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 나조차 몰랐던 마음

비난을 기다리는 나의 모습

by 이혼광탈녀


해방감과 공허함의 공존


이혼 직후, 세 명이 살던 집은 아기와 나 둘뿐이 되었다. 처음 몇 달은 현관문뿐만 아니라 방문까지 잠그고 잤다.

저녁 여섯 시가 지나면 거실 불도 켜지 않았다.

그 남자가 집에 찾아올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려했던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두 명이 된 집은 저녁마다 지나치게 조용했다.

사람이 빠진 자리는 분명히 티가 났다.

집이 얼마나 조용한지, 마치 사람이 빠져나간 수영장 같았다.

공허함만 느꼈을까.


공허함 속에는 분명 해방감도 있었다.

저녁 메뉴를 고민하지 않아도 되었고, 그의 눈치를 볼 필요도 없어졌다.

회사를 다녀온 그의 얼굴에서 오늘 하루의 기분을 읽어내려 애쓰던 나였다.

출산한 지 6개월도 채 되지 않았지만, 예민한 그의 성격 탓에 나는 늘 긴장한 상태로 지냈다.

갈등이 일어나지 않으니 마음이 얼마나 편한지 모른다.

싸울 상대가 없다는 것은 정말 이루 말할 수 없는 해방감이었다.

나는 다시 결혼하라고 하면, 아마 못할 것 같다.


되감기 사고


이혼을 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과거를 회상한다.

무엇이 잘못이었을까.

결혼을 결심한 것이 문제였을까,

어떤 사건이 시작점이었을까,

그 말 한마디 때문이었을까.

며칠 동안 같은 생각을 되풀이한다.

그러면서 상대방의 잘못도 하나씩 되감기 한다.

이때의 기억은 이상할 정도로 또렷해진다.


나에게 상처를 주었던 작은 말과 행동들이 하나도 빠짐없이 떠오른다.

정작 그는 기억조차 하지 못하고 있을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나는 이것 역시 이혼의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casette-1361688_640.jpg 이혼을 하면 되감고 되감는다.

폭언을 하는 사람의 마음


이혼하겠다는 나에게 그는 모진 말을 쏟아냈다. 내 자존감을 떨어뜨리는 것이 목적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상담심리를 공부하고 있던 나는, 이상하게도 크게 흔들리지 않았다.

나를 비난하는 그의 모습에서 상처받은 아이의 얼굴이 보였다.

안쓰러웠다.

그의 말속에는 “나 너무 힘들어”라는 외침이 숨어 있는 것 같았다.

상담 공부를 하며 들었던 말이 떠올랐다.

가정폭력을 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마음이 약한 경우가 많다는 것.


상처받을까 두려워, 그 두려움을 감추기 위해 다른 사람을 공격한다는 이야기였다.

물론 모든 경우에 적용되는 이야기는 아니겠지만,

내가 경험한 것들은 그 설명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 않았다.

자신감이 넘치는 사람은 굳이 남을 공격하지 않는다.


비난을 기다리는 나의 모습


어느 날, 그는 술을 마시고 나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전화기 너머로 쏟아지는 것은 온갖 비난이었다.

그 순간 나는 이렇게 느꼈다.

“아, 이 사람 많이 힘들구나. 괴로워하는구나.”

오히려 연락이 없고 조용한 날이면 무의식적으로 휴대폰을 확인하다가 새 메시지를 발견하고 놀라곤 했다.


그때 깨달았다.

비난하는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되었다. 나 자신이 소름 끼쳤다.


예전에 상담소에서 근무했을 때, 센터장님이 이런 말씀을 한 적이 있다.

“조용한 파도와 거친 파도가 있다. 거친 파도에 익숙해지면,
조용한 파도가 와도 다시 거친 파도를 찾게 된다.”


나는 그 거친 파도를 찾고 있었던 것이다.

그가 흥분하고 날카로워지는 모습이

마치 나를 필요로 하는 신호처럼 느껴졌기 때문에 그 거친 파도를 나도 모르게 찾고 있었다.

말로 꺼내지는 않았지만, 나는 분명 그의 연락을 기다리고 있었다.


조용한 파도 같은 일상


그 이후로 조용한 파도 같은 일상이 이어지고 있다.

심심하고, 지루할 때도 있다.

하지만 분명 평화롭다.

아기와 나, 둘만의 집중하는 시간이다.

아직은 이 조용함이 낯설지만,

이 평화가 나를 살리고 있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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