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마음을 꿰뚫어 보는 일

아빠가 슈퍼히어로가 아니라 정말 다행이야

by 정란

아빠에게 질문했다.



초능력 한 가지를 가질 수 있다면 어떤 능력을 갖고 싶은가요?
이유는 무엇인가요?



진부하고 시시한 질문에 귀찮아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아빠는 눈을 반짝였다(통화 중이었으므로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아마 그랬을 것이다).


"초능력? 와, 그거 막 억수로 많은데."

심지어 언젠가 진지하게 고민하며 초능력 목록을 쌓아뒀던 사람처럼, 쉴 새 없이 원하는 초능력들을 말했다.

"초능력 있으면 진짜 좋지. 상대방 마음을 꿰뚫어 보는 거."

나는 "왜?" 하고 물었으나 아빠는 브레이크 고장 난 8톤 트럭처럼 달려 나갔다.

"두 개 꼽으라면 하늘을 나는 거."

저기, 아버지… 한 가지만 고르셔야 하는데요….

"세 번째 꼽으라면 투명인간이 되는 거. 뭐, 천지지 뭐. 초능력이면 남들이 상상 못 하는 그런 거, 다 가지면 억수로 좋잖아. 이러면 다 얻는 거 아니야. 그 사람이 뭘 생각하는지. 그치?"

"네. 그런데 아버지. 하나만 고르셔야 하는데요."

"하나만 꼽으라면 상대방 마음을 꿰뚫어 보는 거."

"왜요?"

"남한테 밉게 보이지도 않고 모든 사람과 두루두루 잘 어울리고 잘 살 수 있으니까. 상대방 마음을 꿰뚫어 볼 수 있으면."


상대방 마음을 알면 정말로 두루두루 잘 어울리면서 더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나는 의문이 들었다.

"맞잖아. 뭘 좋아하는지, 뭘 원하는지 알면. 그치? 어지간하면 내가 맞춰 줄 수도 있고."

아빠는 나의 공감을 바라는 듯, 말끝마다 자주 "그치?"라고 되물었다. 나는 그런 초능력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으므로 쉽게 답을 내릴 수 없어 "아, 그래?" 하며 애매한 맞장구밖에 칠 수 없었다.


"그럼 그 사람이 겉으로는 아빠한테 잘하고 속으로는 다르게 생각하는 걸 알게 된다면? 그러면 상처받지 않을까?"

"상처받지는 않지. 그런 사람은 그 나름대로 상대하면 되는 거고. 진짜 나를 좋아하는데 표현 못하는 사람의 속마음을 알면 그것도 내가 이해할 수 있고. 좋은 점이 더 많지. 남을 이용하려고 하는 것도 아니고. 안 그래? 맞잖아. 나는 좋은 뜻으로 생각하는데. 그치?"


나는 내가 제기한 문제에 관해서라면 아빠처럼 쿨하게 넘길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에 혼란스러웠다. 내 생각은 오래된 물레방아처럼 삐그덕거리며 돌아가는데, 아빠의 '그치'와 '맞잖아'가 폭포처럼 쏟아졌다. 물레방아는 몸을 틀었다.


"그럼 아빠는 상대방 마음을 꿰뚫어 보지 못해서 힘들어?"

"아니. 그런 건 없어. 이왕이면 어떤 사람을 상대할 때 상대가 뭘 원하는지 알고 싶은 거야. 내가 이런 행동을 하는 걸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내가 하는 말을 싫어하는구나, 같은 걸 알면 그런 걸 안 할 수 있잖아. 어떤 초능력이든지 좋은 쪽으로 생각하면 점점 더 좋아질 수가 있지. 맞잖아. 그런 뜻이야. 내 욕심을 채우려는 게 아니라 두루두루 잘 지내고 싶다 이거지. 어때. 좋지 않나?"

고장 난 물레방아는 삐걱이며 대답했다.

"어, 좋아."

폭포는 그제야 만족한 듯 물줄기를 거두었다.

"그치? 응, 그래."




말하자면 나는 남의 마음을 꿰뚫는 능력은 절대 갖고 싶지 않은 사람이다. 정신적 피로도가 엄청 높아질 것 같다. 지금보다 더 사람을 미워하게 될 것 같다. 내 생각대로 내 인생만을 살기에도 벅차니까. 하지만 시간을 두고 아빠의 마음을 헤아려보니, 그 마음이 어떤 건지 알 것도 같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몰라 우왕좌왕했던 시간은 내게도 있었으니까. 두루두루 잘 지내기 위해 타인의 마음을 알고 싶은 아빠. 그런 아빠의 순수함과 다정함에 웃음이 나다가도, 그렇기에 더 상처받았을 시간들이 짐작되어 조금쯤 쓸쓸해졌다.


하지만 아빠가 원하는 초능력은 끝내 생기지 않으면 좋겠다. 무엇보다도 내 마음, 내 생각을 들키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아빠를 잘 알기 위해서 인터뷰를 시작해놓고, 끝내 나는 보여주고 싶지 않은 이기적인 마음이다. 가족이 서로의 한 면밖에 볼 수 없는 달과 같은 건 어쩌면 필연이다. 끝내 보여주지 않음으로써 지키고 싶은 그들의 평안이 있으므로. 나의 슬픔과 외로움과 두려움은 달의 뒤편에 숨겨둔 채 나의 기쁨과 즐거움과 희망만 보여주고 싶은 욕심. 의젓한 겉모습으로 슬픈 가슴을 안고 있는 욕심.


고장 난 물레방아는 오늘도 삐걱이며 아빠의 세계를 탐구한다. 이것도 사랑의 한 모습일 테지. '그치'와 '맞잖아'의 물세례 속에서 내 마음은 잠시 숨기고 맞장구를 치는 것도 사랑의 한 모습일 테고. 아빠에게 들키고 싶은 것은 아빠를 향한 사랑뿐이다. 아빠가 초능력 하나 없는 평범한 인간인 것은, 고민 많은 딸에게는 분명한 축복이다.