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 고통처럼 아팠던 이혼, 살아남은 나

죄책감과 수치심 사이, 회복하는 과정

by 이혼광탈녀

아이를 재우고 식탁에 혼자 앉아 있었다.

집은 조용했고, TV도 켜지 않았다. 이혼일기를 쓰고 있었다. 그날 밤, 나는 처음으로 이혼이 끝이 아니라 시작일지도 모른다고 느꼈다. 물론 그 시작이 이렇게 아플 줄은 몰랐다.


이혼을 결심하기까지의 시간은 지옥이라는 말로도 부족하다. 인간이 느끼는 스트레스 중 이혼은 부모의 사망 다음이라고 한다. 나는 그 고통을 두 번 겪었다. 처음의 이혼이 힘들었지만, 두 번째라고 해서 덜 아프지는 않았다.


사랑받지 못했다는 느낌, 버림받았다는 느낌


이 감정이 가장 괴로웠다. 나는 더 이상 그에게 필요 없는 존재가 된 것이다. 주방에서 쓸모없는 주방기기는 어떻게 하는가. 버린다. 이혼을 하며 나는, 버려지는 물건의 마음을 알게 되었다. 가장 소중했던 관계가 거부와 회피의 관계로 바뀌었을 때 느끼는 고통은, 사람 관계에서 겪을 수 있는 가장 힘든 감정 중 하나일 것이다.

상담 공부를 할 때 교수님이 이런 말을 하셨다.


모든 감정은 쓸모가 있다. 불안, 증오, 기쁨, 슬픔까지도 모두 필요하다. 그런데 단 하나, 백해무익한 감정이 있는데 그것은 수치심이라고 했다.

죄책감은 “내가 무언가를 잘못했어”라는 감정이고,

수치심은 “내가 잘못된 존재야”라는 감정이다.


죄책감 So-so, 수치심 Never


이혼에는 수치심과 죄책감이 함께 따라온다. 비슷해 보이지만 완전히 다르다. 죄책감은 나의 언행과 행동을 돌아보게 한다. 결혼생활에서 최선을 다하지 못했던 순간, 상대를 아프게 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감정이다. 반면 수치심은 이혼이라는 사건이 나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게 만든다.

“나는 실패한 사람이다.”

이렇게 내가 나를 공격하기 시작하면, 마음에는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진다.

이혼을 죄책감으로 바라보면 부부관계의 종결에 대한 애도가 된다. 그러나 수치심으로 바라보면 자아가 병들기 시작한다. 이혼 후 많은 사람들이 애도의 과정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괴로워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나는 두 번의 이혼을 겪으며 이 감정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게 되었다.


결국, 이 또한 지나간다.

지금은 믿기 어렵겠지만, 시간은 정말로 해결을 해준다.

이혼 후에는 문득 이유 없이 괴롭고 힘든 순간들이 찾아온다. 하지만 그 아픔은 어느 순간부터 조금씩 옅어진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기 때문이다. 이혼 후의 삶, 싱글라이프 역시 결국은 적응하게 된다.

그 순간이 오기까지는 참고 견디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동안은 울기도 하고, 자책도 하게 된다.


나는 자녀가 있었기에 이혼 숙려기간이 3개월이었다. 이혼을 결심하고 확정하기까지의 이 3개월이 가장 힘들었다. 법원은 자녀가 있다는 이유로 신중히 생각할 시간을 주었지만, 그 시간은 부부이면서도 부부가 아닌 모순적인 시간이었다. 양육권, 양육비, 위자료, 면접교섭에 대해 논의해야 했고 협의하는 과정은 스트레스는 극에 달했다.


고통을 견디는 나만의 방법

그 고통을 견디기 위해 나는 두 가지에 집중했다.

하나는 중고거래였다. 쇼핑중독이 왜 생기는지 이해하게 된 시간이었다. 갖고 싶던 물건을 득템 했을 때의 희열은 상상을 초월했다. 택배를 열었을 때 상태 좋은 물건이 들어 있으면 마음속으로 환호성을 질렀다. 가방, 컵, 액세서리까지 정말 별의별 물건을 거래했다. 어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런 걸로 이혼의 아픔을 견딜 수 있으면, 실컷 해라.”

중고거래였기에 큰돈이 들지 않았고, 소소한 소비는 나에게 숨 쉴 틈을 만들어 주었다.


또 하나는 이혼 일기를 쓰는 것이었다.

상대에게 하고 싶은 말은 끝이 없었다. 하지만 그 말을 해도 들어줄 사람은 없었고, 나 역시 며칠 뒤면 잊어버릴 말들이었다. 그런데 말을 하지 않으면, 미칠 것 같았다.

“나는 너무 슬퍼.”

“그날 너는 왜 그랬어?”

“앞으로 우리는 어떻게 되는 걸까?”


그 모든 말을 일기에 썼다. 일기라기보다, 보내지 못한 편지에 가까웠다. 내 마음을 알아달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누구에게도 이득이 될 것 같지 않았다. 누구에게 털어놓아도, 나는 투정만 부리는 진상이혼녀의 모습일 뿐이었다. 나는 직접 닿지 않아도 글로 적어내는 것만으로도 마음은 한결 가벼워졌고, 나를 고통 속에서 자유롭게 했다.


이혼 확정 날 그 일기장을 건네줄 생각도 했지만, 3개월이 지나자 미움과 분노, 궁금증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내 마음 알아달라고 글을 썼지만, 이혼을 확정 지은 후에는 내 마음을 굳이 알릴 필요가 없었다. 서랍에서 다시 꺼내 읽어보니, 이렇게 적혀 있었다. 비록 그때는 전하지 못했지만, 이제 읽어도 괜찮았다.


“우리는 서로를 미워하지는 않지만,
함께 있으면 너무 괴로워.
그래서 헤어지는 게 나을 것 같아.”

나의 이혼일기장이다. 나를 살려준 소중한 물건이다.


아픔을 표현하기


상담 공부를 하며 들었던 또 하나의 말이 있다. 심리적인 어려움의 상당수는 표현하지 못해서 생긴다는 것이다. 상담소에서 만났던 내담자들 역시 마음속 이야기를 꾹 눌러 담은 채 우울증, 불면, 알코올 문제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상담소에서는 비용을 내면, 자신의 이야기를 마음껏 할 수 있다. 나는 그럴 여유도, 외출할 시간도 없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글쓰기였다. 이혼 과정에서의 고민과 슬픔을 글로 표현하면서, 나는 조금씩 회복되었다.


수술처럼 아팠던 이혼고통


내 일기장에는 이런 문장이 있다.

이혼은 마치 수술과 같다. 수술을 하는 순간과 직후에는 칼로 살을 찢기는 것처럼 아프다. 그러나 몸은 서서히 회복된다. 몇 달이 지나면 절뚝거리며 걷게 되고, 가끔 욱신거리기는 하지만 결국 일상생활에는 지장이 없을 정도로 회복된다.

이혼도 그렇다.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는 말이 떠오르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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