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 불평에 대해서

이혼 불평을 멈추고, 이혼을 애도하자.

by 이혼광탈녀

배우자 욕은 너무 식상해


이혼에 관한 글을 쓰기 위해 몇 권의 책을 샀다.

이제는 담담하게 읽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몇 장도 넘기지 못하고 책을 덮었다.

대부분이 배우자 욕이었기 때문이다.


책 속의 배우자들은 하나같이 나쁜 사람이었다.

생활비를 주지 않았고, 가족을 돌보지 않았고,

페이지를 넘길수록 더 악한 사람이 등장했다.

마치 이혼에는 반드시 악당이 필요하다는 듯이.


나는 한때 ‘이혼을 앞둔 엄마들’이라는 오픈채팅방을 운영했다.

그곳에서도 상황은 비슷했다.

각자의 사연은 달랐지만, 분노의 방향은 놀랄 만큼 닮아 있었다.

채팅방에는

“어떻게 저런 놈이 다 있지.”

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오갔다.

이상하게도, 나쁜 남편들은 모두 비슷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몇 달이 지났을까.

같은 아픔을 가진 엄마들조차 지치기 시작했다.

누군가 남편 욕을 시작해도

예전처럼 맞장구를 쳐주는 사람은 줄어들었다.

읽음 표시만 남았다. 공감에는 한계가 있었다.

처음의 대화의 불꽃은 서서히 꺼져갔고,

남은 것은 고요한 채팅창의 적막뿐이었다.


글을 쓰는 동안, 이혼이라는 상처가 내 안에서 더 선명해졌다.


이혼은 슬픔일까? 분노일까?


둘 다 맞다. 슬픔과 분노는 같은 계열의 감정이기 때문이다.

다만 우리는 어떤 감정을 먼저 선택하느냐에 따라, 그 시간을 오래 끌 수도, 짧게 마칠 수도 있다.

그런데 이별과 이혼 앞에서 우리는 종종 슬픔보다 분노를 먼저 선택한다.


두 감정 모두 상실에서 비롯된다.

잃어버렸다는 인식이 슬픔이라면, 부당하게 잃었다는 감각이 분노다.


슬픔을 허락하는 순간, 나는 너무 나약해지는 것만 같아 보인다. 그래서일까, 사람들은 슬픔 대신 분노를 더 먼저 선택한다.


상담을 하다 보면, 사람들은 이혼의 슬픔 애도하는 것보다 남편 욕인 분노에 훨씬 더 많은 시간을 쓴다. 슬퍼하기보다 화내는 데 에너지를 소모한다.


그래서 한 때,

“남편 욕, 시댁 욕 자제 요망”이라는 공지를 채팅방에 올린 적도 있다.

하지만 소용없었다. 분노는 쉽게 멈추지 않았다.

분노는 나를 무너지지 않게 붙들어주는 강한 힘이기 때문이다.



불평을 듣는 사람의 마음


나는 남편 욕과 시댁 욕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 말을 듣는 사람의 입장에 대해 글을 쓰고 싶어졌다.

불평을 듣는 청자는 처음에는 공감하고 지지하는 역할을 맡는다.

“네가 잘못한 게 아니다”라는 판결을 내려주는 배심원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같은 이야기가 반복되면, 청자는 점점 피곤해진다. 이것은 냉정해져서가 아니라 공감이 소진되기 때문이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공감 피로라고 부른다. 공감 피로가 쌓이면 청자는 무기력해진다.

아무 말도 상황을 바꾸지 못한다는 느낌, 즉 정서적 무력감에 빠진다.


이때 청자는 더 이상 판단하지도, 깊이 공감하지도 않는다. 반응을 줄이거나, 거리를 두거나, 관계를 천천히 정리한다.



사람은 이야기를 들을 때는 3가지를 계산한다고 한다.


1. 내가 그 상황에 처해질 가능성

2.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가능성

3. 내가 그 이야기를 통해 이득이 될 가능성


이 3가지 중 하나도 해당이 되지 않는다면, 듣는 사람은 감정노동이 된다.

나의 일이 아니기 때문에, 공감이 떨어지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다.


이혼 불평은 슬픔을 말하지 못한 나의 언어이다.


말하는 사람에게는 생존의 방식이지만, 듣는 사람에게는 감정 노동이 된다. 문제는 불평의 횟수 아니라, 그 불평이 어디로 향해 가느냐이다.


이혼에 대한 당사자는 누구인가? 당사자가 아닌 타인이 그 불평을 무한으로 듣는 것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이혼은 당사자가 감당해야 한다.

아마 타인이 열심히 경청한다고 해도, 마음속으로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을 확률이 있다. 다른 생각 무엇을 하고 있을까?

분노가 머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피로는 증가하고, 관계는 소모되며, 사람들은 하나둘 자리를 떠나게 된다.


배우자 욕이 끝난 자리에서
이혼 이후의 삶이 시작된다.


누군가에게 나의 이혼이야기나 배우자 욕을 해봤자 내 입만 아프다고 생각했다. 내 얼굴에 침 뱉는 것 같았다. 배우자를 욕하는 내 얼굴이 아름답거나 정의롭지 않았다. 그럼 이혼을 어떻게 다뤄야 할까?


나는 이혼이든 이별이든, 상실에는 반드시 애도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누군가에게 의존하는 시간보다, 나 자신을 다시 세우는 시간이 결국 더 단단하게 만들었다.

누군가에게 험담을 하는 시간보다, 이혼 그 자체의 고통과 슬픔을 충분히 느꼈던 것 같다.


이혼은 나 자신이 결정한 일이고, 이혼 당사자가 감당해야 하는 일이다. 그래서 나는 남편 욕이 아닌, 내 슬픔을 애도하고 극복하는 길을 택했다.


그리고 그 시간이 지금의 나를 지탱하는 힘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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