이 관계를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나도 모른다. 그도 모른다.
다만, 떠나야 할 관계와 떠날 수 없는 책임 사이에서 나와 그는 아직 이 자리에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