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를 표현해야 하나? 참아야 하나?
분노를 참으면 신체와 정신에 병이 생긴다고 말한다.
스트레스는 만병의 근원이라는 말도 있다.
나 역시 회사를 다니며 극심한 스트레스를 겪은 적이 있다. 이명 증상과 함께 어떤 일에도 집중하기 어려웠다.
돌이켜보면 그때 나는 분노를 참았던 것이 아니라 미루고 있었던 것 같다.
나는 한 번에 폭발하지 않는다.
몇 번의 불만과 서운함이 쌓이고 나서 어느 순간 한꺼번에 터진다. 문제는 배우자는 그것을 모른다는 점이다.
내가 표현하지 않았기 때문에 어디서부터 서운했는지, 무엇이 쌓였는지 알 수 없다. 그래서 갑작스러운 분노 앞에서 배우자는 어리둥절해진다. 분노를 참는다는 것은 나의 정신과 신체에 해를 가하는 일이고, 결국 미루는 것일 뿐 사라지는 일은 아니다.
그렇다면 분노를 표출하면 기분이 좋아질까.
과거를 떠올려보자.
배우자에게 화를 내며
“넌 쓰레기 같은 X야”
그 말이 내게 닿는 순간, 나는 비참함과 충격이 번졌다.
이런 말을 내뱉는다고 해서, 승리자가 되었던 적이 있었을까.
아마 없을 것이다.
분노를 표출할수록 감정은 오히려 블랙홀처럼 더 깊어졌다.
“왜 그런 말을 했을까.”
“조금만 참을 걸 그랬나.”
“내일 배우자 얼굴을 어떻게 보지.”
물론 내뱉고 나서 시원해지는 사람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분노 이후에 죄책감과 후회를 함께 떠안게 된다.
분노를 던질 때도 가장 먼저 다치는 사람은 나 자신이다. 몸은 긴장하고, 머리는 같은 장면을 반복 재생하고, 잠들기 직전까지도 자신과의 대화는 끝나지 않는다.
분노는 상대를 벌주기 전에 나의 에너지를 먼저 소모시킨다.
상사와 친구에게는 분노를 날 것 그대로 표출하지 않는다.
분노가 없어서가 아니라, 계산하기 때문이다.
상사에게는 삼키고 친구에게는 웃음으로 넘기면서 배우자에게는 날 선 단어로 공격한다.
남인 상사와 친구에게는 분노를 계산하면서 배우자에게는 분노를 계산하지 않는다.
나에게 큰 해가 되지 않을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잃지 않을 것 같은 대상에게 우리는 가장 날것의 감정을 노출한다.
하지만 부부 관계는 잃지 않는 관계가 아니다.
잃을 수 있는 관계다.
상사나 친구와의 관계가 끊어지는 일보다 배우자와의 이혼은 인생의 방향 자체를 바꿔놓기 때문에 영향이 더 크다.
결혼생활을 유지하면서 우리는 관계에 대한 착각을 하게 된다.
이 사람은 어디에도 가지 않을 거라는 착각,
내 임종을 옆에서 지켜줄 것이라는 환상.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이혼이 낯설지 않은 시대에서
상대방의 분노를 감당하며 자신의 옆에 인내하며 기다려주는 배우자는 없다.
결혼은 헌신적인 마음으로 시작하지만,
현실에서는 철저한 계산의 연속이기도 하다.
잘 살고 있는 부부들은 분노가 없는 사람들이 아니라, 분노를 잘 다루는 사람들일 것이다.
분노를 다루는 방식은 사람을 대하는 방식과 닮아있다.
분노를 조절하며 현명하게 표현하는 사람은 타인을 배려하며 존중한다고 한다.
분노를 계산 없이 표출하는 사람은, 타인을 대할 때도 자신의 감정에 집중하느라 섬세한 배려를 놓치기 쉽다.
그 상대가 배우자라면, 배우자는 자연스럽게 배려를 느끼기 어려워지고, 결국 관계가 끝날 수도 있다.
자신의 분노를 표출하는 방식에 대해서 한 번쯤 깊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나는 분노를 다루는 방식에 대해 말하지 않겠다.
그 이유는 나도 잘 모르기 때문이다.
‘
적당한 온도로 말하라’든가,
‘분노를 조절하라’든가 하는 식의 틀에 박힌 말은 솔직히 나에게는 가능하지도 않고, 하고 싶지도 않다.
이 글을 마치며 나는 한 가지 질문 앞에 선다.
분노를 표출하는 방식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우리는 그 오랜 습관을 정말로 고칠 수 있을까.
솔직히, 난 잘 모르겠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히 말하고 싶다.
분노를 적당히 표현할 줄 모른다면,
결혼은 조금 더 신중하게 생각해 보기를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