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동적인 이혼과 능동적인 이혼
나는 두 번의 이혼을 겪었다. 결과만 놓고 보면 나는 큰 실패자다. 이혼을 아름답게 포장할 수는 없다. 이혼에 따른 스트레스는 사망 다음으로 크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그런 일을 나는 두 번이나 겪었으니, 평범한 삶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이혼을 결심하게 된 이유는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나의 첫 번째 이혼은 상대방의 이혼 요구였다. 그는 직업이 없는 상태에서 나와 결혼식을 올렸다. 8년의 연애 끝에 결혼을 결심했을 때, 나는 이미 서른을 넘긴 나이였다. 그의 어머니는 내게 말했다.
“오래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다. 네 나이가 서른이 넘어갔구나.”
대학교 동기들은 약속이나 한 듯 한 달에 한 번꼴로 결혼식을 올렸고, 남자와 그의 어머니는 “올해는 넘기지 말자”라고 했다. 나는 불안한 가정환경에서 벗어나고 싶었고, 독립에 대한 욕구가 컸다. 아마 나와 비슷한 이유로 결혼을 서두른 사람도 적지 않을 것이다. 이미 독립해 사는 성인보다, 부모와 함께 사는 성인이 결혼을 더 간절히 원할 수도 있다.
한마디로 준비되지 않은 결혼이었다. 그의 가정은 경제적으로 풍족해 결혼 생활에 대한 지원은 충분했다. 돈 때문에 다투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는 등 떠밀리듯 결혼한 탓인지 극심한 우울감에 빠졌다.
“나는 결혼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 결혼을 하게 됐어. 나는 부끄러운 가장이야.”
결혼생활에는 크고 작은 어려움이 끊임없이 찾아온다. 나는 그 어려움을 함께 견디고 극복해 가는 것이 부부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나와 함께 성장하고, 함께 늙어갈 마음이 없어 보였다. 매일 휴대폰 게임만 하며 나와 눈을 마주치지 않았고,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다.
“이럴 거면 왜 결혼을 했냐”라고 물었지만,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몇 년이 지난 뒤 우연히 연락을 주고받을 기회가 있었고, 나는 다시 물었다.
“그때 왜 나랑 결혼했어?”
그는 “하고는 싶었지”라고만 말했고 더 이상의 말은 하지 않았다.
나는 지금도 그의 마음을 모르겠다. 아마 죽을 때까지도 모를 것 같다. 원래 이별은 말이 없는 법이다.
그와 다툼이 계속된 시기에 그는 나에게 조심스럽게 말했다.
“혼인신고를 안 했기 때문에, 지금이 가장 좋은 시기야. 너에게도 이게 좋아.”
나는 그를 붙잡기 위해 얼마나 울고 매달렸는지 모른다. 결혼식만 올린 부부 사이였지만, ‘이혼’이라는 말 자체가 창피했다. 무엇보다 8년이라는 나의 20대가 송두리째 사라지는 것 같았다. 울고 또 울었다. 재회 사이트를 뒤지며 어떻게든 그의 마음을 돌려보려고 애썼다.
‘이혼을 앞둔 여자들’이라는 오픈채팅을 운영할 때, 상대방이 이혼을 요구했다며 울면서 대화하는 경우를 종종 보았다. 상대방이 갑자기 이혼을 요구하면 얼마나 당황스러운지 모른다.
처음에는 분노가 치민다.
“네가 감히 나에게 이혼을 요구해?” “ 나는 잘못한 것이 없어!”
그러다 곧 이렇게 말한다.
“나 이혼 못 해요. 그의 마음을 되돌릴 수는 없을까요?”
나 역시 첫 번째 이혼 때 그랬다. 그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재회 방법을 찾아보며, 매 순간 휴대폰을 손에서 놓지 못했다. 내가 경험하고, 상담을 하며 내린 결론은 이것이다.
상대방이 이혼을 결심하면, 그것을 막을 수는 없다.
"있을 때 잘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었다.
이혼 통보를 직접 들었을 때의 좌절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나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 앞에서 버틸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 마음을 되돌리는 일은 내가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다.
앞으로 갈등이 생기지 않게 노력하겠다는 다짐, 매 순간 조심하는 살얼음판 같은 관계로 잠시 인연을 이어갈 수는 있다. 하지만 끝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한번 깨진 컵은 본드로 잠시 붙여도 물은 새어 나오고 처음처럼 안전하지 않다. 이것은 나의 경험이다.
연애는 싸워도 각자의 공간이 있다. 잠시 거리를 두는 것도 가능하다. 하지만 결혼은 다르다. 싸워도 같은 공간에 머물러야 하고, 얼굴을 피할 수 없다.
함께 사는 프라이빗한 공간은 갈등을 더 선명하게 만들고, 싸움은 더 격렬해진다. 그 차이를 나는 결혼을 통해서야 알게 되었다. 현명한 사람들은 부부싸움도 똑똑하게 할 것이다. 마음의 상처를 주고받지 않고, 비난을 하지 않으며 싸울 것이다.
첫 번째 이혼 당시, 우리는 부부 상담을 받았다. 각자 상담을 받기도 했고, 함께 상담을 받기도 했다. 부부 상담의 목표는 반드시 함께 사는 것만이 아니다. 때로는 건강하게 헤어지는 것도 목표가 될 수 있다.
나는 상담을 받으며 한 가지를 깨달았다.
부부싸움에서 내뱉은 험한 말은 회복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사람과 계속 함께 살 생각이라면, 그 험한 말을 모두 안고 살아야 한다. 가장 좋은 방법은 험한 말을 아예 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이미 해버린 말은 비수가 되어 남는다.
부부 상담에서 ‘서로의 좋은 점 30가지 써오기’라는 숙제를 받았지만, 부정적인 이미지는 쉽게 바뀌지 않았다. 숙제를 하며 30가지 좋은 점을 찾느라 오래 걸리기도 했고, 서로 웃으며 시간을 보내기도 했지만, 결국 회복은 어려웠다. 단지 그 사람을 이해하는 것이 전부였다.
다시 이야기로 돌아와서, 연애는 싸우고 나면 안 보면 그만이지만, 결혼은 그렇지 않다. 싸워도 저녁에 다시 얼굴을 봐야 하고, 다음 날도 마주해야 한다. 싸움의 여파는 연애와는 차원이 다르다. 그리고 그 싸움은 결국 이혼으로 이어져, 원하지 않는 인생의 전환점이 되기도 한다.
"인생의 아이러니"라는 것은 분명 존재한다. 나는 첫 번째 결혼을 통해 “상처 주는 험한 말은 하지 않겠다”라고 다짐했다. 험한 말은 잊히지 않고, 회복되지 않는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두 번째 남자는 화가 나면 험한 말을 서슴없이 했다. 험한 정도는 내가 했던 것보다 강도가 훨씬 심했다. 요즘 말로 ‘거울 치료’가 무엇인지 알게 되는 순간이었다.
그 순간, 첫 번째 남편에게 했던 말들과 결혼생활에 대한 미안함과 후회가 밀려왔다. 직접 겪어보니, 험한 말은 정말로 잊히지 않았고 두고두고 나를 괴롭혔다. 내일이 돼도, 일주일이 지나도 계속 생각났다.
준수한 외모와 화려한 학벌도, 험한 말이 쏟아지는 순간 모두 마이너스가 되었다. 내 사랑은 제로에 가까워졌다. 나는 훗날 그가 험한 말을 내뱉는 이유가 낮은 자존감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다. 불행했던 가정사, 학력에 비해 성공하지 못했다고 느끼는 삶은 그에게 큰 좌절감을 주었다.
그는 이런 말을 하였다.
"내가 험한 말은 하는 것은 나를 더 사랑해 줘.라는 뜻이야"
그 말을 듣고 어이없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나도 철없던 과거에 나 역시 다르지 않았다는 것을 떠올렸다. 상대방을 비하하는 것은 나 자신의 부족함을 드러내는 것이고, 사실은 그 결핍을 상대방에게 채워주길 바라는 기본 욕구였다. 나는 남편에게 연민이 들었지만, 그 말들이 반복될수록 나의 정신은 점점 피폐해졌다.
나는 인생 처음으로 "떠나는 사람의 마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내가 첫 번째 남자가 했던 것처럼 이혼을 결정했다.
그래서 이런 말이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